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방갈다에서 보낸 어린이날 어른일기

in #kr5 years ago (edited)

어린이날 두 아이의 아빠가 일기를 씁니다.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하루를 따뜻하게 보냈습니다. 충분히 뛰놀고 생동한 아이들이 오늘은 밤 10시 이전에 잠들었습니다. 드문 경우죠. 그 덕분에 저도 이렇게 노트북을 열어 음악을 듣고, 글도 쓰고 있습니다.

음악은 오랜만에 스위트피를 듣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추천해주는 음악들이 마음에 들진 않는데, 갑자기 김민규의 '안녕 스무살'이 있었고, 그 이후로 오랜만에 sweat pea 앨범을 들었습니다. 스위트피의 kiss kiss는 자꾸 반복해 듣습니다.

어린이날인 오늘 오후에 삼청동으로 향했습니다. 삼청동은 제가 아이들과 자주 가는 곳입니다. 특히 삼청공원의 모래놀이터와 숲속의도서관을 제일 많이 찾았습니다. 지난 1년간 아이들이 집 이외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 아마 거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근의 여러 식당과 기차박물관 등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삼청공원이 아닌 과학책방갈다를 찾았습니다. 그 곳도 아이들과 꽤 자주 찾는 곳이고, 저에겐 고마운 동네책방이자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작년에 신문사를 그만 두고 잠시 백수였던 시절 갈다의 '비상근 홍보매니저'를 하겠다고 자처해놓고는, 별로 기여도 활동도 못했지만, 그래도 갈 때마다 저를 멤버처럼 대해주십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를 위한 여러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들었고, 그림책 낭독회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제가 세시반 낭독자로 이미 정해져 있다고.. 무얼 어떻게 낭독하는건진 모르지만, 일단 아이들 둘을 데리고 갈다를 향했습니다.

갈다에는 제가 아이들과 함께 보는 그림책이 여러 권 있습니다. <달사람>이란 그림책은 사놓고 집에 가져오지 않고, 오히려 책방에 두고 갈 때마다 보는 편입니다. 이날도 갈다에 도착해 아이들과 이런저런 그림책을 골라 함께 읽고 있다가, 마침 지하에서 '플레이콘'으로 노는 행사가 있다고 가보라는 권유를 받고 냉큼 내려갔습니다. 미리 신청해서 온 아이들과 부모들이 있었는데요. 저는 등록도 안 했으면서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하에 돗자리를 펴고 아이들이 안고 누워서 이야기를 듣고, 놀 수 있도록 해놓았더군요.

이날 강연자 겸 진행자는 과학작가로 유명한 이은희 선생님(필명 '하리하라')이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에 대한 강연을 하셨고, 본인도 그동안 많은 강연을 하셨지만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이 강연이 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는데요. 아이들은 생각보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집중하며 우리 몸의 '세포'에 대한 강연을 듣고, 선생님의 질문에도 적극적으로 답변했습니다. 여섯살인 제 아이도 나름 소리치며 무언가를 대답하곤 했죠.

강연 뒤에는 '플레이콘'으로 만들기 놀이가 이어졌습니다.플레이콘은 옥수수로 만든 '놀잇감'입니다.(저는 장난감이란 용어에 살짝 거부감이 있습니다. '놀이'를 장난으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플레이콘에 물을 살짝 묻히면 끈적이는 점성이 생기고, 서로 이어붙이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세포 삼아 무엇이든 만들어보잔 취지였는데요. 저는 아이들과 함께 플레이콘으로 기린, 거북이 등을 만들었습니다. 큰 아이는 다소 독특한 형태를 만들더니 "이거 바다생물이야"라고 하더군요. 한창 만들기 놀이를 하던 중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상비니 삼촌이 와주었습니다. 저의 친한 친구이자,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삼촌'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날 행사를 뒤늦게 등록하고 이은희 선생님의 그림책 <우리들을 자란다>를 사서 싸인을 받았습니다. 집에 와서 읽어보니, 역시 좋은 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종종 읽어줘야 겠어요.

만들기 놀이 이후에도 책방 갈다는 아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실내외가 잘 이어진 건물(주택을 개조한 동네 책방)과 작은 마당이면 충분했습니다. 생물학과를 나온 이은희 선생님은 아이들과 마당에 심어진 풀과 꽃들로도 재밌게 놀았습니다. 노란색 꽃이 고운 '애기똥풀'을 꺾어 똥색 수액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도 한참을 보냈고, 하리하라샘이 냉이꽃을 꺽어 네살짜리 제 아들에게 주며 "이 꽃이 하트 모양이야.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면 돼. 누구에게 주고 싶어?"라고 묻자, 제 아들은 "다인이"라고 바로 대답합니다. '아들아 다인이 누구니'

수돗가에선 상비니 삼촌이 제 아이들 뿐 아니라, 이날 놀러온 모든 아이들과 돌과 풀을 가지고서 재밌게 놀고 있었습니다. 놀잇감은 돌과 풀, 물이면 충분했습니다. 아니 바닥에 깔린 돌 사이의 빗금만 있어도, 그걸 밟지 않으며 걷는 놀이를 했습니다. 그러다 첫째가 어제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조종하는 자동차'가 담긴 가방(판도라의 상자)을 열었고, 그걸 가지고 저의 두 아이가 서로 싸우며 생떼를 쓰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예닐곱의 어른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제가 그 사이에서 아이들을 중재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결국 누나 선물만 가져오고, 동생 선물을 안 가져온 '아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으로 중재를 마무리했고, 그 이후로도 줄곧 즐겁게 놀았습니다. 마당 식물에 물을 주는 호스만으로도 아이들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드디어 이날 원래 하려던 행사인 '낭독회'의 시간. 이미영 매니저님이 <세상을 바꾼 여성과학자 50>이란 책에서 한 장을 골라서 읽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우연히 펼친 장이 '레이첼 칼슨'을 설명하는 장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풀어주며 예닐곱의 아이들을 앉히고, 낭독을 시작했습니다. 레이첼 칼슨은 동물학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에 들어가려 했으나, 갑자기 아버지가 사망해 가족 부양을 위해 공부를 중단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칼슨은 일을 하면서도 개인 시간에 자연에 대한 글을 쓰곤 했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사견을 덧붙여 "역시 사람이 일만 하면 안 되고, 일을 하지 않는 시간,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잘 확보해야 합니다. 그게 정말 중요합니다"고 강조했습니다. 제 말을 듣는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지었고, 어른들은 낭독자의 사견이 너무 많다며 지적했습니다. 저는 낭독을 이어갔습니다. 칼슨은 첫 번째 저작을 발간했으나,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책부터 대중적으로 성공하며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저 역시 더 책을 써야할까봐요..

칼슨은 제초제 DDT의 해악을 알린 <침묵의 봄>이란 책의 저자로 유명합니다. 칼슨의 친구가 자신의 농장에 DDT를 사용하고난 뒤 달라진 모습을 그에게 편지를 쓰면서 DDT에 대한 문제의식이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짧은 글을 낭독했지만, 칼슨에 대해 더 궁금해지는, 여러 느끼는 바가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날은 저에겐 나름 삼청동과 작별인사를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갈다에서 나와 삼청공원을 잠시 산책했고, 놀이터에도 잠시 들렸습니다. 삼청동의 자주 가던 식당에서 저녁도 먹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갈만한 식당이 서울 어디나 참 마땅치가 않은데, 그 식당은 정말 자주 찾았던 곳이죠. 마지막 기억은 그리 좋진 않았지만, 여튼 그래도 고마웠던 기억이 더 많습니다.

다시 오긴 하겠으나, 이전처럼 자주 올순 없겠죠. 아이들과 많이 웃은 어린이날, 굿바이 삼청동.

마나마인_애니메이션.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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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군요. :)
삼청동에서의 추억이 제 눈에도 선하게 보이네요~!

제주에 오시게 되는 사연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
우선 https://www.facebook.com/groups/1722427378043847/
제주 it 프리랜서 그룹에 가입하시면 궁금하신점이나 제주관련 정보 얻으실 수 있을 거에요!

우와 이런 꿀팁! 고맙습니다^^ 사연은 솔나무님과 크게 다르진 않고요. 나중에 만나서 더 자세한 얘길 나누죠 ㅎㅎ

네네!! 서귀포쪽 오시게 되면 페이스북 메세지 주세요~ :)

@hyeongjoongyoon님 곰돌이가 1.9배로 보팅해드리고 가요~! 영차~

고마워요 곰도뤼~!

곰돌이가 @gomdory님의 소중한 댓글에 시세변동을 감안하여 $0.001을 보팅해서 $0.022을 지켜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4525번 $51.380을 보팅해서 $57.378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와~~~ 알찬 하루를 보내셨네요. 저는... ㅠㅠ

빡세면서 알찬 하루였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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