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증기목욕탕과 몸에 있는 흉터침치료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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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원정 시대가 열리면서 증기목욕탕이 널리 유행하였으며 오래지 않아 유럽에 남녀 혼욕의 풍속이 들어왔다.
13세기부터 증기 목욕탕은 시이ㅡ회의 규제를 받았으며 당대의 도덕군자들로부터 엄중한 비난을 받았다. 목욕물이 따뜻하게 데워지면 호객꾼들은 경쟁자에게 질세라 큰 목소리로 손님들을 불러 모았다.
장미이야기에는 질투심 많은 남편 때문에 고생하는 여자에게 증기목욕탕에서 애인을 만나라고 귀띰한다. 한증 치료를 해야 하는 병에 걸린 체 하라는 것이다.
여자는 남편에게 핑계를 댄다. “여보 도무지 무슨 병인지 모르겠어요. 열병인지 통풍인지 종기인지 알 수 없지만 전신이 뜨거워 타 죽을 것만 같아요. 이럴 때에는 한증밖에 약이 없죠. 집에 목욕통이 두 개 있긴 하지만 찜질이 안 되니 효과가 있을 리 없지요.” 물론 남편은 이 꾀바른 아내에게 이웃 여자를 붙여 감시하게 할 것이다. 이웃집 여자도 같은 장소에서 만날 애인이 없으란 법이 있는가? 작가 장 드 묑은 연인들이 그곳에서 혼욕하며 즐기거나 침대로 직행할 것이라면서 이야기를 마친다.
수치심은 개인적이기보다는 사회적이고 도덕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고작해야 남녀 혼욕을 금지하는 정도였다. 1295년 플렌스부르크에서는 남녀가 같은 날 증기목욕탕에 가는 것이 금지되어 여자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남자들은 나머지 요일에 가게 했다. 요일을 지키지 않으면 의복을 몰수당했다! 중세시대는 발가벗긴 채 –혹은 속옷 바람으로-귀가하는 처벌을 받는 다는 것은 벌금보다 고약했다. 1410년 조례에 의거하여 벌금 40수를 물게 했다. 예티엔 부알로는 손님들이 즐겨 취했던 편법은 남자들이 밤에 증기탕을 찾을 때면 이튿날 아침 늦게까지 그곳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여전히 남자들이 버티고 있는 욕실로 몰려가고 그곳에서 차마 입에 담기 껄끄러운 일들이 벌어졌다.

수치심의 역사, 장 클로드 볼로뉴 지음, 전혜정 옮김, 에디터, 페이지 42-44

로마시대만 퇴폐적인 목욕 문화가 있던 것이 아니라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 암흑기에도 번창했다니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은 것 같다.
한의사인 금오 김홍경은 목욕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녀 목욕탕을 한번씩 바꾸면 남탕·여탕에 절어 있는 냄새와 때를 청소하는 비용이 절약된다는 이치를 알려면 음양토크 10급 이상이면 가능하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보편화된 방법으로 음양론적으로 일리가 있다.
아무튼 풍기문란의 장소로 목욕탕이 이용되지만 사실 목욕의 땀을 내는 발한법은 한의학에서 자주 쓰였던 치료법이었다. 또 스트레스 해소나 마사지, 기타 심신적인 안정도 가져온다.
불에 데인 흉터가 있는 경우 목욕탕을 가지 못한다. 조폭이 문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떳떳하게 목욕탕에 들락거림과 다르다. 흉터의 경우 부끄러움을 느끼니 같은 성별에게도 자연적으로 노출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www.imagediet.co.kr 자향미한의원에서는 화상후 흉터를 흉터침인 BT침으로 치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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