교통사고 현장에 끼어들다: 왜 약자는 포기하는 것에 익숙한채 살아가는가?

in #kr8 years ago (edited)

서울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작은 사거리 교차로 앞에 섰습니다. 제 앞에는 하얀색 소나타가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 소나타 뒤에 서 있었습니다. 교차로라고 해봤자 제가 진행하던 방향은 차량 한대만 지나갈 수 있는 일방통행로였고, 교차하는 도로는 작은 이차선 도로였습니다.

제 앞에 있는 하얀색 소나타가 좌회전 깜짝이를 켠 채 멈춰있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교차로 왼쪽에서 오던 오토바이가 제 앞에 멈춰 있던 소나타가 지나가라고 오토바이를 세워줬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제 앞에 있던 하얀색 소나타가 급출발로 좌회전을 하면서 왼쪽에서 오다가 멈춰서 기다리던 오토바이에게 돌진했습니다. 적지 않은 충격이었고 오토바이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그 사고는 제가 뒤에서 지켜본 바, 100% 제 앞에 있던 하얀색 소나타의 과실이었습니다. 오토바이는 아무 잘못이 없었습니다. 오토바이는 자기 차선을 지키면서 왔고, 소나타가 지나가라고 멈춰서서 기다려 주었습니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였고, 오토바이와 하얀색 소나타가 멈춰서 있었던 건 3초가 넘습니다. 그 동안 다른 차량은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얀색 소나타가 오른쪽에서 오는 차량이 있는지만 살피다가 왼쪽에 있는 오토바이를 못 보고 충격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오토바이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소나타는 차선도 위반한 것이죠. 자기 차선을 지키고 있던 오토바이를 충격하였으니까요.

누가 봐도 오토바이 아저씨께서 억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사고 현장은 고스란히 제 자동차에 달려있는 블랙박스에 녹화가 되었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오토바이 아저씨를 도울일이 있을까 싶어서 근처에 차를 대고 황급히 현장으로 달려와서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가해자인 하얀색 소나타에서 젊은 남자 운전자가 내렸습니다. 아저씨의 넘어진 오토바이를 세워주고, 땅바닥에 떨어진 짐을 줏어서 오토바이에 실어주었습니다. 거기까지는 훈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소나타 운전자는 오토바이 아저씨를 타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본인은 잘못한 게 없고 모든건 오토바이 운전자의 잘못이라는 식으로 몰아갔습니다. 오토바이 아저씨께서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씀만 하였습니다.

그걸 지켜보는 저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즉시 끼어들어서 '블랙박스가 있다'라고 말하면 소나타 운전자가 제 블랙박스 영상을 뺐으려 들 수 있기 때문에 잠자코 지켜보았습니다.

소나타 운전자는 오토바이 아저씨께 폰번호만 남기고 현장을 떴습니다.

저는 곧바로 오토바이 아저씨께 가서 제가 지켜 본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 안녕하세요. 아까 사고난 걸 처음부터 지켜보았고, 블랙박스 영상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블랙박스 영상이 필요하실 것 같으십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현장에서 기다렸습니다.
= 말씀은 고마운데 뭐 별일 아닌데요 뭘..
@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차량이 급출발 하는 바람에 아저씨의 오토바이는 꽤 충격을 받으면서 즉시 쓰러졌고 아저씨께서도 충격을 받아 땅에 굴러 떨어지는 걸 보았습니다. 소나타 왼쪽 범퍼가 깨진 것도 보았습니다.
= 아. 그런가요. 그런데, 제 오토바이만 고장이 안나면 됩니다. 이게 재산이라..
@ 아저씨, 지금 오토바이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나중에라도 몸 편찮으시면 어쩌려구요? 이건 100% 아까 그 차 잘못이에요. 병원비라도 받으시고 좀 쉬세요. 왜 본인이 피해를 입고도 아무일 아닌냥 그냥 넘어가려고 하시나요?
= 아, 발목은 조금 시큰 하기는 한데.. 뭐 괜찮습니다. 이런일을 하다보면 어찌 이런 것까지 일일이 다 신경 쓰면서 살 수 있겠어요? 도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뭐 별 거 아니니 괜찮겠죠. 허허.
@ 만약에 그분이 본인 차량이 파손됐다고 아저씨께 수리비를 청구하시면 어쩌시려구요? 억울한 일 안 당하시려면 제 영상을 갖고 계시는 게 좋지 않으시겠어요?
= 아,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럼 영상만 받아두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대략, 이런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저는 소위 '사회적 약자'분들의 이런 태도를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몸이 망가져라 일 하면서도 자신의 권리를 챙기는 것에 서투르거나 무지합니다. 자신의 권익이 침해 당해도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가 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 입니다. 그들은 그런 무지 내지는 무기력함에 학습돼 있습니다.

반면, 제가 아는 부자들은 다릅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재산권이 침해당하거나 권리가 침해당하면 즉각적이고 다각적인 방법으로 대응합니다. 이들은 작은 숫자의 차이가 시간이 갈수록 큰 빈부격차와 삶의 수준을 만든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작은 권리 침해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가 각박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약자와 강자 이야기는 너무나 단편적이고, 사회의 모든 케이스 바이 케이스를 대변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더 우위에 있는 행위이고, 어떤 것이 더 옳은 행동이라고도 규정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 부분은 꼭 생각해봐야 합니다. 왜 약자들은 저렇게 자기가 손해 보는일이 생기고, 피해를 입는 일이 생겨도 '그냥 넘어가고 말지..'라고 의례적으로 무기력하게 넘어갈 수 밖에 없는건지..

물론, 다른 의견도 있기는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개인 투자자 지인 한 분은 "사회적 약자에게 동정 가지지 마라. 인간은 누구나 개새끼고 악하다. 약자는 경쟁에서 도태된 병신들일 뿐이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착하고, 부자라고 나쁘다는 인식은 절대로 옳지 않다. 누구나 악하다." 이런 의견을 저에게 정말 강력하게 피력한 적도 있습니다.

회의주의 관점이고, 언어가 격하기는 하지만 이분의 말씀도 일리가 있기는 합니다. 주변에서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행하는 반칙과 갑질도 정말 많이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반칙과 편법을 써서 무언가를 얻어내면 주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게 아니라, 대단하다고 박수 받는 나라가 우리나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저 성공한 투자자가 냉소적으로 저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나 오늘 보았던 통상적인 사회적 약자들의 학습된 무기력함이나 양쪽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현상이고 둘다 틀린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를 한쪽으로만 편파적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늘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럴수도 저럴수도 있다'라는 점을 고려하고 현상을 바라 봐야 한다는 점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늘 오토바이 사고 피해를 당하신 아저씨의 무기력함은 문득 무학에 언어 장애를 갖고 사회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저희 아버지의 얼굴을 떠 오르게 만들어서, 너무 괴롭고 슬펐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도 여느 사회적 약자들이 그렇듯이 온갖 피해를 당하고도 그걸 만회하는 법을 모르셨습니다. 자신의 권익을 지키는 법도 모르셨습니다. 그분 역시 '그냥 넘어가고 말지'라고 하는 학습된 무기력함 덕분에 기본권까지 포기하며 살아가셨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위의 제 지인 투자자가 말한 것처럼, 가끔은 인간의 악한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교통사고 한번 목격했을 뿐인데, 별의 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어쨌든 당분간은 이 오토바이 아저씨의 피해 구제를 위해서 조금 도움을 드릴 예정입니다. 저도 할일이 많고 귀찮기도 하지만, 제가 조금 에너지를 들여서 억울한 분이 한 분이라도 사라지면, 제 딸도 나중에 그런 사회 분위기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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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충격 당시 블랙박스 화면 일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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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무기력증' 이란 단어가 굉장히 슬프면서도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얼마전에 제 친구도 오토바이를 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쳤었던 적이 있어서 글에 더 집중하며 읽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친구는 약자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피해를 보상 받기 위해 행동하더라구요. 약자, 강자를 떠나서 개인적 성향의 차이 또한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인분의 말씀이 옳다고 하더라도 사람 마음이 그렇게 냉정해질 수 있을까 싶습니다..저도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었을거 같습니다.

덕분에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동의합니다. 어느 정도의 '경향'은 존재하겠지만 말씀하신대로 개인의 성격 문제, 그리고 연령별 적극성 문제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친구분이 쾌유하시길 빕니다 :) 그리고 asynmetric님도 분명히 그분께 어떻게든 도움을 드렸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

솔직히 그냥 넘어가자는 분들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니도 합니다...

일일이 다 물고 늘어지는 것도 세상은 각박하게 하지만, 자기 자신의 권익을 너무 포기하고 사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건 누구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 권리를 찾아야 하는데 보통의 약자들은 그냥 참고 넘어가자 라는 성향이 강하더라구요 저희 아버지도 그렇습니다 그분들을 볼때마다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공감합니다. 저희 아버님도 그러셔서 정말 답답하고, 마음아프고 가끔은 분하기도 하죠. 그게 기본 베이스는 그분들의 무지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오래도록 사회에서 억압당하며 체득한 '학습된 무기력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 보이면 저희가 도와드려야죠.

마음이 울컥해지는 글이네요. 사고현장의 순간에 굉장히 놀라셨을텐데 지혜롭게 대처해주셨네요. 소나타 운전자와 오토바이 아저씨를 떠나서 우리 사회에 빈번하는 약자의 전형적 피해구조라서 너무 안타깝네요.

네, 정말 그렇습니다.. 왜 자기 잘못이 하나도 없는 피해자께서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고 그랬는지 지금도 전혀 이해가 안되고(가만히 있는데 차가 돌진해왔는데..), 제 지인이나 가족도 아닌데 그 모습을 떠올리니 또 속이 부글부글 끓네요.

오토바이 운전자 분이 100억 자산가로 밝혀졌대요.😋😝😪🤩😜

엄청 초라한 행색에 뭔가 구식 오토바이에 퀵 배달 하시는 분이셨는데.. 정말 그렇다면 그런 대 반전이...ㄷㄷㄷ

좋은 일 하셨네요. 멋지십니다.

남들 일에 참견하기 좋아해서 그런 걸 보고 못 지나치는 성격이기는한데 아마 yann03님도 거기 계셨으면 똑같이 하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리스팀 감사합니다!

속상한 이야기 이네요. 학습된 무기력이라... 세상이 그동안 참 사는게 녹록치가 않았었던거 같습니다. 도와주는 사람을 색안경끼고 보는 것 부터 옆에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의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네요. 시작해서 어디서 부터 꼬인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이 시작 된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jongsiksong님같은 분들이 많아 지시길 바래봅니다. 그럼 세상도 조금은 좋아 지지 않을까요? @칭찬해 이거 쓰는 분위긴 아니지만 고생하셨다고 칭찬해 드리고 싶네요... ^^

아마 wisecat님 뿐 아니라 다른 분들이 거기 계셨어도 적극적으로 오토바이 아저씨를 도와드렸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냉소적으로 보자면 한 없이 냉소적인게 인간 본성이라지만, 그래도 문명이 진보하고 인간 사회가 꾸준히 성장하는 건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또 다른면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믿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의구현 하시고 오셨네요.. 귀찮은 세상 남의일까지 관여하긴 쉽지 않은데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기왕 하시기로 하신거 판단하신대로 오토바이 운전자의 과실이 없다면 결과도 그렇게 나올수 있도록 끝까지 도움 주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정의구현이 되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네, 열심히 조력해서 작은 도움이나마 드려볼게요^^

사회적 약자라고 다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에게 하신 행동은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봐야되겠지만요. ^ㅡ^ 굿잡~ 입니다.

그분께서 현명하게 잘 대처하셔야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도 적반하장격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혼내줄 수 있겠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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