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8] 대한민국의 시민사회
국가와 시민사회의 발전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먼저 국가와 시민 사회에 대한 파악이 필요합니다. 국가는 비교적 쉽게 이해되는 반면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합니다. 헤겔과 하버마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사회를 보는 방식이 모두 다릅니다. 이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심화 공부가 필요한데 공통적으로 보았을 때, 시민사회는 일반적으로 시민단체라고 말하는 NGO라고 파악하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시민사회는 헤겔의 입장에서는 따뜻한 사랑을 주는 가족과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있는 국가라는 큰 틀 사이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고 하버마스의 입장에서는 체계에 의해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를 극복하기 위해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작동시키는 ‘생활세계의 공론장’입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성립되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19대, 12명의 대통령이 있었고, 2016년 20대 국회의원 총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볼 수 있는 68년간의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수많은 일이 발생하였고 그에 대항하는 시민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국가라는 틀에서 보자면 2016년 현재 제6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기틀이라고 볼 수 있는 대한민국헌법은 총 9차 개헌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하였는데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의한 발췌 개헌(1952년 1차 개헌), 사사오입 개헌(1954년 2차 개헌),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한 4선 연임 금지로의 개정(1969년 6차 개헌),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하고 긴급 조치, 국회 장악, 법관 인사권 등을 대통령이 가지게 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삼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형식적 법치주의의 대표적 예시인 1972년 7차 개헌 등이 있습니다. 현행 헌법의 경우 5년 단임제에 국민에 의한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대통령제에서의 본질적인 효율성 문제를 떠나 과거에 비해 훨씬 진보된, 민주주의적인 국가의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시민사회는 국가가 성립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결정하게 되었고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이를 저지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박정희의 쿠데타는 시민사회를 폐쇄한 행위이고 1985년 2월 총선에 깨어났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비민주적 정권에 맞서 시민사회가 주도한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을 통해 민주적 정권을 창출하는 데 비로소 성공하였습니다. 최근에는 2017년에 촛불시위 (또는 촛불혁명)를 통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정국을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커밍스는 한국의 시민사회 모델이 일본이나 미국의 시민사회 모델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로 국가보안법의 존속을 제시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촛불 시위들과 10대 여학생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항의를 하는 등의 시민사회 활동들이 집단지성을 이용하여 기존의 엘리트들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말합니다.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하고 또 무수한 정보에 쉽게 접근이 가능합니다. 또한 과거에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했던 정보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정보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는 시민사회에서 국가에 쉽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대항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대 대한민국은 수많은 사람이 시민사회에 참여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이는 대한민국헌법에 보장된 여러 가지 기본권에 의해 보장되는 것인데, 과거 비민주적이었던 국가에 비하면 놀라운 수준의 발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정당성이 없는 정부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자신의 의견을 거의 제한 없이 낼 수 있는 것은 상당한 발전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시민사회에서 사람들이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하는 행위 중 대표적인 시위에 관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많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그 시위의 상당수가 사익 또는 공익을 위해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일리가 있고 국가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 방법이 문제입니다. 가끔 극단적이고, 시위를 하는 본질, 목적을 흐리는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의 정당성을 잃게 만들 수 있기에 지양해야 합니다. 혹자는 약자가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것이 불법적이고 과격한 시위라고 말합니다. 약자의 입장에서 그런 방법이 유일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법치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면 적법한 절차를 통해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지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이루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헌법 전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정되는 저항권조차도 최후수단성이라는 행사요건이 필요한데 과연 그런 과격, 불법 시위가 최후수단적인지에 대한 본인들의 반성이 필요합니다.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을 이끌어냈던 촛불시위도 비폭력 평화시위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고 효과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헌법재판소에서 국민의 저항권이 발동되었다는 것이 인정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헤겔의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봤을 때의 문제점입니다. 헤겔에 따르면 국가의 잘 갖추어진 시스템과 가족의 따뜻한 사랑에서 자란 개인이 구성하는 시민사회가 건강하고 잘 운영되는 시민사회인데 현재의 대한민국 시민사회가 건강하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과거보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패륜 범죄를 보며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이 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또한 국가의 시스템의 측면에서 ‘특별법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이 법의 기본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지키고 있는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것입니다. 법적 안정성이 없는 시스템이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게다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법률이 없는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제한하는 공권력이 없는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분단 상황에 대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특정 부분에서는 문제가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특수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없앨 수 없는 법이기도 합니다. 커밍스가 말했던 한국의 시민사회가 미국이나 일본의 모델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가 국가보안법이라면 북한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와 인도주의적 접근을 통해 언젠가 통일을 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시민사회는 진일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월 다시 파이팅해요!
호출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