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 을 보다가 씁쓸해졌다.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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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은 좋아하는 만화중에 하나다.
요즘의 휘황찬란한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하자면 시시하다며
어린애들도 안볼것 같은 소박한 그림체지만.
막상 틀어놓으니 올해로 12살 먹은 조카도 재미있게 잘 본다.

검정고무신의 소개는 이렇게 되어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1969년을 배경으로 기영이와 기철이 형제의 풋풋한 성장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족 애니메이션

1969년이라면 나는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인데 묘한 향수를 느낀다.
8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냈던 나는 요즘과는 다르게 적어도
하교후 책가방 던져놓고 집밖에 나오면
미리 약속하지 않았어도 골목길에서 동네친구를 만나게 되고,
낯선것, 신기한것, 재밌는것을 찾아 동네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동무들과 올망졸망 손을 잡고 이웃을 찾아가
''친구야~ 노올자~''
라고 노래부르듯 음률을 붙여 외칠수 있었던 시절을 겪어서일까.
분명 훨씬 과거의 이야기인데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추억이 아른아른한 기분으로 볼수 있는 만화다.

엊저녘도 티비 채널을 돌리다보니 검정고무신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한 화에서 삐딱하게 내맘에 꽂히고 말았다.

[기철이는 차력사] 라는 소제목의 화 였다.
줄거리는 평소 공부는 안하고 말썽쟁에 꾀쟁이 부모님 속은 썩여도 속맘은 착한, 한창 여학생에게 관심이 많은 중학생 기철이가 요즘따라 야근이 잦고 피곤해보이는 아버지가 걱정되던 차에 마을을 찾아온 약장사가 보약 한알을 먹고 차돌을 깨뜨리면 보약한통을 준다는 말에 미리 준비되어 있던 협잡꾼을 제치고 나서 힘껏 돌을 깨뜨려(미리 깨뜨려 놓은 돌을 붙여놓은것이지만) 보약을 타와 아버지께 효도를 한다는 훈훈한 내용의 만화였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거슬린것은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였는데,

저녁 식사
할아버지 : 기철 아범은 오늘도 늦나?
어머니 : 네. 요즘 많이 바쁜가봐요.
할머니 : 이긍. 새벽에 나가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얼마나 힘들겠누.
할아버지 : 한집안을 이끈다는게 힘든거야.

어머니 밤늦게까지 마당을 서성이며 아버지를 기다리다 가방을 받아든다.
어머니 : 여보, 많이 시장하시죠?

다음날 낮, 평상 할머니와 어머니.
할머니 : 애미야~ 아범은 새벽에 나갔니? 밥은 제대로 먹고 나갔나.
어머니 : 뜨는둥 마는둥 하고 나갔어요.
할머니 : 에휴 아비도 맨날 청춘이 아닌데먹는거라도 신경 써야겠다.

한두번 본 장면도 아닌데 갑작스레 이 내용들이 거슬린건
아마도 내가 결혼하기 전, 후에서 오는 차이였을까?

나는 닭을 뜯으며 멍하니 같이 만화를 보고 있던 내짝에게 물었다.

''저거 좀 이상하지 않아?''

''🍗🍺🍗🍺?????''

''봐봐. 기철이네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둘에 갓난쟁이 하나 총 일곱식구야. 암만봐도 야근하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힘들지 않을까? 어지간한 부잣집 말고는 세탁기도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고무장갑마저 운동화 값이랑 같아서 사기 힘들었다는데 시부모님 부양하랴 세아이 빨래해대고 세끼 밥차려내고 도시락 싸야지 저너른 집 방방마다 청소하고...차리리 밖에서 밤늦게까지 회사일 하는게 더 편하겠다.''

만화 한편 보면서 구구절절히 한풀이 하기가 겸연쩍어 말을 줄였지만.

기철어멈은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보다 더 일찍 일어나
남편 아침상을 차리고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렸다 저녁상마저 차리고 치우고
살림을 정리하고 식구들중 가장 늦게 잠을 잘것이다.

밤잠 안자고 보채는 갓난아기 탓에 남편이 깰까
포대기에 오덕이를 둘러매고 밤새 마당을 서성이었을거며,
겨울이면 새벽에 한두번씩 일어나 연탄불을 갈아내었을것이다.

이런것이 우리네 어머님들의 삶이었다.
저 시절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였고,
어느집이나 똑같은 모습이었으므로 불평을 말할 사람도 없고
불합리하거나 불공평하다고 말한 사람도 없었을거다.

그러나 그 엄마들은 내딸은 잘 배우고 똑똑히 커서
엄마같이 고생하지 말고 하고싶은것 하며,
넓은 세상에서 너자신으로 살기를 바랬을텐데.
내딸은 그래야하는데...
시어머니가 되는 순간.

'내 아들 아침밥은?'

......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것이 잘못된게 아닌가?
네 귀하게 키운 딸에게도 이런 불공평한 삶을 강요 할수 있겠느냐?
공동육아나 공동가사를 입밖에 꺼내는 순간
개념없는 김치녀니.
취집을 했니.
(이보다 더한 소리도 있지만 생략)
...등등의 불편한 소리를 듣게된다.

검정고무신은 단순히 저 시절을 잘 그려낸 만화일뿐이지.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그저,

시대가 이렇게 변했는데도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씁쓸함을 느끼는건 나뿐만이 아닐것이다.

더군다나 내 생각을 말했을뿐인데.
이해에서 오는 반론이 아니라.
무작정 까기로 눈을 뒤집고 덤벼들며,
무논리로 이상하고 한심한 년으로 매도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편히 말하기도 어려우니 여기까지만 하련다.



하도 이상한 소리들을 많이 하는지라 덧붙이자면. 우린 맞벌이이고. 내 수입은 혼자서 넉넉히 살정도는 되며, 내 짝이 실직자일때도 있었고, 현재 집안일의 70%는 내가 하고 있다.

가사일은 당연히 여자몫이라고 생각하던 내짝이지만.
대화와 설득과 약간의 잔소리로
조금은 답답할때가 있긴해도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우리 나름의 생활 패턴으로 차츰 조율해 나가고 있으니.
여자가 어떻네. 남자가 어떻네.
너무 지저분한 덧글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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