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의 예술은 키치 쓰레기 미국 달러도 마찬가지 판박이 비트코인이 대안
앤디 워홀의 예술은 키치 쓰레기 미국 달러도 마찬가지 판박이 비트코인이 대안
앤디 워홀(영어: Andy Warhol, 1928년 8월 6일 - 1987년 2월 22일)은 미국의 미술가이자, 출력물 제작자, 그리고 영화 제작자였다. 시각주의 예술 운동의 선구자로, 팝 아트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산업 일러스트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후에 화가, 아방가르드 영화, 레코드 프로듀서, 작가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본명은 앤드루 워홀라 주니어(영어: Andrew Worhola Jr.)이다.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한 워홀의 그림은 1963년에 제작된 캔버스로 1억 달러에 거래된 《여덟 명의 엘비스》(Eight Elvises)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개인적으로 거래된 이 사실은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이코노미스트는 미술 시장의 주도자로서 워홀의 지위를 설명한 것이다. 1억 달러라는 가격은 잭슨 폴록, 파블로 피카소, 구스타프 클림트와 윌렘 드 쿠닝만이 기록한 기준 가격이다.
1950년 (22세)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옮겨 '보그'(VOGUE)나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 등의 잡지 광고와 일러스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2년에는 신문광고 미술 부문에서 "아트 디렉터스 클럽 어워드"(Art Director's Club Award)를 수상하고, 상업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했지만 동시에 주문주의 요구에 부응하여 그림을 수정 하느라, 사생활에서는 대인 관계에서 타격을 받은 고난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나중에 단지 정확하게 비추는 TV 영상처럼 내면을 버리고 표층을 철저히 충실하게 추구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곧 선에 잉크를 실어 종이에 전사하는 "브로테드 라인"(Burottedo line)이라는 대량 인쇄에 적합한 기술을 발명한다.
1960년 (32세), 그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를 버리고 미술의 세계로 옮겨간다. '배트맨’, '딕 트래이시’, '슈퍼맨’ 등 만화를 모티브로 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하지만, 계약했던 〈레오 캐스테리 갤러리〉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만화를 모티브로 한 시대를 풍미한 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을 접한 이후 이 주제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당시 미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추구하고 있었다.
1960년대부터 그는 〈캠벨 수프 캔〉이나 〈코카콜라 병〉 등 유명한 상품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후에 그는 실크스크린으로 바꾸어, 대량생산된 상품의 그림을 그리는 것만 아니라 작품 자체를 대량생산하였다. 그는 "예술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뉴욕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인 《팩토리》(The Factory)에서 판화, 신발, 영화, 책 등을 만들어내었다. 워홀의 작품에는 의뢰를 받아 제작한 초상화나 광고도 포함되어 있다.
1961년 (33세),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캠벨 수프 캔〉이나 지폐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그린다. 1962년에는 실크 스크린 프린트를 이용하여 작품을 양산하게 된다. 주제에도 대중적으로 화제가 풍부한 것을 선택했다. 메릴린 먼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는 곧바로 영화 《나이아가라》의 먼로의 최고의 스틸 사진 초상화를 잘라서 다른 색깔을 입혀서 대량 생산을 계속했다. 제트기 사고, 자동차 사고, 재해 등의 화재의 신문 보도 사진을 사용했다.
1964년(35세)부터는 뉴욕에 《팩토리》(The Factory)라고 하는 스튜디오를 짓는다. 팩토리는 알루미늄 포일과 은빛의 그림물감으로 덮인 공간이며, 마치 공장에서 대량생산 하는 것 같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이미징하여 만들어졌다. 그는 여기서 예술 노동자(art worker; 아트 워커)를 고용해, 실크 스크린 프로세스 프린트, 구두, 영화 등의 작품을 제작 한다. 팩토리는 믹 재거(롤링 스톤즈), 루 리드(벨벳 언더그라운드), 트루먼 커포티(작가), 에디 세즈윅(모델) 등 아티스트가 모이는 장소가 된다.
1965년(36세),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이하 V.U.)의 데뷔 앨범을 프로듀싱 한다. 워홀은 V.U.의 연주를 듣고 공동 작업을 신청해, 배우 겸 모델인 니코를 데려와 합류시킨다. 1967년 3월 발매한 그들의 데뷔작 《벨벳 언더그라운드 & 니코》(The Velvet Underground & Nico)에서는 프로듀스와 자켓 디자인을 다루었다. 실크 스크린 프로세스에 의한 〈바나나〉를 그린 레코드 표지는 유명해 졌다. 전위적 음악이기 때문에 앨범은 별로 팔리지 않았지만, 이후 재평가되었다. 워홀은 V.U.의 악곡을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도 이용했다. 두 번째 앨범을 제작할 무렵에는 워홀과의 관계도 끝난다. 그들과의 관계는 영화 《루 리드: 로큰롤 하트》(Lou Reed: Rock and Roll Heart)에 그려져 있다. 또 워홀의 사후 멤버인 리드와 케일은 재결성해 《드렐라를 위한 노래》(Songs For Drella, 1990년)라는 추모곡을 만들었다. (Drella는 드라큘라와 신데렐라를 조합한 합성어이며, 워홀에 대한 그들의 인상을 나타냈다고 한다)
1968년 6월 3일 팩토리 스튜디오의 직원 밸러리 솔라나스가 스튜디오에 들어와 워홀을 총으로 세 발 쏘았다. 두 발은 빗나갔지만 세 번째 총알이 그의 양쪽 폐, 지라, 위, 식도를 관통했다. 병원에서 의사들은 그가 죽었다고 선언했으나 그는 그 총격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 솔라나스는 후에 "그는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1995년에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는 사교계로부터 의뢰를 받아 초상화 실크 스크린 제작 프린트를 다수 제작한다. 1970년 〈라이프 지〉에 의해서 비틀즈와 함께 '1960년대에 가장 영향력이 있던 인물'로 선정된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에 맞추어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같은 해 그의 어머니가 피츠버그에서 사망하면서, 전 세계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게 된다.
1982년부터 1986년 사이에는 재해와 신화를 모티브로 한 일련의 작품을 창조한다. 마지막 작품은 1986년 〈레닌의 초상화〉 등이다.
1987년 2월 21일 뉴욕 코넬 의료 센터에 담낭 수술을 받은 다음 날인 22일, 페니실린 알레르기 반응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58세였으며, 평생 독신이었다. 피츠버그 성 세례 요한 가톨릭 공동 묘지에 묻혔다. 피츠버그 시내에서 아르게이니 강건너 맞은 편 언덕의 노스 쇼어 지역에 앤디 워홀 미술관이 있다. 개인 예술가 전문 미술관으로서 미국 최대이다.
워홀의 작품 세계는 대부분 ‘미국의 물질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돈, 달러 기호, 식품, 잡화, 구두, 유명인, 신문 스크랩 등을 그렸다. 그에게 이런 주제들은 미국 문화의 가치를 의미했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는 언제나 코카콜라다. 대통령이 마시는 코카콜라는 내가 마시는 코카 콜라와 같은 그 콜라다". 그는 대중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이미지를 이용해 20세기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화려한 색채 같은 도판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실크 스크린 기법을 이용하여, 메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스타의 이미지와 상품, 달러 기호 등 미국 사회에 유포하는 경박한 기호를 작품화했다. 고전 예술과 모더니즘 등과는 달리 그 도안은 풍부한 미국 사회를 구현하는 명쾌한 팝아트, 상업 회화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대중문화’가 가지는 대량소비가 아닌 인류, 진부, 공허함이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보편성을 구한 그의 작품은 그 자신이나 대중이 매일 접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매스미디어와도 관련이 있으며, 또한 사고와 죽음의 이미지도 그려졌다.
워홀은 자신에 대해 물었을 때, "나를 알고 싶다면 작품의 표면만 봐 주세요.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며 철저하게 '예술가의 내면'을 없애고 표면적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유명한 것에 애정을 숨기지 않고, 스타와 정치인이나 사고, 패션 제품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으며, 그것이 유명하고 또 내 자신도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또한 그 자신이 미국의 유명인이 되고 나서도 걸음을 흩트리지 않고, 유명인을 연출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유지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An artist is somebody who produces things that people don't need to have.
예술가는 사람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앤디 워홀
앤디워홀의 작품은 예술이라고는 부를수 있지만 싸구려 키치일 뿐이다.
幼稚유치와 발음이 비슷한 키치(Kitsch)는 미학에서 보기 괴상한 것, 저속한 것과 같은 사물을 뜻하는 미적 가치이다. 키치는 세계 각지의 전통·현대 민예품, 인형, 가면, 상, 유아 완구 등에 보인다. 예를 들면 동물과 인간의 결합이 키치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키치는 단순히 엽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대 문화에서 키치는 패션과 영화, 광고 등에 걸쳐 하나의 주요한 속성으로 인정받고 있다.
몇몇 자료에 따르면 키치라는 단어는 19세기 후반기에 뮌헨을 찾았던 미국인 관광객들이 싸구려 그림을 사려고 하면서 스케치를 요구했던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손쉬운 미적 경험을 갈망하는 구매자들을 위해 생산된 천박하고 시시한 작품들을 뜻하는 키치라는 용어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클렌부르크 방언에는 '거리에서 쓰레기를 모으다'라는 뜻의 동사인 'kitschen'이란 단어가 있었다. 같은 단어의 같은 의미로 '가구를 골동품처럼 보이게 만들다'라는 뜻이 있으며, 또한 '싸게 팔다'라는 의미를 가진 'verkitschen'이라는 동사도 있다.
예를 들어 필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똥 닦은 휴지나 코 푼 휴지에 의미를 부여해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쓰레기는 쓰레기[컴퓨터 자료 처리 원리에 따르면 garbage in garbage out]일 뿐이다. 분명히 벌거벗은 임금님을 벌거벗었다고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아이들은 말할텐데 켐벨 수프 같은 재활용 쓰레기도 안받아줄 것 같은 개쓰레기를 자기나 소장하니 예술품이라고 속칭 팔아 먹는 앤디워홀의 행태 때문에 필자는 현대의 예술계가 거의 대중화 되지 못하고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고 본다. 백남준이 한 예술은 사기다고 한 말과 딱 어울린다. 켐벨 수프의 원가가 얼마일까? 예술품이 아니라면 쓰레기 버리는 비용이 드니 마이너스라고 볼수 있다.
같은 예로 미국 달러는 가치가 있을까? 앤디 워홀은 미국 달러나 마릴린 먼로, 모택동등의 초상을 실크 스크린해서 판화처럼 찍어내 고가에 팔아재꼈다. 달러 종이비용+프린트 비용+마케팅도 필요 없는 유통비용의 실제 가치는 얼마일까? 또 미국은 달러를 발행할 때 사기업인 연방준비은행에 빚을 지고 들어가기 때문에 고스란히 달러를 판 수익은 사금융 블랙홀에 들어간다.
일반인 생각에는 모든 사람이 돈으로 달러는 다 인정하는데 너만 왜 인정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는 달러는 사기인게 처음에 브레튼우즈 협정에서 35달러=1온스 금으로 고정화된 신용화폐의 약속이 헌신짝처럼 폐기되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약속을 하지 않고 찍어내면 되지 왜 밥먹듯이 식언을 하고 또 그 거짓말이 두려워 말을 듣지 않는 나라는 쿠데타나 군사적 보복으로 전복시키는 짓을 반복하느냐는 말이다.
필자는 빨리 새빨간 거짓말의 대명사 달러가 이 세상에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다행히 비트코인이란 암호화 화폐가 개발되어서 가짜 돈인 달러 현찰은 점차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제발 똥 뭍은 개[달라]가 겨 뭍은 개[비트코인] 나무라듯이 비트코인이 가짜네 사기네 하는 무식한 소리를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