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history> 희대의 기회주의자 박정희 마지막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

in #kr7 years ago

<kr-history> 희대의 기회주의자 박정희 마지막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

안녕하세요.

근현대사를 포스팅하는 잠마루 @jammaru31 입니다~

오늘은 드디어 박정희 포스팅 마지막입니다.

다들 재미있게 봐주세요~

2005년에 개봉한 그때 그 사람들을 알고 계신가요?

한석규, 백윤식 주연의 영화로 10.26 사건을 김재규와 박선호 의전과장의 시점에서 풀어 나가는 영화입니다. 많은 부분이 픽션이지만 사실인 부분이 많이 있어서 당시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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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사건을 보면

1976년 10월 26일 금요일 저녁 7시 41분, 김재규는 발터 PPK를 꺼내 차지철의 오른손목을 맞혔고 이어 박정희의 가슴을 향해서 쏘았습니다. 박정희는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김재규가 총구를 차지철에게 조준했고 차지철이 김재규에게 계속 저항하는 가운데 김재규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이 격발불량을 일으켜 고장 났습니다. 그때 정전되었으며 김재규는 연회장을 빠져나가 1층 로비로 갔습니다.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박선호가 나타났고 김재규는 고장난 발터를 박선호의 스미스 앤 웨슨 M36 치프 스페셜 리볼버와 맞바꾸고 다시 김재규는 연회장으로 들어갑니다. 심수봉과 신재순은 총에 맞아 쓰러진 박정희를 부축하고 있었습니다. 차지철은 화장실에 숨었다 다시 나와 경호원을 찾으러 나가려는 순간 다시 김재규가 들어왔습니다. 차지철은 김재규에게 장을 던져 총 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김재규는 이를 피한 후 차지철의 폐와 복부를 향해 총을 쏘아 차지철이 맞고 그대로 엎어졌습니다. 김재규는 박정희 앞으로 다가와 총을 겨누었고 심수봉과 신재순은 도망쳐 어디엔가 숨었습니다. 김재규는 쓰러져 있는 박정희의 후두부에 총을 쏘았습니다.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6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중앙정보부 부장이었던 김재규는 차지철과 박정희를 살해하게 되는걸까요?

사건의 발단의 보면

사건의 발단은 10월 16일부터 부산에서 시작된 부산마산 민주항쟁에서 시작됩니다. 10월 18일 박정희는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 하고 부마사태를 무력 진압하게 됩니다. 부마 항쟁을 두고 박정권의 내부에서 김재규가 강경파 차지철과 정치적 갈등으로 빚어졌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 외에는 박정권의 핵개발과 관련된 것, 그리고 박동선의 코리아게이트 사건 등으로 한미 관계가 악화된 점 때문에 미국정부가 박정희의 암살을 은밀히 조장했다는 설도 있으나, 근거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인권 문제 등으로 미국과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10.26사건 이후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와 육군 본부 헌병감 김진기에 의해 김재규 체포 명령을 내렸습니다.

10월 27일 오전 0시 40분경에 김진기가 김재규를 체포하자, 정승화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을 불러 헌병감 김진기 준장에게 김재규를 인계 받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합니다.

김재규는 전두환의 감독 아래에서 김재규는 쇠파이프로 맞으며, 전기고문과 물고문까지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재규는 1980년 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살인>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1980년 5월 24일에 박선호, 유성옥, 이기주, 김태원과 함깨 서울구치소 (지금의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자리)에서 사형되었습니다..

김재규의 재판과정 중에 가장 의미심장한 부분이었던 1심 최후의 변론과정을 보면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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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김재규는 "내가 (거사를)안 하면 틀림없이 부마항쟁이 5대 도시로 확대돼서 4.19보다 더 큰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이어 김재규는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 암살했고 주장했습니다.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 사형당하기 전에 했던 이 말도 아직도 많은 분들의 기억에 자리 잡혀 있습니다.

물론 김재규가 과연 정말 민주주의를 살리려고 했는지 아니면 자기의 권력욕을 위해서 였는지 아니면 정말 미국의 사주를 받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부정선거, 삼선개헌, 언론장악, 야당인사탄압, 유신헌법등등 이로 셀수 없는 부정과 비리로 유지해온 독재정권 16년의 세월을 끝나게 해준 역사에 잊지 못한 중요한 인물인것은 확실합니다.

역사에 만약은 있을 수 없지만 만약 박정희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죄없는 피가 이땅에 흘렸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뒤에 흐르는 역사의 물결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은 1보 후퇴 2본 전진을 하며 조금씩 발전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박정희에 대한 긴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근현대사 포스팅을 끝내지는 않겠습니다.

저도 아직 모르는게 많지만 꾸준히 열심히 포스팅 하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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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의 희생정신에 애도를 표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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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자주 놀러오세요~^^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 사살 후 아무 대책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는 또 다른 독재자를 역사에 등장시키게 됩니다. 참 아쉬운 대목입니다.

ㅜㅜ그거 너무 아쉽습니다. 당시의 야당이나 민주주의 인사들과 전혀 연계없이 그리고 대책없이 행동했기에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였지만 결국엔 다음정권이...안타깝습니다.

정두환 정권에 대해서 다루꺼에요~~놀러오세요

아무리 민주주의라고 해도 영원한 독재는 안되나봐요.ㅎㅎ

그럼요 그럼요 독제는 있어서는 안됩니다~

역사이야기 재미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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