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세월호란

in #kr7 years ago (edited)

글을 쓰기 전에 이 글을 '보상 받지 않음'의 모드로 바꿔야할지, 잠시 고민했습니다. 어쩌면 세월호를 언급하는 모든 발화와 행위엔 더 강한 순수성을 요구 받는다는 자기 검열이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습니다. 그만큼 세월호란 지난 5년간 우리 사회에 너무나도 무겁고, 복잡한 사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고민을 하다 이 글의 모드는 그냥 디폴트로 놔뒀습니다. 굳이 부연을 하자면 나는 글을 쓰는 노동을 하는 사람이고, 노동의 가치도 가볍지 않으며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이 글로 과도한 수익을 얻으면 그만큼 뜻있는 곳에 환원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지나친 자기검열, 강박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이젠 좀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본론인 '나에게 세월호란'의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사실 저에게 세월호 당일의 기억이 없습니다. 5년이 지나서야 그날 당일을 왜 떠올렸는지 모르지만, 아무리 애써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건이 저에게 의미 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점유율이 너무나도 높아 한동안, 아니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기억이 없었을까요... 여러 기록들을 뒤져봤습니다. 구글 캘린더, 메일 등등. 결국 당일날 제 행적을 '에버노트'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사에서도 제 행적을 찾을 수 있군요. 저는 당일날 개장한지 6일째인 일산의 '한화아쿠아플라넷'을 찾았습니다. 새로 개장한 그 곳이 동물들에게 어떤 곳인지를 탐구하기 위해 동물권 시민단체 활동가와 그 곳을 방문하고 관찰했습니다.

복합수족관, 한화 아쿠아플라넷 일산 - 유리관에 갇힌 재규어는 뛸 수가 없네

저에게 저 수족관은 비명의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기사 앞 부분에 나오는 '홍금강앵무'새가 두 시간 넘게 개방된 나무 위에 앉아 비명 지르듯 우는 소리가 생생했습니다. 분명 교대 시간이 지난 듯 한데... 저 앵무새는 언제까지 저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있어야 하는건지.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진 않은지... 사람들이 자꾸 만지려고 손을 뻗는데, 혹시라도 사람을 공격하면 어떻게 하는지. 여러 걱정이 뒤섞였습니다.

제가 기사에서 지적한 내용들이 그 이후로 달라졌는지 모르겠네요.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동물원과 수족관은 동심을 키우는 중요한 장소인데요. 사실 그 이면엔 불편한 진실들이 존재합니다.

저 기사를 보니 그 날의 취재가 생생하네요. 그런데 여전히 '그 날', 세월호 뉴스를 접했을 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그 날 기억이 나냐고,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냐고. 아내는 제가 세월호란 배에 사고가 났는데, 다 구조해서 다행이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전원구조 오보를 보고 안심하며 얘기를 했던 모양입니다.

지나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수도 있는데요. 제게 '그 날'의 기억이 없는 이유는 어쩌면 제게 세월호가 '그 날' 만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사건 초기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세월호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상징적일까'

오래되고 낡고 안전하지 않은 배가 사용연한을 넘겨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익 때문이죠. 기업과 정부의 공모로 이런 안전하지 않은 운행이 가능했습니다. 낡은 배는 과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이익 때문이죠. 사람의 목숨보다 중한 이익..

세월호가 침몰하는 와중에 나온 선내 안내방송은 '가만히 있으라'였습니다.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6글자 중에 '가만히 있으라'보다 더 적확한 것이 있을까란 의문마저 생깁니다. 학생들에게도, 성인들에게도 나대지 마라, 비판하지 마라, 의문을 가지지 마라, 그냥 가만히 있어라 등 살면서 부딪칠 때마다 늘 이런 말을 이 사회가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만히 있지 않아야 살 수 있었는데도 우리 사회는 끝내 사람을 살리기 보단 통제하려 했습니다.

사건 초기에 저는 실종자 가족들, 친구와 지인들, 생존자들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전문의들에게 이들의 마음을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를 물었습니다. 제가 세월호 다음 주에 쓴 기사입니다.

세월호 침몰 참사 - 정신의학 전문가들 “혼자 있다고 느낄 때 더 큰 고통이 밀려온다”

이 취재를 하다가 자연스레 대형재난의 피해자를 접촉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03년에 발생한 대구지하철화재의 유가족들이 '암매장꾼'으로 몰려 재판을 받고 있단 사실이었죠. 이 재판에서 그들은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재판까지 갔다는 사실조차 너무 황당했습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이 암매장꾼으로 몰린 결정적인 원인은 '당시 대구시 부시장의 거짓 회유'였고, 그 대구시 부시장이 세월호 참사 당시의 안전행정부 장관으로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인 것 같단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사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처음 공개하기도 했고, 제가 쓴 기사 중에서 여러모로 많이 고민하고 공들여 쓴 것인데요. 그만큼 조명을 받지 못하고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단 느낌을 받는 기사이기도 합니다.

유가족은 그렇게 암매장꾼으로 몰렸다

5월 9일에 나온 이 기사의 첫 문장을 제가 이렇게 썼습니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겪으며 많은 이들이 “추모하겠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말로 그렇게 해왔을까요. 답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재난을 우리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피해자들이 지난 11년간 살아온 이야기는 어찌 보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저는 대구 지하철 화재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입니다.
"지금은요. 전국적으로 세월호를 추모한다, 잊지 않겠다는 목소리만 들려요. 다른 목소리는 안 들리죠. 그런데 우리도 그랬어요. 사건 초기엔 어떻게 저런 재난을 당했을까. 가족을 잃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이런 목소리만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니깐, 이 사회가, 정치권이, 언론들이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거에요. 이상한 요구를 하는 그런 이상한 사람을요. 조금만 지켜보세요.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어떤 소리를 듣는지요. 우리처럼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지 몰라요. 잘 지켜봐야해요."

전 이 말을 듣고 부인했던 기억입니다.
"설마요.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게 살아오셨지만, 설마 우리 사회가 세월호를 향해 그럴까요. 전 잘 모르겠어요. 설마 그럴까 싶어요."

제가 얼마나 순진한 낙관주의자였는지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불과 두 달이 지나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보상금'을 탐내거나, '국가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로 매도되고, 때로는 다른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들로 몰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답답했습니다...

제가 취재로서 세월호를 조명한 기사는 유민아빠의 인터뷰가 마지막인 듯 합니다.
악성 비난에 난도질당한 46일 단식, 회복 중인 병실에서 유민아빠 첫 심층인터뷰

이 인터뷰에서 오히려 따박따박 팩트체크를 하는 취재가 힘들었습니다. 저 분에게 '왜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는지, 이혼한 뒤에 자녀와 어떤 관계였고, 양육비 지원을 했는지, 국궁이란 취미생활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지'를 묻는 게 오히려 죄스러웠지만, 악성 기사를 반박하기 위해 불가피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세월호와 관련된 취재기입니다.

그렇다면 그냥 그저 인간으로서 저에게 세월호란... 자녀를 잃은 사람들에게 이 사회가 이렇게까지 가혹할 수 있는가를 느낀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가혹함의 근원엔 권력, 기득권의 수호가 있었죠. 아니 어쩌면 그분들에게 그리 가혹하지 않았어도 그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잃진 않을 수 있었는데도, 왜 그랬을까란 의문도 남습니다. 그저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에 대한 예의'가 부족한 것일까요.. 전 세월호 이전엔 이 사회가 이젠 다원화되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힘든 복잡한 사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을 했었는데요. 세월호 이후엔 이 세상엔 아직까진 '분명히 옳고 그른 것이 있다'고 생각을 고쳤습니다.

자녀가 있는 제 입장에서 다시 되돌아보면, 그 분들의 슬픔을 정말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아직까지 제 마음을, 제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기가 힘드네요. 내년에 후년에, 아니면 5년 뒤, 10년 뒤에 나에게 세월호란 무슨 의미인지 다시 찬찬히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그 전에 일단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세월호와 관련해, 또 사회적 재난과 참사와 관련해 마음 아픈 사람들에게 가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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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고 있고, 그 당시에 같은 또래 여서 더 생생합니다.
수학여행도 취소가 되고 그랬네요.

아이들이 그 어두운 곳에 갇혀서 느꼈을 그 고통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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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놈들은 그냥 눈에 모자이크 안하고 기사가 나가면 안되는 건가요?
모자이크 없는 사진이 자자손손 대대손손 저 놈들 죽을 때 까지 인터넷에 살아있어서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해 봅니다.

진짜 나쁜 놈들이에요. 본인들이 비슷한 일들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려나.. 근데 제가 많은 재난, 고통을 겪은 분들을 만나봤는데, 그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어요. "내가 당하기 전엔 우리 사회에 고통을 겪은 분들에 너무 관심이 없었다. 이제라도 그 분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고통을 당한 분들이 모욕감까지 느낄 때, 그때 같이 해줬어야 했는데, 내 일이 아니라 너무 관심이 없었다. 그냥 무심하게 뉴스를 보곤 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요..
대신 그 사람에대한 이야기는 남은 사람들이 만드는데로 그 사람이 되어버리더라구요..
ㅠㅠ
보상없이 이 글을 쓴다는 것은 말도 안되지요..
꼭 보상받으시고 더 이 이야기를 알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착하고 말 잘듣는 아이로 만드는 이 사회에 제대로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야말로 후대에 남기는 일인걸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를 야단치든 아이땜에 속상하든 그 잃은 마음의 10%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에도 그 슬픔의 깊이를 느끼기에 남은 이들이 반성 또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니까요..ㅠㅠ

저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해에 첫 아이가 태어났어요. 아이를 키워보니 느껴지더라구요. 아이를 잃은 슬픔은 정말 상상조차 할 수가 없구나... 우리 사회가 왜 저들을 모욕하는 잔인한 곳이 되었나..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시는 그런 사회가 되면 안 되겠죠..

진실은 덮어져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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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진실이 꼭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네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하루종일 안타깝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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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랬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구 지하철 참사 등에서는 세월호처럼 왜 이런 관심이 없었을까요. 그리고 정부나 대통령 탓도 별로 없었던듯 한데.

개인적인 생각은, 대통령이나 고위 공무원 문제라기보다, 이건 그냥 사회적으로 시스템과 기본적 안전의식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때 잠시는 관심이 있었고, 나름 전국적 추모 분위기도 있었다고해요. 그런데 금방 잊혀졌죠. 대중의관심에서 멀어지니, 저들이 하는 말에도 힘을 잃었구요. 10여년 뒤에 암매장 혐의로 재판을 받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죠. 저런 황당한 참사로 내 가족을 잃은 수십여명의 유가족들이 단체로 공원에 암매장을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텐데, 우리 사회가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죠.

마지막 문장이 참 ...와닿습니다..마음아픈 사람들에게 가혹하지않기..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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