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THE DAY 7

in #kr8 years ago

미국 의학협회는 새벽부터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의학자들이 회의실에 모여 각자의 의견을 내놓고 토론하느라 번잡한 재래시장처럼 소란스러웠다.

얼추 백여 명 정도의 의학자가 이미 모여 있고, 미국 전역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고 있는 학자들도 수백 명이 넘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세계의학협회의 긴급소집이었다.

넬사 윤의 어머니 클라라도 그들 사이에 끼여 있었다. 그녀는 한국에 있는 딸 넬사와 동료들에게서 전화를 받고 사태의 심각함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각국에 흩어져 있는 동료들로부터 일 년 동안 받을 전화를 하루 동안에 다 받았던 것이다.

의장인 닐슨이 마이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것으로 장내의 소란을 일시에 잠재웠다. 닐슨은 컨트리가수처럼 흰 수염을 기르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구부러진 등이 그의 수염이 주는 위엄을 반감시키고 있다.

“어젯밤에 일어난 사태에 대해 지금 부검의들이 사인을 규명하고 있지만, 오늘 사태는 나의 의사 생활 오십 년 만에 생전 처음 겪는 일이올시다.”

의장인 닐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사태는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기현상입니다. 제 딸 넬사가 파견 근무 중인 한국을 비롯하여 섹스에는 다소 보수적인 동양권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일본 동경에서는 아이를 낳던 산모가 괄약근으로 태아의 목을 조여 숨지게 했고, 산모도 과다출혈과 심장마미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클라라가 닐슨의 말에 부연설명을 달았다. 클라라는 미국의학협회 세 명의 부의장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토종 한국인이었지만, 서구적인 미모와 큰 키로 인해 어쩐지 혼혈적인 느낌을 주었다. 시원한 성격과 추진력 있는 일처리로 한 명이 배정된 아시아 출신 부의장으로 일본인을 제치고 추대되었었다.

“Emerging infection disease!”

카젠버거가 안경을 치켜 올리며 그렇게 소리쳤다. 카젠버거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생긴 사내였다. 쉰을 갓 넘겼지만 아직 혈기왕성한 그는 큰 키에 비해 다소 마른 체격이었다. 왠지 완력을 쓴다면 보통이 넘을 것처럼 늘 에너지가 넘치고 있는 사내였다.

“전염병이라고? 카젠버그 박사는 에이즈나 에볼라 같은 바이러스가 원인이라고 보시오?”

닐슨이 습관적으로 수염을 한 번 쓰다듬고 그렇게 물었다. 수염은 쓰다듬을수록 윤이 난다고 믿는 그였기에 그는 이 버릇을 의도적으로 만들었고, 오랜 세월이 지나자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의장님! 버그가 아니라 버거입니다.”

그것은 카젠버거가 다소 경직된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려고 던진 회심의 조크였다. 이런 유의 조커는 학생들에게는 잘 통했다. 하지만 이 시간에 여기 모인 사람들은 카젠버거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아니었다. 아무도 웃지 않자, 카젠버거는 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저는 이것을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에이즈나 에볼라뿐만 아니라, 돼지를 매개로 하여 뇌염을 일으키는 니파바이러스, 또 73년 미국 코네티컷 주 라임 시에서 발생한 라임병은 진드기가 옮기는 보렐리아균이 원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라임병은 아직까지 그 예방법이 없습니다. 21세기의 천형이라 불리는 이런 병들은 모두 바이러스가 원인이었습니다.”

카젠버거가 일사천리로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한계였다. 급한 성격에 일단 저질러 놓지만 뒤처리가 약한 것이 언제나 그의 단점이었다.

“각 나라마다 풍토에 따른 전염병들은 있습니다. 77년 발생한 한탄바이러스는 한국의 한탄강에서 발견되어 중국 러시아 등으로 퍼졌고, 변종인 한타바이러스폐증후군이 미국의 애리조나에서 발생해 미국과 남미로 퍼져나간 경우도 있습니다. 에볼라출혈열은 76년 자이레와 수단에서 발생해 90퍼센트의 사망률을 기록한 뒤 사려졌다가 20년 후인 95년 자이레에서, 그리고 96년 가봉에서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전염병은 한 곳의 발생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전염되거나 변이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클라라가 준비한 자료를 뒤적이며 카젠버거의 부연설명을 했다. 설명을 끝낸 클라라는 목을 죽 빼고 동료 의학자들을 한 명씩 둘러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명성이 있고, 나름대로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었다.

그러자 대부분의 동료 의학자들은 클라라의 시선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고, 여기저기서 마른 헛기침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뽀르르 달려와 자리만 멀뚱히 지키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우선 이것이 바이러스인가 아닌가라는 명제로 논의를 해봅시다.”

또다시 소란스러워지려는 찰나, 노련한 닐슨이 상황을 바르게 정리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역시 자신의 자랑인 길고 흰 수염을 한번 쓰다듬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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