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명 소개와 화상흉터치료

in #kr7 years ago

부산 지명 소개와 화상흉터치료

인터넷 유머를 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존재한다. 부산엔 이런 동이 있답니다.

화투 치면 가장 광 많이 파는 곳 → 일광

이쁜 여자만 사는 곳 → 부산진

멋진 남자만 사는 곳 → 미남

가장 따뜻한 곳 → 온천

가장 추운 곳 → 영도

영도보다 더 추운 곳 → 동상

가장 편한 곳 → 안락

가장 위험한 곳 → 감전

불임 여성도 임신하는 곳 → 수정

기름 걱정 없지만 메르스 걸리는 곳 → 중동

직장 구하면 바로 잘리는 곳 → 사직

진급이 안 되는 곳 → 좌천

날마다 결혼식 하는 곳 → 주례

가장 발기가 안 되는 곳 → 부전

승려, 외교관이 많은 곳 → 대사

박태환이 울고 간 곳 → 수영

우주여행 하는 곳 → 토성

냄새 많이 나는 곳 → 대변

불은 면 요리만 먹는 곳 → 우동

전쟁나도 총알 걱정 없는 곳 → 장전

佑洞우동 U-dong
우동(佑洞)은 1740년 편찬된『동래부지』에는 동면 우동리(右洞里)로, 1882년의『동래부읍지』에는 동래부 동면 우동(右洞)이었다. 1937년『동래군지』에는 남면(南面) 우동(右洞)으로 불리어왔다. 우동이란 명칭이 불리게 된 요인은 해운대의 중심가로 변모한 중동(中洞) 일대의 옛 온천지역인 구남평원(龜南平原)을 가로질러 동백섬 옆 수영만으로 흐르는 춘천천이 있었는데 이의 오른쪽에 자리한 마을이란 연유로 붙여진 듯하다. 그런데 오른쪽 마을의 우리(右里)·우동(右洞)이 일제 때에는 좋은 뜻을 가지는 한자 또는 글자로 바뀌면서 도울 "우(佑)"의 우동(佑洞)으로 바뀐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동에는 장지(長旨)·못안(池內)·운촌(雲村)·승당(勝堂) 등 4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장지와 지내마을은 예부터 농사가 주업이었고, 운촌과 승당마을은 바닷가로 어업을 주업으로 운촌은 해운대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로 해운대의 발상지로 원래는 해운대라 불리어 왔으나 언제부터 운촌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정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옛날 어느 선비가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서울로 가다가 다른 선비들이 자신의 출신지를 남촌이니 북촌이니 하자 자신도 운촌이라 하였다는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도 한다. 한때 운촌과 승당마을의 앞바다는 멸치의 황금어장으로 손꼽혀, 4월부터 10월까지 멸치철에는 밤마다 밝히는 횃불을 따라 몰려드는 은백색의 멸치떼들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1966년 인구의 증가로 인해 우1,2동으로 분동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못안마을, 설분곡마을, 승당마을, 운촌마을, 장지마을이 있었다.
센텀시티와 마린시티 등 신도시를 끼고 있으며 마린시티의 화려한 외관을 가진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들 덕에 부산의 부촌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다만 우동 역시 부산의 다른 대부분의 부촌들처럼 동 전체가 부촌이라고 볼순 없는데, 우동에서 부촌인 지역은 대략 대우 월드마크 센텀~경동 제이드 사이라고 볼수 있다. 이 사이에 센텀시티의 아파트 단지들인 대우 월드마크 센텀, 트럼프 월드 센텀, WBC 더 팰리스가 있으며, 마린시티와 대우 마리나, 해운대 자이, 동부 올림픽타운, 현대 베네시티 등 우동의 아파트 단지들이 밀집되어 있다. 경동 제이드 동쪽부터는 해운대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관광지답게 유흥가나 모텔촌이 형성되어 있으며, 소규모 사창가도 위치하고 있다. 또 부산기계공고 인근으로는 재개발 구역같은 달동네나 평범한 주택가 혹은 빌라촌이 밀집하고 있는데 해당 지역 역시 부촌이라고 볼수 있는 지역은 아니다. 흔히 해운대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대부분이 이 동네에 모여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동은 도울 우란 한자가 들어서인지 부촌이다. 그런데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우동 국물등 국물음식을 좋아하며 뜨거운 것을 마셔도 시원하다고 하는데 그럴수록 국물에 의한 끓는 물 화상흉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화상흉터는 카카오톡 자향미한의원 BT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부산 동래구 溫泉洞온천동 Oncheon-dong 흔히 온천장, 동래온천이라고 하면 가리키는 곳. 금강공원과 우장춘기념관이 있다. 허심청 등 영업 중인 온천 시설도 대부분 이곳에 몰려 있다. 천연족욕탕도 있으니 기회가 있으면 이용해 보자. 1970~80년대 온천장은 부산에서 금강공원까지 끼고있어 대표적인 번화가였으나 스파쇼핑 폐업, 동부터미널 이전 여파로 상권 변화를 크게 겪는 바람에 쇠락된지 오래다. 조선시대 온천동(溫泉洞)에는 온정원(溫井院)이라는 원(院 : 국가의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관리를 위해 역과 역사이에 설치하였던 관용의 여관)이 있었을 뿐 다른 마을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이곳은 동래부 서면(西面)의 산저리(山底里)가 일부 차지하였고, 다른 일부는 북면의 장전리(長箭里)로 호수가 30여호에 불과하여 하나의 행정단위의 동리는 되지 못했다. 조선시대 동래부에서 온천시설을 갖춘 바도 있었지만 대중성이나 영리성을 띄지 못했다. 동래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일제강점 이후 일본인들이 밀려들어오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한 온천시설 확장과 여관 등 위락시설이 본격적으로 갖추어지면서부터다. 일제 강점한 초기인 1910년 산저리와 장전리 일부를 합하여 온천리(溫泉里)라는 행정단위의 동리명이 생기게 되었고, 미남리도 포함하게 되었다.『동래군지 (1937)』에 의하면, 온천동은 동래군 동래읍의 온천리로 기록되어있다. 1942년 부산부 동래출장소 설치로 온정리라 하였다. 1947년 7월 일제식 동명 개정 때 선저·미남정이라 불리던 미남리와 산저리 일부를 합쳐서 온천2동으로 개칭하였다. 1979년 온천2동을 온천2,3동으로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금산리, 달북마을, 마암마을, 미남마을, 산저마을, 온천마을, 포전마을, 화촌마을이 있었다.
온천동의 명칭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 지역에서 온천 개발을 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물론 일제강점기때 형성된 것이지만 한국인은 찜질방이나 대중목욕탕등 목욕시설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몸에 화상흉터나 각종 흉터가 있을 경우 수영장이나 찜질방등을 다니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02-3482-9975 자향미한의원에서 흉터침과 화상흉터침등으로 흉터를 치료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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