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실록과 승정원 일기의 차이점 블록체인 기술

in #kr7 years ago

조선왕조 실록과 승정원 일기의 차이점 블록체인 기술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조선 및 대한제국의 승정원에서 왕명 출납, 행정 사무 등을 매일 기록한 일기 이다. 2001년 9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1623년(인조 1년) 음력 3월부터 1910년(순종 4년)까지의 기록이 현존하며, 현재는 인조와 고종 시기의 일기가 번역되어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후원일기(喉院日記)라고도 한다.
승정원의 주서(注書)·가주서(假注書)는 날마다 승정원의 일기를 썼는데, 매월의 일기는 다음 달 안으로 완성하여 보존되었다. 원래 조선 개국 이래의 일기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1592년, 선조 25년) 불탔고, 1623년(인조 1년)까지의 일기도 이괄의 난으로 말미암아 거의 사라졌다. 그 후 임진왜란 이후의 일기를 개수했으나, 1744년(영조 20년) 승정원의 화재로 인해 임진왜란 직후부터 1721년(경종 1년)의 기록이 소실되어 1746년(영조 22년) 일기청(日記廳)을 설치해 개수했으나 본래 책수의 3분의 1도 안 되는 양만 개수할 수 있었다. 또 영조 때의 승정원 일기 중 임오년의 일(임오화변)과 관련한 내용들은 세손의 청으로 인해 세초되었다. 그리고 1888년(고종 25년)에 또다시 화재로 1851년(철종 2년)에서 1888년(고종 25년)까지의 일기 361책이 소실되었으나 다시 개수했다. 그밖에 수많은 분실과 화재를 당하고 개수하기를 반복하였고, 개수 때 원본의 내용을 어느 정도 고친 것인지 알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태조(1392년)부터 철종(1863년)까지 25대에 걸친 472년간 조선 왕조의 역사적 사실을 연월일순(年月日順)에 따라 편년체로 기술한 역사서이다. 별칭은 《조선실록》이다. 1997년 10월 1일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에 왜구에 의해 춘추관·충주·성주 3사고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 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 병화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정부는 난중인데도 전주사고의 실록을 내장산 혹은 해주·강화도·묘향산 등지로 나누어 보관했다가, 평란 후 국가 재정이 곤란하고 물자가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실록 재출판 사업을 일으켜, 1603년(선조 36) 7월부터 1606년(선조 39) 3월까지 2년 9개월에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13대의 실록 804권을 출판하였다.
이때 출판한 부수는 3부였으나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 원본과 교정본(校正本)을 합하여 5부의 실록이 되었으므로 1부는 국가의 참고를 위하여 옛날과 같이 서울 춘추관에 두고, 다른 4부는 병화를 면할 수 있는 심산유곡(深山幽谷)과 도서(島嶼)를 택하여 강화도 마니산·경상북도 봉화군 태백산·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사고를 설치하고 각 1부씩 나누어 보관하였는데, 춘추관·태백산·묘향산에는 신간본, 마니산에는 전주실록, 오대산에는 교정본을 보관하였으며, 1617년(광해군 9) 《선조실록》을 편찬 출판한 후 또한 다섯 사고에 각 1부씩 보관했다.
그 후 춘추관에 보관했던 실록은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또 다시 소실되어 완전히 없어지고, 묘향산 실록은 1633년(인조 11)에 만주에서 일어난 후금(後金)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산으로 이전하고, 마니산 실록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크게 파손되어 낙질(落帙) 낙장(落張)된 것이 많이 생겼다.
그 후 현종 때에 마니산 실록은 보수되었으나 춘추관 실록은 영원히 복구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마니산 실록은 1660년에 같은 강화도 내의 정족산성 안에 사고를 신설하고 1678년에 정족산 사고로 이전하였다.
인조 이후 실록은 정족산·적상산·오대산 사고의 실록만 남게 되었으며, 이후로 역대의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출판하여 4사고에 추가 보존케 하였는데 전례에 따라서 정족산·태백산·적상산 사고에는 정인본, 오대산 사고에는 교정본을 보관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 4사고의 실록은 일제 침략 당시까지 완전히 보전되었다.
조선왕조실록.jpg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고 승정원일기는 아니다. 그 이유는 승정원 일기가 기록이 더 방대해 오히려 세계 기록유산이 될 가능성이 많은데 분실과 화재, 개수로 완전하게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춘추관, 충주, 성주는 임진왜란때 불탔지만 전주 사고본이 남아 잘 보존이 되어 있고 그 이후에도 나눠 분산을 했기 때문에 완벽히 남아서 세계 기록유산이 된 것이라고 본다.
투자에도 포트폴리오를 해서 나눠 투자하라는 격언이 있는데 조선왕조실록은 그 지혜를 이용해서 한국인의 영원무궁한 가치를 더해주었다.
블록체인 기술도 마찬가지로 중앙서버에 보관하면 해킹의 우려가 있다. 필자도 빗썸, 국민은행, KT등 여러군데에서 개인정보가 털린듯하다.
빗썸도 블록체인인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회사인데 거래 자체는 블록체인화하지 않고 중앙 서버에서 통제하니 이런 비극적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해킹 기술의 발달로 완전히 해킹에서 자유로운 회사는 거의 없다고 본다.
조선왕조실록이 승정원일기에 비해 잘 보관된 이유는 바로 여러군데 나눠 보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블록체인 기술로 장부를 분산화 decentralized 한 탈중앙화가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더 재미있는 것은 블록체인은 한곳에 계약이 체결되면 다른곳에서도 그 정보가 나눠 저장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주 사고 조선왕조실록이 고쳐지면 춘추관, 충주, 성주도 그 정보를 동시에 안다는 점이다.
또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서 동의보감이나 승정원일기등 기록문화 자체도 암호화하여 절대 소실될수 없게 분산화해서 저장할수도 있다. 한번 적으면 위변조가 어렵고, 가능하다고 해도 기록이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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