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의 집단 무의식과 모든 인간과 사물을 이어주는 블록체인기술
집단 무의식(集團無意識, 독일어: Kollektives Unbewusstes, 영어: Collective unconscious)은 카를 융이 제창한 분석심리학의 중심개념이며 인간의 무의식의 심층에 존재하는 개인의 경험을 넘은 선천적 구조 영역이다. 보편적 무의식(普遍的無意識)이라고도 부른다. 개인적 무의식의 대어로 융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심층심리의 역동을 설명하기 위해 이 무의식 영역을 제창했다.
언어 연상 시험의 연구에 의해 컴플렉스의 개념을 찾아낸 융은, 개인의 컴플렉스보다 더욱 깊은 무의식의 영역에, 개인을 넘은, 집단이나 민족, 인류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선천적인 원형의 작용력동을 찾아냈다.
원형의 작용과 그 결과적으로 개인의 꿈이나 공상에 나타나는 어떤 종류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여러가지 시대나 민족의 신화에도 공통되어 존재해, 이 때문에, 원형이나 원형이 존재하면 가정되는 영역은, 민족이나 인류에게 공통되는 고태적(아르카이크)인 무의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융은 이 무의식 영역을 '집단 무의식'이라고 명명했다.
인간의 행동이나 사고, 판단은, 자아와 외적 세계와의 상호작용으로 정해져 오는 면이 있지만, 한편, 집단 무의식 중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제원형의 역동작용으로도 영향을 받는 면이 있다.
융은, 집단 무의식 중에 여러가지 원형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그것들은 최종적으로 자기(Selbst)의 원형에 귀착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원형은 마음(영혼) 전체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 외적 세계라는 교섭의 주체인 자아는, 자기원형과의 심리적 에너지를 통한 역동적인 운동으로, 변용, 성장해, 이상 개념으로서의 '완전한 인간'을 목표로 한다고 여겨졌다.
이와 같이, 자아가 자기와의 상호작용으로 성장해, 구적 완전성으로 향하는 과정을, 융 심리학(분석심리학)에서는, '개성화의 과정'혹은 '자기 실현의 과정'이라고 불렀다. 개성화의 과정에 대해, 자기원형은, '그림자'의 원형이나 '아니마, 아니무스'의 원형, 혹은 '태모 (Great Mother)'나 '노현자(Old Wise Man)'의 원형으로서 역동적으로 작용한다.
필자가 보기에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융은 아마 불교 사상을 빌려 자신이 만든 것처럼 설명을 하고 있다고 보는데 집단적 무의식은 말나식이나 아뢰아식이란 용어가 있다.
말나식(末那識, 산스크리트어: manas 의 意, manas-vijñāna 의식 意識)은 유식유가행파를 비롯한 대승불교에서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식(八識: 8가지의 식) 가운데 하나로 제7식(第七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말나는 산스크리트어 마나스(manas: 문자를 따라 의역하면 意) 또는 마나스 비즈냐나(manas-vijñāna: 문자를 따라 의역하면 意識)를 음역한 것으로 의(意)라고도 의역된다.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 산스크리트어: mano-vijñāna)과 구별하기 위해서 의역인 의(意)라고 하지 않고 음역을 사용하여 말나(末那)라고 하는데, 《유가사지론》 · 《현양성교론》 등의 유식유가행파의 초기 논서와 진제삼장의 번역에서는 의(意)가 사용되고 있기도 한다.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말나식은 제8 아뢰야식을 소의(所衣)로 하여 성립된 식이며 또한 제6 의식(第六意識: 6번째 식)의 성립에 있어서 소의가 되는 식으로, 본질적인 성질은 끊임없는 사량(思量)이다. 말나식은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를 이끌어 내어 현행하게 함으로써 현재적인 인식이 이루어지게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말나식은 아뢰야식과 6식(六識: 6가지 식)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6식이 일어나게 하는 작용을 하는 마음이다.
말나식의 본질적인 성질인 사량(思量)은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도 긍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전의(轉依: 질적 전환)를 득하지 못한 상태 즉 번뇌에 물들어 있는 상태의 염오식(染汚識)으로서의 말나식에서 사량은 오염된 자아의식 즉 자기중심주의로 나타나고, 반면 전의를 득한 상태 즉 번뇌가 정화된 상태의 청정식(淸淨識)으로서의 말나식에서 사량은 나와 남을 평등하게 보는 평등심(平等心)과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나타난다.
전의를 득하지 못한 상태 즉 아직 번뇌에 물들어 있는 상태의 염오식으로서의 말나식의 3성의 관점에서의 성질은 유부무기(有覆無記)로, 아뢰야식의 견분(見分: 의식작용)을 끊임없이 자신의 내적 자아[自內我]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오염된 자아의식으로 작용한다. 구체적으로는, 염오식으로서의 말나식은 항상 아치(我痴)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4번뇌 즉 4가지의 근본적인 번뇌성의 마음작용과 함께 일어나며, 이들 4번뇌 외에도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으로는 변행심소에 속한 5가지 마음작용 모두와 별경심소에 속한 혜(慧) 그리고 대수번뇌심소에 속한 8가지 마음작용이 있다. 이들과 4번뇌를 합하면 총 18가지의 마음작용이 염오식으로서의 말나식과 상응하여 언제나 함께 일어난다.
반면, 전의를 득한 상태의 말나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 산스크리트어: samatā-jñāna)로 질적 전환이 되어 차별심을 떠나서 나와 남을 평등하게 보고 대자비심을 일으킨다. 유식유가행파의 수행론에 따르면, 5위 중 제3위인 통달위에서 평등성지의 일부분이 증득되고 제5위인 구경위에서 불과(佛果)를 증득할 때 즉 성불(成佛)할 때 그 전체가 증득된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산스크리트어 알라야 비즈냐나(आलयविज्ञान ālaya vijñāna)를 음을 따라 표기한 것으로 아리야식(阿梨耶識)이라고도 하며,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 또는 간단히 제8식(第八識, eighth consciousness)이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 등에 따르면 마음[心]은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6식(六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대해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 등에서는 마음에는 6식외에 이보다 더 심층의 의식인 제7식인 말나식과 제8식인 아뢰야식이 있으며, 따라서 마음은 8식(八識)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나아가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아뢰야식이 우주만물의 근본이 되며, 아뢰야식에 포함된 종자로부터 우주의 삼라만상이 전개된다고 보는데, 이것을 아뢰야연기(阿賴耶緣起) 또는 뢰야연기(賴耶緣起)라 한다. 아뢰야연기설에 따르면 개별 유정의 아뢰야식은 무시이래(無始以來)로부터 상속하여 각자 자신의 우주 만상을 변현한다. 즉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를 이룬다. 그리고 모든 유정의 각자의 우주는 서로 교섭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변현을 이루기도 하고 서로 교섭하여 공통된 변현을 이루기도 한다. 각 유정의 마음 즉 8식과 마음작용 · 승의근 등은 유정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변현인데,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 불공변(不共變)이라 한다. 산하대지(山河大地) 등은 모든 유정의 교섭에 따른 공통된 변현인데,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 공변(共變)이라 한다. 이와 같이, 아뢰야연기설은 개인적(주관적) · 상대적 유심론(唯心論)이라 할 수 있다.
깨달음의 증득의 측면 즉 환멸연기의 측면에서는, 아뢰야연기설에서는 유루(有漏)의 아뢰야식 가운데는 이미 선천적으로 무루의 종자[無漏種子]가 들어있다고 본다. 이 무루종자는 부처와 보살 등의 깨달은 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듣는 것을 증상연(增上緣)으로 하고 그 세력이 성도(聖道)에 의해 강력해져서 3계를 윤회하게 하는 원인인 모든 번뇌 즉 번뇌장과 소지장을 마침내 끊고 전의(轉依)가 증득되며,그 때 전5식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제6의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제7말나식은 평등성지(平等成智)로, 제8아뢰야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로 완전히 변형되어 전식득지(轉識得智)가 이루어지며, 이 상태는 곧 8식의 무루의 상태이며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이다.
물론 집단적 무의식, 말나식, 아뢰아식은 철학적인 용어라 잘 모르지만 인간에게는 공통적으로 어떤 연결된 고리, 양자 물리학에 따르면 운동화 끈과 같은 무언가로 서로 이어져 있고 그것이 우주 하나가 단일 컴퓨터처럼 완전히 같은 시스템으로 동작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철학적인 형이상적인 사변보다 이더리움과 같은 블록체인 기술은 이 세상을 하나의 단일 컴퓨터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중앙 서버에서 독재적인 통제처럼 은행이 브로커처럼 개입하는 것이 아닌 개인끼리 화폐를 주고받고 또 스마트 계약이나 기타 여러 다른 것들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요즘 심평원에서 보험회사에 개인 의료기록을 넘긴 것 또한 이런 부도덕한 사회적건강을 해치는 심평원을 해체하고 분산화된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메디블록과 같은 것에도 희망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