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自我)라는 이름의 속임수

in #kr3 years ago

#1
무간도를 다시 봤다. 16년 전 개봉된 영화의 스포일러가 두려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충동을 망각하고 싶지 않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진영인은 누구지?

그는 경찰대학을 다녔으나 졸업하지 못 했고(스파이 작전의 적임자로 간택 받았기 때문에) '제복을 입고 경찰서로 출근을 하는 경찰'로서의 삶을 살지 않았다. 스파이로 들어가 10년 간 조폭 생활을 했다. 그가 경찰로서 스파이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은 황 국장과 DB가 보관된 컴퓨터만 안다.

유건명은?

경찰 대학을 졸업하고 '조폭으로서' 경찰이 되었다. 유능하여 승진이 빨랐고 한침(조폭 대장)이 검거되지 않도록 뒤로 도왔다. 하지만 그는 제복을 입고 경찰서로 출근을 하며 '경찰로서' 살고 있었다.

#2
다른 모든 영화적 갈등의 내용을 차치하고, 내가 궁금했던 것은 '진영인이 원했던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가'이다. 그는 경찰이 되고 싶었을까? 그는 그의 자아에 따르면 경찰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그럼 이제와서 제복을 입고 경찰서로 출근을 하는 경찰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는 경찰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신이 경찰임을 확인하려 한 것 뿐이다.

영화의 종반부 유건명과 독대를 했을 때, 그리고 유건명이 방을 비운 사이 한침이 서류 봉투를 건낸 이가 유건명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영인은 단순히 이 상황이 혼란스럽거나 어찌 대응해야 할지를 몰라서 방을 나간 것이 아니다. 자신이 경찰이라는 사실은 신분의 복원과 대외적인 천명이 있든 없든 같다. 최소한 그의 내부에서는 같다. 그는 사무실을 나가면서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유건명의 도움을 받아 '남들이 비로소 인식하게 되는 경찰'이 될 것인가
스스로 이미 알고 있듯, '자신이 경찰로서' 해야 할 책무를 할 것인가.

사무실에서 나간 것은 후자를 선택한 본인의 의지였다. 진영인은 경찰이다.

#3
자신이 누구인지 확신하고 있었지만 확인이 없이는 삶을 이어나갈 수 없었고, 확인을 한 대가는 결국 죽음으로 치룬다. 진영인은 자아를 소유한 자로서의 선택을 했다.

'자아'란 매 순간에 생기는 의식 작용의 개별성과는 별개로 한 인격이 지녀야 하는 지속성과 동일성이다.

우리는 자아를 지니고 살고 있는가? "나는 나를 잘 안다"고 하는 누군가의 장담이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믿기 어렵다.

#4
'자아'란 정언적 성격을 지니어야 한다. 내가 나의 자아를 파악하려면 사소함과 중대함 사이의 모든 선택의 순간, 동일하게 작용하는 그 무언가 하나의 가치나 의미를 알아내야 한다. 가령 그것은 충이나 효일 수도 있고 돈이나 명예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순간에 단 한 가지의 기준을 관철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자아'라는 정신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합리론과 이 것이 각 상황에서 발현되는 모습의 다양성에 더 비중을 두는 경험론의 입장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에 더 비중을 두는 편이다.

#5
우리는 '자아'라는 이름의 속임수에 빠져있다.

타인들이 보고 판단하여, 세상이 나에게 정해준 모습을 나의 '자아'라고 착각하고 있진 않은가? 그 만들어진 '자아'의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며 인생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 일찌감치 남이 나의 자아를 정해준 탓에 내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도 안 해 본 것은 아닌가?

나는 오롯이 나만을 생각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것은 나중 일이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도 자신의 모습을 다시 알아봤으면 좋겠다.

무간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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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writing 태그도있으니 칸남으면쓰셈ㅎㅎ

알게쪙! 오늘은 무슨 덮밥 먹었어? ㅋㅋㅋ

탕수육이랑 간짜장먹음ㅋㅋ

오져따리 ㅋㅋㅋ 나는 미니탕슉이랑 짬뽕밥 먹을랭

여기 중국집인가요

질문: (그나마) 좋아하는 중국 요리 메뉴는?

역시는 역시 역시군!

말 그대로 그나마야. 올해 들어 한번이나 먹었나...

혼자서만이 발견될 수 없는...타자와의 관계속에서 발견되는 @[email protected]

앗, 오늘 제 특집 급으로 제 글을 여러 개 읽어 주셔서 황송합니다. 그런데 양조위의 (한국 기준) 미필 경례는 좀 많이 거슬리네용..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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