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친구 같았던 사촌 자매

in #kr8 years ago (edited)

외갓집에서.. 은영이와 같이 찍은 사진이다.

0C612820-5B47-493A-A1E1-E8FB9D1EAF44.jpeg

은영이는.. 큰외삼촌의 딸로..
나보다 생일이 딱. 2달 늦은.. 동생이었다.

말이 동생이지..
우리는 그냥 친구였고.. 나름, 죽이 잘 맞았다.

은영이는 닭발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외숙모가 하얀 닭발을 푸욱- 삶아주면..
둘이서 그걸 쪽쪽- 빨면서 놀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처음 삶아진 닭발을 봤을 땐.. 혐오스런 마음에..
속으로.. 이걸 어떻게 먹지? 했다가..

너무 맛있게 먹는 은영이를 보고.. 호기심에..
따라서 먹어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맛을 들여서..
나는 지금도 닭발을 무지 좋아한다. ㅋ)

은영이의 아빠였던, 나의 삼촌은.. 직업 군인이라..
은영이네는 부대 안 사택에서 살았었고..
군의 발령에 따라.. 자주 이사를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곳만 해도..
서울, 수원, 천안, 양구, 인제, 창원, 마산 등 이었으니..

거의 전국구 수준(!!)의 잦은 이사로..
친구를 거의 사귈 수가 없어서..
은영이가 많이 힘들어하고 슬퍼했던 기억도 난다.

요상했던 은영이의 말투도..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팔도 사투리가 다 섞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내던 중...
삼촌이 진급에서 누락되고.. 전역을 하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마산에 정착해서 살게 되었는데..

드디어 이사는 끝났다고..
정말로 좋아했던 은영이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

사업을 시작했던 삼촌이 번번히 망하면서..
결국, 외숙모와 함께 고기집을 차리게 되었는데...

거기서.. 바람이 나버린 외숙모가...
어느날, 가게를 팔아치우고 도망을 가버렸고...
(당시에.. 외할머니로부터는.. 그렇게 들었다.)

그때부터... 은영이의 인생도.. 꼬이기 시작했다 ㅠㅠ

갑작스런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남동생을 건사해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맞게 된 새 엄마는...
젊은 처녀였는데...
정말로 삼촌보다 더!! 대책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던 은영이를 괴롭혀서.. 공금까지 횡령하게 만들고..
결국 잘리게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자신이 낳은,
어린 이복 동생을 키우게 만들더니..
그 동생을 다 키우기 전까지는 시집도 가지 말라고..

그렇게 은영이는 한참을.. 족쇄가 채워진 상태로..
암흑 속을 헤메고 있었는데...

보다 못한 구출조 출동!!

그 구렁텅이에서 은영이를 구출할 방법은..
어떻게든 결혼을 시키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우리 엄마와 막내 이모가..
작전을 짜서..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결국, 막내 이모가 찾아낸 남자와 맞선을 보고..
결혼을 하게 된 은영이는..
그제야 삼촌네에서 해방이 되었고...

자영업을 하는 남편과 두 아이를 낳아서..
네 식구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 사이.. 소식이 끊어졌던 외숙모와도..
다시 연락이 닿게 되었는데..

나중에 전해들은 바로는.. 당시의 외숙모가..
바람이 난게 아니라.. 삼촌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도망을 가신 거였다고 한다.

고생했던.. 착한 사람들의 해피 엔딩!

지금.. 은영이는..
삼촌네와는 완전히 의절하고..
외숙모와 같이 살고 있다.

물론 그러면서.. 아쉽게도...
친가 쪽인, 우리와도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은영아~ 나는 니가 행복해서 참 좋아!!

너.. 아니?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내 인생의 첫번째 친구가.. 바로 너. 였다는 거...

조만간.. 외숙모가 삶아주는 닭발을 얻어 먹으러..
은영이네에 불쑥- 한번 찾아가봐야겠다~ ^^

Sort: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76
BTC 64288.81
ETH 1666.04
USDT 1.00
SBD 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