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4세의 가마솥 끓는 물 처형과 화상흉터치료

in #kr8 years ago

그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공 바실리 3세와 그의 계비 엘레나 글린스카야의 첫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바실리 3세에게는 서자가 몇명 있었지만 이반은 바실리 3세의 첫 적장자였다. 적장자를 원했던 아버지 바실리 3세는 늦은 나이에 아들 이반을 보았다. 그러나 바실리 3세는 다리에 생긴 종기가 염증으로 발전하여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한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대공이 되어 주로 어머니가 섭정했다. 이반의 어머니였던 엘레나 글린스카야는 5년간 어린 아들을 대신하여 섭정을 했는데, 섭정기간 중 이반의 삼촌들을 처형했으며 결국 어머니 역시 독살당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독살당하자 이반을 돌보던 유모까지 수도원에 감금되고 졸지에 고아가 된 이반왕에겐 유리(Yuri)라는 어린 남동생이 있었는데 남동생은 듣지 못하는 농아였다. 그밖에 블라디미르라는 이름의 서출 형이 한명 더 있었다.
아버지 바실리 3세의 첫 왕비인 솔로모니야 사부로바는 아들을 낳지 못했고, 결국 왕비자리에서 폐출되었다. 아버지 바실리 3세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고, 적장자를 얻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바실리 3세의 후처였던 엘레나 글린스카야는 이반 4세와 농아 유리, 그리고 딸 한명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첫 아들이던 이반이 3세 되던 해 바실리 3세가 세상을 떴고, 그는 3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이후 모후인 엘레나 글린스카야가 섭정을 맡았지만 엘레나는 그가 8살 되던 해에 독살당했다. 중앙 귀족인 보야르와 그들의 협의회인 두마 의회에서는 솔로모니야 사부로바 폐위에 반발했는데, 솔로모니야는 보야르 중에서도 유력 가문 출신의 딸이었다. 그리고 엘레나 글린스카야가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 아니라 로마 가톨릭 신자인 점도 보야르들의 심기를 거슬렀다. 이후 보야르 및 그들의 협의회인 두마 의회에서는 이반에게 상당히 적대적으로 대하게 된다.
아버지 바실리는 어린 아들의 즉위를 염려하여 왕족 및 보야르 등을 모두 불러 어린 이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나 이반의 삼촌인 유리 이바노비치는 충성 맹약을 번복했고, 안드레이 슈이스키 등 일부 보야르를 포섭하여 차르직에 앉으려 했다가 사전에 발각, 모후 엘레나는 유리 이바노비치를 투옥시킨다. 그리고 1536년 엘레나 글린스카야는 유리 이바노비치를 제거했다. 또다른 삼촌인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역시 그의 자리를 노렸다. 엘레나는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역시 투옥시키려 했고, 삼촌 안드레이는 도망치려다가 국경에서 잡혀 1537년 투옥되고, 그해 11월에 사망한다.
어머니 엘레나 글렌스키야는 미남 귀족 오블렌스키 공작과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엘레나는 이를 못마땅히 여긴 자신의 친삼촌, 이반의 외종조부인 미하일 글렌스키야를 제거하려 했다. 글렌스키야 가문 외에도 슈스키 가문, 비엘스키 가문 등 유력 귀족들의 왕위를 노리고 있었으므로 엘레나는 자신의 친정의 원조를 받았지만, 자신의 삼촌 미하일을 제거하면서 친정과의 연대는 끊어진다. 그러나 1538년 어머니 엘레나가 의문의 독살을 당한다. 때마침 바실리 3세에게 앙심을 품었던 리투아니아는 군사를 일으켜 모스크바 대공국을 계속 침략해왔다. 겨우 막아냈지만 어린 이반을 대신해 엘레나는 리투아니아와 1535년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이반은 세살의 나이에 차르로 즉위했고 8살 때 모후마저 사망하자 실권자인 슈이스키 가문과 비엘스키 가문이 정권을 장악했고, 귀족회의인 보야르가 대신 정치를 주관했다. 그러나 슈이스키 가문의 당주 바실리 슈이스키는 오블렌스키를 투옥시켰다가 처형하는데, 이때 경쟁자 가문인 비엘스키 가문의 이반 비엘스키를 숙청, 투옥시킨다. 바실리 슈이스키는 몇년 후 이반 비엘스키를 풀어주었으나, 세력의 재규합을 우려해 그를 다시 투옥시킨 뒤 죽인다. 동시에 이반 비엘스키와 가까웠던 모스크바 총대주교 이오아사프도 축출해버린다. 이반은 어려서 대공의 지위를 계승했지만 이반 형제에게 적대적인 보야르들에 의해 구박받고 고통스러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반 4세와 동생 유리는 크레믈린 궁의 탑 속에 갇혀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이반4세가 후일 측근에게 쓴 한 편지에 의하면 자신이 8살 무렵부터 슈이스키 가문과 비엘스키 가문으로부터 수시로 멸시당했고 무례하게 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아나스타샤 사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계속 이혼과 폐출이 반복되고 첩을 여러명 들이게 되었고, 교회는 이를 지적하면서 이반과 수시로 마찰했다. 두번째 부인 마리아와는 9년간 결혼생활을 했으나 의문의 독살을 당한다. 한편 마리아 생전에 그는 폴란드의 공주랑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공공연히 해서 아내 독살 의심을 받기도 했다. 마리아가 독살된 뒤 그는 2년 후 마르파 소바키나와 결혼한다. 그러나 마르파 소바키나는 결혼 후 3주만에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다가 사망한다. 첫 아내 아나스타샤의 의문의 죽음을 떠올린 그의 광기는 심해졌다. 1579년 그는 바실리아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바실리아는 바람을 피웠고 몇달 뒤 이반은 내연남들을 데려다가 바실리아가 보는 앞에서 처형한 뒤, 바실리아는 사방이 벽으로 된 회랑에 가두어 죽게 했다. 바실리아가 죽자 바로 마리아 돌고루카야와 재혼했지만 역시 바람을 피우다가 이반에게 발각됐고, 이반은 돌고루카야를 물에 빠뜨려 익사시켰다. 그리고 다시 마리아 나가야와 재혼했는데, 그에게서 드미트리가 태어난다. 그러나 드미트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간질 발작을 앓았다.
일부 지역의 정교회에서는 그의 아홉 번의 결혼 및 여러 축첩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일부 지역의 정교회에서는 우리는 차르의 지배권을 거부하며, 우리 대주교님의 지도를 받겠다고 선언한다. 또한 정교회에서는 이반의 계속된 재혼과 축첩을 두고 성도덕이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반 4세는 사제들을 잡아 처형하고, 정교회의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기 시작했다.
노년의 차르는 성격이 난폭하게 되어 여러가지 잔인한 일을 저질렀고 이에 반발한 그의 친족이자 군사령관인 쿠르프스키는 폴란드로 귀순했다. 1581년 11월 어느날 임신한 며느리 엘레나가 얇은 옷을 입자 복장이 경박하다고 마구 때려 며느리는 유산되었다. 그러자 아들 이반 왕자는 왕손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것 때문에 분노하여 아버지를 마구 저주하고, 화가 난 차르는 부지깽이[4]로 아들을 사정없이 패다가 문득 제정신으로 돌아와 생명이 위독한 상태가 된 아들을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었다.[5] 근처에 있었던 보리스 고두노프가 달려와 말렸지만 한발 늦었고, 아들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한참 있다가 정신을 차린 이반은 머리가 터져 피흘리며 쓰러진 아들을 부둥켜안고 통곡했지만 소생시키지 못했다. 아들은 결국 3일뒤 죽었고, 이반 역시 고독 끝에 수도자가 되었다가 3년뒤 죽고 말았다. 1584년 3월 28일 그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최후를 맞이했다. 최초의 차르, 이반 뇌제(雷帝)의 고독 끝 말로였다.
그가 죽기전에 체스를 두다가 일어서던 중 갑자기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져서 그대로 사망했다는 설, 시종무관 이반 벨스키의 여동생을 겁탈하려다가 울면서 뛰쳐나오는 벨스키의 여동생을 본 벨스키와 보리스 고두노프가 이반 4세를 목졸라 죽었다는 설이 있다.

이반 뇌제의 노브고로드시의 학살을 목격한 목격자의 진술도 있다.
“5주 동안 매일 1000여명의 시민들이 광장으로 끌려나왔다. 오프리츠니키는 사람들을 채찍으로 때리고, 사지를 부러뜨리고, 혀를 자르고, 콧구멍을 찢고, 거세하고 불에 굽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문했다. 모든 사람들을 얼음장과 같은 볼코프강에 빠뜨렸다. 물 위로 고개를 내민 사람들은 보트에 탄 오프리츠니키들이 갈고리와 창, 도끼로 죽였다. 수많은 시신들이 볼코프강을 떠나녔고 강둑엔 시신들이 무더기로 쌓였다.”
-세상을 움직인 악

1570년이 끝날 무렵 이반은 17개의 교수대와 거대한 가마솥, 남자 키만한 프라이팬, 신체를 두 동강 낼수 있는 밧줄등을 모스크바에 설치했다. 이반의 군사적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지어진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대성당 앞에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교수형을 당하거나 끓는 물에 삶아지거나 도끼에 맞아 죽었다. 당시 노브고로드시의 주민 중 약 6만명이 학살당했다.
프스코프시의 사람들도 노브로고드의 시민들과 비슷한 비운을 맞았다. 이반은 황제의 자문회의에 속해 있던 도시민들이 폴란드, 터키 등의 적과 밀통한다고 의심했다. 프스코프시에는 곧 파멸이 찾아왔다. 황실 고문관 이반 비스코바티가 교수형에 처해지고 말류타 스쿠라토프가 귀를 잘린 것을 시작으로 모두 몸이 조각조각으로 절단 났다. 재무상 니키타 푸니코프는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안에 던져져 최후를 맞았다.

세기의 악당, 악인은 왜 매력적일까? 북 카라반, 이종호 지음, 페이지 139

중국이나 서양이나 러시아나 일벌백계로 끓는 물에 삶아 죽이는 형벌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팽형이란 끓여 죽이는 벌이 있지만 실제 죽이지 않고 끓는 솥에만 들어가는 명예형이다.
사실 이 팽형은 화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역이용한 것이다. 불에 데이면 작열통이란 통증 뿐만 아니라 흉터 때문에 마음이 다치는 상심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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