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history>민주주의 투사 김영삼 1부-1 민주주의 투사 김영삼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in #kr7 years ago

<Kr-history>민주주의 투사 김영삼 1부-1 민주주의 투사 김영삼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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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지금의 광화문 역에 큰 굉음이 들리고 테러를 당한 듯 거대한 건물이 무너져 내립니다. 하지만 당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대한국민들의 얼굴에는 당혹감 보다는 무언가 큰 희열이 차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무너져 내리는 건물은 다른 건물이 아니라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선총독부 건물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광복 후 50년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지금 생각 하면 어이가 없지만 이 건물은 대통령 취임식 장소, 정부청사, 국립박물관등으로 사용되어 왔었습니다. 식민 수탈의 본거지를 국가의 주요 기관으로 사용해 왔다는 것은 참으로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다행이 1993년 8월 9일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민족 정기 회복을 위해 총독부 청사를 해체하여 경복궁을 복원하고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을 국책사업으로 건립하라고 내각에 지시하였습니다.1994년에 총독부 청사의 철거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철거와 보존이라는 논쟁의 대립 속에서 ‘완전철거론’과 ‘현상보존론’, ‘이전복원론’ 등의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런대 1995년 일본은 철거가 결정되자 일본에서 비용을 부담할 테니 조선총독부를 일본으로 이전해 가기를 원했어 심지어 정부차원에서 공식 성명을 발표 합니다. 부끄러운지 모르는 행동에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성명발표 다음날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해체하고 이 과정을 생중계하고 “일본놈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는 연설을 하여 전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합니다.

과연 역대 어떤 대통령이 당시에 같은 상황에 놓여있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속 시원한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가 제가 존경해 마지 않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도 절대로 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취임 100일 후 자그만치 83% 라는 가장 높은 지지율 가지고 있던 김영삼 대통령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 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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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이하 YS)에게는 깨지지 않은 기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최연소 국회의원 타이틀입니다.
YS는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대한민국 역사상 최연소인 26세의 나이로 당선이되 정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자유당 소속이었지만 이승만의 3선 제한철폐에 반대해, 사사오입 개헌이 통과되자, 김영삼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민관식 등 동지 10명과 자유당을 탈당합니다.
자유당을 탈당한후 민주당에 입당해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서구 갑에 출마하지만, 낙선합니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고 4.19 혁명 이후 다시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과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그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큰 비극을 겪게 됩니다.
1960년 9월 25일 남파한 무장공비의 손에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 사건을 통해서 YS는 북한과의 연계성에서 자유로워 집니다. 라이벌 김대중을 보면 한 평생 보수세력에게 빨갱이로 매도 당하지만 YS는 그러한 프레임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무고한 사람들은 항상 빨갱이로 몰아서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박정희, 전두환도 YS만은 빨갱이로 몰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정치적 인생에 큰 힘으로 작용합니다.

<질산 테러 사건>

신민당의 원내총무와 대변인을 맡아 활동한 YS는 박정희의 장기집권하기 위해 헌법을 바꾸려는 3선 개헌을 반대했고, 정권에 미움을 받게 됩니다.
당연히 박정희와 그 휘하에 있던 권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은 김영삼에 대해 않좋은 감정을 가지고 됩니다.
그러던 중 1969년 6월20일 YS는 국회 연설에서 “우리 사회의 암적 존재요, 잡으라는 공산당은 안 잡고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정보부가 개헌 음모에 가장 깊이 관련하고 있다”라며 “김형욱 정보부장에게 충고합니다. 민족의 영원한 반역자가 되지 않기 위해 무리한 짓 하지 말라. 총리는 정보부장 파면을 건의할 생각 없는가?”는 발언을 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YS를 박정희 정부에서 가만히 두고 보았을까요.

그리고 그날 저녁 저녁식사 후 상도동으로 귀하를 하고 있던 YS의 차량 앞에 검은색 작업복을 입은 두 명의 청년이 골목길을 가로 막고 서로 싸우는 시늉을 하며 YS의 차량을 막아선 사이 다른 1명이 차량의 문을 열려고 했으나 다행이 문이 열지 않았습니다.
위협을 느낀 김영삼이 운전기사에게 차를 출발시키게 하여 경적을 크게 울리며 전진하자 괴청년 중 한명이 무언가가 담긴 유리병을 던져 차량 후미의 유리창에 맞고 박살이 났습니다.
병 깨지는 소리가 워낙 커서 김영삼은 처음엔 수류탄을 던진 것으로 오인했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차에서 내려보니 심한 악취와 함께 차량 도색이 우글우글하게 녹아내려 있었습니다. 또한 범행 현장을 조사하여 보니 아스팔트 일부도 녹아내려 있었습니다.
단순히 YS의 주장이 아닌 경찰의 감식 결과 질산으로 판명 되었는데, YS는 연이어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을 강한 어조로 비난하고 있었던 터라 박정희 정권의 테러로 추측되었지만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연 경찰에서 재대로 된 수사를 했을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테러를 당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겠지만 남들과는 다른 담력을 가지고 있던 YS는 바로 다음날 국회에서 다시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게 됩니다.
“이 독재 국가를 끌고 가는 원부가 바로 중앙정보부요. 그 책임자 김형욱은 민족반역자다. 이건 날 죽이려는 정부의 음모다”

그러나 그와 많은 야권의 노력에도 박정희의 삼선 개헌은 통과되었고 박정희의 야권 탄압은 더욱더 심각해 지기 시작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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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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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만큼 결단력 있는 지도자를 본일이 없네요 말년에 imf 로 욕을 많이 먹긴 했지만 결단력을 가지고 여러 개혁을 잘 추진했었죠

초반에 YS의 지지율은 감히 넘볼수 없었죠~

문민 정부라고 불리는 정부가 김영상 대통령 시기의 정부이죠. 막판에 하필이면 IMF가 터져서 욕을 먹었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독재, 군정이 아닌 평화적인 정권 교체로 출범한 정부라서 어느 정도 의의가 크죠.

무엇보다도 대표적인 업적은 '하나회 숙청'이지만... 그건 나중에 포스팅하실거라 믿고 말은 줄이겠습니다.

ㅎㅎ네 3부에 다룰 생각입니다~~

IMF만 생각나는 대통령 이였는데 다른 이야기도 알 수 있었네요.
2부 기대해봅니다~!

ㅜㅜimf는 너무 슬픈 사건이었죠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 포스팅이네요

2018년에는 두루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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