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이야기1] 허브란?!

<딜 꽃 사진입니다. 노란 꽃들이 피어오르면 눈 앞에 소우주가 펼쳐집니다>

‘허브’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대체로 상쾌한 차 한 잔이나 향기로운 아로마 오일, 아니면 건강보조식품의 원료 등이 생각나실 겁니다. 사람을 편안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그 무언가가 바로 ‘허브’라는 글자에서 풍겨나지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예로부터 약이나 향료로 써온 식물”이라고 허브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어온 약용 식물이나 향신료의 원료가 되는 식물을 허브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여기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허브라는 단어가 1611년에 영어로 번역돼 나온 킹제임스 성경에 여러 번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성경에서 허브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구절은 창세기 1장 11절입니다.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grass,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yielding fruit after his kind, whose seed is in itself,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이 구절만 놓고 보면, 천지창조 때 하나님이 인간을 특별히 아끼셔서 인간에게 유용한 허브를 직접 창조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예시로 들며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물로서 허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말들은 허브의 가치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려는 얄팍한 상술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킹제임스 성경이 나올 당시에 사용됐던 herb는 지금 시대에 우리가 생각하는 ‘허브’의 뜻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스위트 마조람입니다. 몸집은 작은데 향기는 아주 매력적이지요>

허브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왔는데요, 그 원래 뜻은 ‘푸른 풀’정도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킹제임스 성경이 나왔을 당시 herb라는 단어는 풀이라고 일컬어지는 초본류 식물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허브 기록의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책으로 알려진 책으로 1597년도에 나온 존 제라드의 “The Herball"의 또 다른 제목이 ”The Generall Historie of Plantes"인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에 허브라는 단어는 ‘식물’, 또는 ‘풀’이라는 뜻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 번역된 영어 성경들에는 herb라는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지요.

그럼 우리가 지금 쉽게 떠올리는 허브의 이미지는 언제부터 형성된 것일까요? 이것은 사실 참 아이러니입니다. 오래 전에부터 서양 사람들이 글로 기록했던 허브, 즉 풀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고대에서부터 사람들에 손에 의해 기록됐던 풀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당연하겠지요. 그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는 풀”들이었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쉽게 무언가를 기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테니,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풀들만 골라 기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의미가 변해온 것입니다. 고대를 거쳐 중세를 지나 근대로 오면서 허브라는 단어는 어느새 단순히 풀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풀’이 된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풀들을 사람들은 더 이상 풀(허브)이라고 부를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에게 무용한 풀들은 애석하게도 허브(풀)이라고 불리지 못한 채 이름 없는 들풀로 지구 어디쯤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리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물론 그 풀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나중에 지구에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에게 뭐라고 불리든지 별로 크게 신경 쓰며 살지 않겠지요. 어쨌든 우리는 허브라는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인류가 그 동안 얼마나 인간중심적 사고를 돛으로 삼아 역사의 강물 위를 항해해 왔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카렌듈라(금잔화)입니다. 화려한 꽃에 비해 향기를 덜하지만, 말린 꽃잎은 피부 미용이나 피부 질환에 효과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