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집성촌의 기억
부모님이 경주로 신혼 여행을 다녀온 후..
아버지의 큰 아버지 집에서..
친가쪽 가족들이 다 모인, 기념사진이다.
어릴 적에.. 아버지의 고향인 시골 마을에 가면..
국민학교가 있는 삼거리를 중심으로..
학교 뒤 편으로 큰 고모집과 고모네 과수원이 있었고..
학교 정면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내려와서 왼편에,
큰아버지의 집과 목공소가 있었고..
더 내려와서 샛길을 지나 개천을 따라 가다보면..
작은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그 다리를 건너 왼편에,
할머니와 작은 아버지가 살던 집이 있었고..
할머니 집을 지나, 골목으로 좀 들어가면..
아버지의 사촌 형님이 하는 술도가와 집이 있었고..
술도가를 지나 더 올라가면..
아버지의 큰아버지의 집이 있었다.
지금이야.. 발전이 되고, 개발을 하면서..
마을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고..
대부분 도시로 떠나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때까지는...
나름 집성촌을 이루며.. 한 동네에 일가친척들이
모두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것이다.
그 중에.. 이 사진의 배경이 되는 곳.
우리 아버지의 큰아버지의 집인데...
커다란 한옥집으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으로 돼지 우리와 소 축사가 나란히 있었고..
오른편에는 개집과 닭 사육장이 있었으며..
정면으로 단독 문간방 건물 하나를 지나면..
ㅁ자 형태의 마당을 둘러싸고 집이 있었다.
거기엔 큰할아버지, 큰할머니를 비롯하여..
장손인 오촌 큰아버지 내외와 자식들까지..
3대가 살고 있었는데...
명절 때, 우리 가족들이 시골에 내려가면..
늘 무조건! 인사를 갔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사육되고 있었던 가축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더럽고 냄새가 지독해서 싫기도 했고...
여전히 상투를 틀고 수염을 기른 채로,
한복을 입고 계셨던.. 백발의 큰할아버지가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커가면서...
왜 여기에 계속 인사를 와야 하는지..
아버지한테 불만이 생기기도 했었는데...
그 진짜 이유를..
올 연초, 설날에 비로소 알게 되고 나니..
갑자기 이 사진의 의미가 각별하게 느껴진다.
해방이 되고, 일본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가족들이
처음으로 살았던 곳이 바로 여기! 였던 것이다.
큰할아버지는 오갈데 없었던 동생네..
무려 9식구를 받아 주었고.. 동생이 죽고 나서,
제수씨가 독립해서 집을 얻어 나갈 때까지
오랜 세월 동안 거둬주셨던.. 정말 고마운 분이었다.
현재는.. 이 집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큰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사촌 형님들까지 모두 돌아가셨지만..
(막내인.. 사촌 동생 한 분만 살아계신다.)
아버지는 8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집안의 장손인 조카의 집을..
명절 때마다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찾아가신다.
이는... 단지 제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어린 시절의 깊은 고마움.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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