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섯, 동네 주차의 세계를 잠깐 겪다steemCreated with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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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다섯, 동네 주차의 세계를 잠깐 겪다

  • 자동차 에세이 <1>

이 글은 2017년 11월 처음으로 중고차를 구입해서 자차 소유자가 된 시점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것을 현 시점에서 개고한 것이다. 나는 스물한 살 때 면허를 땄고 잠깐 부모님 차를 몰았을 뿐 오랫동안 장롱면허 상태로 있었다. 서른이 넘은 후 차를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간간히 했지만 환경이 여의치 않았다.

자동차 구매 전 차를 사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지는 일 년쯤 됐더랬다. 현재도 거주 중인 우리 집 앞에 종종 차를 대던 세입자가 이사를 간 후 집 앞이 주차가능한 무주공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즉 내가 월세 계약하던 시점에 이 집은 계약조건에서 ‘주차가능’ 물량이 아니었는데, 누군가가 이사 가면서 당분간은 그게 가능한 집으로 보였던 것이다.

내가 인수한 차는 일본산 소형차, 스즈키 알토라팡이란 차였다. 외제차라서 무시받지 않으면서도, 경차라서 여러모로 실용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 차를 마침 팔아야만 했던 지인이 있었기 때문에 다소 무리하게 자금을 유통하여 구매하게 된 차였다.

그런데 차를 몰아봤다 하더라도 자차 소유를 해본 적이 없는 이는 특히 주차문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그때 다시 알게 되었다. 실제로 내가 차를 구매하여 ‘무주공산이라고 생각했던 그 스팟’에 주차를 하자...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렸다.

요약하면 이 스팟은 ‘주차 잘 하는 사람이 집 코앞까지 찰싹 붙여 잘 대거나, 빼달라는 전화 올 때마다 제꺽제꺽 나와서 빼줄 수 있을 때 주차 가능한 스팟’이었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여기 차가 있으면 주변 거주자들 소유 자동차의 동선이 꼬이는 곳이었던 것이다! 내가 스스로 차를 구매하고 주차를 시작했을 때 주어질 이 미션의 의미를 알았다면 이에 도전하지 않거나, 다른 방도를 강구했을 것이다. 공영주차장을 미리 알아봤거나 일단 주차가능한 집에 이사가기 위한 자금 회전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처음으로 집 앞에 차를 댄 다음날 밤(토요일이었다)에 옆집 아저씨에게 전화가 걸려와서 한 번 차를 빼서 근처 자리로 바꿔줄 때만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 부재중 전화가 두 건 찍혀 있어서 전화를 거니 매우 띠꺼운 목소리로 차를 빼달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이층집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문제는 이랬다. 당시 나는 차를 몰 수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주변 구청에서 차량소유권 인도 절차를 밟아 집으로 몰고 오는데 쩔쩔맬 정도였다. 주차에 대한 감은 더 없었다.

더구나 그 전날 한 번 부탁을 받아 주차 위치를 바꾸는 바람에, 바뀐 그 위치의 차를 빼는 일은 초보자인 내게 더 어려운 미션이 되었다.

그 와중에 전날에도 전화를 걸었던 아저씨 하나는 ‘자전거도 못 몰 사람’이라고 핀잔을 주고, ‘집에 올라가서 운전할 줄 아는 남자 내려보내라’는 식으로 호통을 치기도 했다. 반면 그날 아침 자기 차를 빼야 하는 입장이었던 다른 아저씨 하나는 그 상황에서 차를 빼기 위한 핸들 조작법을 내게 구체적으로 지도 편달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문제는 내가 운전에만 익숙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직 구매한 차 자체도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게 어쨌든 외제차라 직관적으로 나한테 와 닿는 버튼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창문울 오토로 내리는 버튼이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찾지 못해 버벅대고 있으니 더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지도편달을 시도한 ‘아저씨2’가 빼려던 차는 게다가 잠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 하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에 장모님 댁에 잠깐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든 차를 근처로 빼서 당도한 집 근처 빌라 앞에서 한숨을 쉬며 서 있었을 때 빌라 주차장에서 다른 차가 나간다고 빵빵 거렸다. 그냥 후진만 시켜주면 되는 거였는데 당황해서 엄벙덤벙하다가 시동을 꺼버렸고(이 차는 시동이 버튼 식이라 그냥 누르면 켜지고 꺼지고 한다) 다시 켜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렇게 빌라에서 만난 ‘아저씨3’이 자기 차에서 내려와 내 차 창문을 두드리며 “왜 안 나가요?”라고 물었다. 내가 잔뜩 쫄아서 “아 잠깐만요. 잠깐 시동이 안 켜져서요...”라고 했더니 그는 “차 예쁘네?”라고 하면서 쿨시크하게 자기 차로 돌아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시동이 다시 켜지기만 하면 이걸 빼는 건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고...

아까 아저씨 두 명에게 이 근처에 주차하기는 너무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주차할 만한 다른 스팟을 찾아 근처를 헤맸다. 그런데 평소 내가 차가 없을 땐 아무 생각 없이 다니던 근처 동네 골목은 어디는 일방통행이었고, 주말 아침시간인지라 서로 전화를 걸며 차를 빼주는 모습이 보였다. 차를 몰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광경이었다. 게다가 나는 운전이 서투르니 운전에만 정신이 팔려 제대로 비어 있는 스팟이 어디인지 찾아내지도 못하고 한 바퀴 돌아서 들어오... 니...

장모님 댁에 갔던 ‘아저씨2’의 차가 다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다른 방도가 없나 다른 길로 차를 돌려 봤다. 다시 ‘아저씨1’과 ‘아저씨2’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뭐랄까 ‘쪼렙’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차를 몰아봤지만 도저히 그 방면으론 차를 뺄 수가 없다는 사실만이 밝혀졌다.

이제 차를 빼기는커녕 애초 빼달라는 얘기를 들었던 그 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힘든 일이 되었다. 빼박 차가 긁힐 위기, 백미러가 살짝 벽에 닿은 상황에서 잠깐 백미러를 접었다. ‘아저씨2’의 지도편달을 다시 받으며(이렇게 돌렸다가 저렇게 돌리면 될 거라는 식의 주문) 그의 차가 내가 막았던 구역을 지나가도록 차를 옮겼다.

결과적으로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곳은 처음 차를 산 후 주차했던 그 장소였다. 내가 마음편히 내 차를 댈 수 있을 거라 착각했던 그 장소 말이다. 그러자 전날 저녁에 전화해서 차를 빼달라 했고 그날 아침에 ‘자전고도 못 몰 사람’이라 힐난했던 ‘아저씨1’이 말을 꺼냈다. 그이는 트럭운전사였다.

그가 나한테 뭐라 뭐라 하는데 요약하자면 ‘오늘은 술 마셔서 안 나가지만 나는 일 나가는 사람이다. 새벽에 차 빼달라고 전화했는데 그걸 안 받으면 나로선 견인조치하는 수밖에 없다. 사장님 사정도 알지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라’라는 식이었다. 쏘아붙였다 어르다를 번갈아가면서 했다.

이후 트럭운전사가 아니라 친절한 지도편달을 했던 ‘아저씨2’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다른 스팟을 알아보자, 아까 자신이 장모님댁 다녀 오면서 댈 만한 곳을 봤다고 하여 서로 잠깐 자신의 집에 들렀다가 다시 내려왔다. 처음 무심코 내려온 이후 거진 한 시간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있었다. 아까 내려올 땐 잠깐 차를 빼주면 될 거라 안이하게 생각하고 휴대폰도 안 들고 내려왔다. 전날 잘 때 충전기에 꽂지 않아 충전 상태가 별로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에 내려왔을 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차 빼달라고 당장 전화를 받을 필요는 없는 스팟을 하나 찾았고 거기 주차하기 위해 또 다시 지도편달을 받았지만 깔끔하게 주차했다.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경차라서 주차를 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이 스팟이 자주 비는 곳이어야 이 험한 꼴을 덜 당할 텐데...’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주차 후 그날 나를 많이 도와준 ‘아저씨2는’ 내게 “이사왔어요?”라고 물었다. 사실 그 시점에서 나는 동내에 이사온 지 이년 반이 넘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의 얼굴을 대략 기억했다. 지나다니다가 눈인사 정도는 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운전자로서의 나를 지각하고 나서야 날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 일을 겪은 후 다시 생각해보니 나를 오판하게 만든 그 예전 세입자의 차도 그 스팟에서 자주 보이진 않았다. 그때는 왜 차가 있다가 없나 의아했는데, 지금 보니 그도 주변에 대어보다 정 댈 곳이 없을 때 이 집 앞에 댄 것이었다… 아마 그러고서도 전화를 받으면 부리나케 달려왔을 테고 말이다.

#kr #krnewbee #kr-newbee 20171128_181654.jpg#cars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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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로 너무 고생 했네. 다른 좋은 스팟 찾아내길

재미있는 글이네요ㅎㅎ 스티밋에 이런 글도 많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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