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앤 앤 불린의 교수형과 목 갑상선 목 흉터치료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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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일의 앤이 있다. 영국의 앤 불린이 주인공이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이자 헨리 8세의 두 번째 부인으로 약 1천일 동안 왕비의 영화를 누리다 간통과 반역 혐의로 남편에 의해 처형된 인물이다. 헨리 8세가 불린의 시녀와 바람이 나자 버림을 받고 1636년 5월 런던탑에서 참수되었따. 물론 블린 자신도 첫 번째 왕비인 아라곤의 캐서린의 시녀였다가 왕비가 되었다.
헨리 8세는 블린에 대해 화형에서 참수형으로 감형했고, 평민에게 사용되던 도끼대신 프랑스에서 처형전문가를 불러 단칼에 형을 집행하도록 배려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은 블린은 자신의 목을 만지며 웃으면서 “목을 치는 사람이 유능하다고 들었는데, (두꺼워도 될 텐데) 내 목이 가늘군(I heard the executioner was very good, and I have a little neck.)이라고 일침을 가했다고 전해진다.

미국문화 500년 로마를 훔치다, 최용식 지음, 로마의 꿈, 페이지 270-271

앤 불린(Anne Boleyn /ˈbʊlɪn/, 1501년(?) - 1536년 5월 19일)은 헨리 8세의 제1계비이며 엘리자베스 1세의 생모이다.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결혼하려고 민족주의 성격의 종교개혁을 일으켜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가톨릭교회와 결별시켰다.
전기작가 안토니아 프레이저에 따르면 헨리 8세가 앤 불린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1526년경이라고 한다. 앤 불린은 전통적인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인은 아니었으나 흑발에 까만 눈의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당시 유럽 유행의 최첨단을 걸었던 프랑스 궁정에서 받은 교육 덕분에 세련된 기품이 배어 있었으며 화술도 뛰어났다. 이미 앤의 누이(언니인지 동생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메리가 언니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메리 불린을 정부로 두었던 전력이 있는 헨리 8세는 앤마저 정부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앤은 왕의 유혹을 거절하며 정식 결혼을 요구했다. 왕비 캐서린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던 헨리 8세는 젊은 앤 불린이 왕자를 낳아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1527년 헨리 8세는 캐서린과의 이혼을 시도하였다. 캐서린의 거센 저항과 로마 교황청의 끈질긴 반대에 부딪히자 헨리 8세는 결국 종교개혁을 일으켜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시키고 나서 스스로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529년부터 앤은 왕의 총애를 받으며 잉글랜드 궁정에서 출세가도를 걷는다. 하지만, 앤 불린은 신실한 캐서린 왕비를 왕궁에서 쫓아낸 여자라고 백성의 반감을 샀다.
1532년 헨리 8세는 앤에게 펨브로크 여후작(Marquess of Pembroke)의 지위를 내려 그녀의 신분을 격상시켰다. 미혼 여성이 직접 작위를 하사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같은 해 크랜머 대주교가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을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무효로 했다.
1533년 1월경 헨리 8세와 앤 불린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앤은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같은 해 6월 1일 앤 불린은 호화로운 예식을 통해 잉글랜드의 왕비로 즉위했다.
1533년 9월 7일 앤은 딸 엘리자베스를 낳았다. 헨리 8세는 실망했으나 곧 아들도 생길 것이라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앤이 수차례에 걸쳐 유산을 반복했고, 부부 사이의 말다툼이 잦아지자 왕의 마음도 앤에게서 멀어졌다. 대신 왕은 앤 불린의 시녀 제인 시무어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한다. 앤 불린의 정적 토머스 크롬웰은 제인 시무어를 지지하면서 왕비와 불린 가의 추락을 획책했다.
1536년 앤 불린과 남동생 로시포드 공작 조지 불린, 그리고 두 사람과 가까운 귀족 청년들 몇몇은 간통과 반역, 근친상간 혐의로 런던 탑에 감금되었다. 심지어 앤 불린은 마법으로 왕을 유혹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했으나 앤 불린은 두 차례에 걸친 재판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본래 앤은 화형당하기로 판결되었으나 나중에 헨리 8세에 의하여 참수로 감형되었다. 참수형이 확정되자 앤은 자신의 시녀에게 “내 목이 가늘어서 다행이다.”라고 씁쓸한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앤의 사형 집행은 그때 당시 참수에 흔히 쓰이던 도끼 대신 잘 드는 칼을 사용하기로 결정되었고 왕은 앤의 참수를 위해 프랑스에서 칼을 쓰는 노련한 사람을 특별히 고용했다.
동생 로시포드 공작이 처형당한 지 이틀 후인 5월 19일, 앤 불린은 런던 탑에서 참수되었다. 사형장에서 앤 불린은 구경꾼들에게 왕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충성을 다해 섬겨달라고 부탁하는 연설을 남겼다. 앤 불린의 마지막 말은 “주님께 제 영혼을 맡깁니다.”였다. 앤 불린의 사형 집행은 단칼에 마무리되었다.

필자는 헨리 8세가 카톨릭 교회의 간섭을 일부러 배제하려고 이혼을 요구하고 결국 교황권에 벗어나기 위해 앤 불린을 이용했다가 나중에 또 필요가 없어지자 토사구팽을 했다고 본다. 어쨌든 영국은 그 이후로 절대왕정을 설립하고 엘리자베스 시대를 맞아 가장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 Thomas More 1478~1535는 14세에 옥스퍼드대에 진학해 22세에 변호사가 됐다. 평생 세속적인 권력과 부를 추구했던 모어는 자신을 총애했던 헨리 8세의 이혼에 반대해 모든 안락을 포기해야 했다. 헨리 8세가 본처인 캐서린 황후와 이혼하는 것을 반대하고 사표를 제출하였다.
“세속인은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며 영국 국교회 수장으로서 국왕의 권한을 부정한 죄로 런던탑에 투옥되었다. 대법관 토머스 모어를 아끼는 지인들이 찾아와 왕과 타협해서 목숨을 건지라고 했지만 거부했다.
처형대에서는 군중을 향해 “나는 왕의 좋은 신하이기 전에 하느님의 착한 종으로서 죽는다”라고 선언했다. 그나마 거열형 능지처참을 헨리 8세에 의해 참수로 낮춘 것이었다. 그가 단두대에 올라서자 사형 집행관이 용서를 빌었다. 모어는 사형집행 전에 머리를 쑥 내밀며 그를 오히려 격려하는 유머를 날렸다. “자네 일을 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게. 그리고 내 목은 몹시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니까 수염이 잘려지지 않게 하게.”

목은 여성성의 가장 중요한 부위인데 갑상선도 위치하고 있어서 갑상선 암이나 갑상선 기능항진증등을 앓으면 수술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목에 수술후 흉터가 남을 수 있는데 www.imagediet.co.kr 자향미 한의원의 수술후 흉터침인 OT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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