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쇼크의 진실과 Ricardian Vice

in #kr6 years ago (edited)

최근에 언론에서, 그리고 꽤나 경제 관련 글을 쓴다는 사람들의 칼럼에서도 고용쇼크라는 표현을 많이 접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경기가 전반적으로 안좋은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경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고용쇼크' 혹은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꾀하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고용쇼크의 실체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언론의 오도와 오보

아래를 보면 대부분의 기사들이 동일한 논조를 갖고 있습니다. '고용시장이 거의 경제위기 수준이고, 한국의 경제는 난파 직전이라는 것'입니다. 일단 저 또한 한국 경제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덴 뜻을 같이 합니다만, 문제의 진단이 옳지 않으면 해법 또한 옳지 않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하겠습니다.

고용 쇼크 ‘일자리 절벽’…‘실업자 100만명대, 외환위기 방불, 앞이 캄캄'
고용쇼크 6개월…일자리 상황은 금융위기 수준
장하성 아파트 경비원도 ‘고용쇼크’로 ‘실직’위기

이들 기사 중 하나를 골라 그 근거가 무엇인지 읽어보겠습니다. 무작위로 고른 기사는 연합뉴스의 일자리 못 만드는 한국경제…외환위기 이후 최장 대량실업
이라는 기사입니다.

우선 위 기사에서 고용쇼크, 그리고 실업대란이라고 부르는 대목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1) 취업자 수의 증감 폭이 겨우 5천 명에 불과했다는 점, 그리고 2) 실업 수준이 몹시 높다는 점.

1) 취업자 수 증감 폭이 고작 5천명! 이것은 경제위기 수준이야! : 과연 그럴까?
'취업자 수 증감 폭'은 말 그대로 '신규 취업자 수에서 퇴직자를 뺀 값'입니다. 만일 신규 취업자 수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퇴직자 수가 많다면 이 수치는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고용시장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아래 그림은 한국은행 ESCO에서 직접 찾은 취업자 수와 취업자수 증감에 대한 지표입니다. 1월을 중심으로 취업자 수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음을 감안해 보더라도, 최근 취업자 수가 유의하게 감소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자, 그러면 최근 취업자 수 증감이 작년 동기대비 5천명 수준으로 하락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바로 퇴직자 수의 증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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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베이비 붐 세대의 출생아 수는 모두 알다시피 100만명이 넘고, 1970년대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출생아 수도 100만명에 육박합니다. 그리고 지금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1990년부터 1998년 출생아 수들은 60만명에서 70만명에 육박하죠. 그렇다면 위 표에서 취업자 수가 거의 변하지 않고, 또 고용률(취업자 수/15세 이상 인구)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취업자 수 증감은 감소합니다.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변천을 감안해보면 오히려 고용률이 여기서 대폭 늘어난다고 할 지라도, 향후 취업자 수 증감은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2) 실업이 끝없이 늘어나고 있어! 이건 위기수준이야 : 과연 그럴까?

해당 기사를 보면 최근 들어 실업자 수와 실업률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통계청에서 가져온 수치적인 팩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경제는 1월을 중심으로 실업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이후로는 기조적인 감소세를 보이곤 합니다. 그리고 실업자 수가 100만명을 넘은 것은 2015년부터였고, 가장 심각한 상황은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7년 2월 134만명이었습니다. 물론 실업자 수가 100만명을 넘는다는 것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님은 명백하지만, 그나마 최근엔 전체적인 실업자 수가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합니다. 우리 경제의 실업은 최근에 급격히 나빠진 게 아니라, 꾸준히 안 좋은 상태였습니다.

3) 이 고용쇼크의 원인은 최저임금 때문이야! : 과연 그럴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이 고용지표가 악화된 이유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언론에서, 꼼꼼히 사실을 확인하지 않거나 근거를 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지에 근거하거나 혹은 주장 자체에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경제를 잘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그렇게 주장해야만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지요. 그 의도는 아마도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그렇게 주장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것은 Ricardian Vice입니다.

2. 경제 사설을 쓰는 사람들의 잘못

위에서 본 것처럼, 저는 언론이 잘못된 근거를 이용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행태는 언론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여기 스티밋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고용과 소득분배 악화의 한국경제(1)이란 글을 쓰신 분은 경제에 관한 짧은 글들을 주로 쓰십니다. 이때 몇 가지 이론을 처음에 열거한 다음, 그를 이용해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는 식의 글을 쓰시죠. 근데 이런 구조로 글을 쓰고, 그것들이 축적되다보면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전문가라 생각해서 그대로 수용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경제를 다루는 사람은 데이터를 근거로 충분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경제논리를 자신의 신념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쓰면 안 됩니다. 그저 데이터화된 팩트를 제시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해법을 제시해야만 하는 거죠.

그런데 제가 해당 글을 읽으면서, 황당하고도 다소 화가 났던 부분은 다음의 대목입니다.

"청년취업이 저조하고 고용시장이 심각한 이유는 현 정부의 주장대로 인구구조 등 非정책적 요인 탓도 있지만 정책요인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이다."

위 주장엔, 그리고 해당 원문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고용쇼크라고 지칭한 대목은 '취업자 수 증감 폭이 5천명에 불과했다.'란 대목인 것이죠.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란 정책적 결정이 경제, 특히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데엔 시간이 걸립니다. 게다가 앞서 제가 제시한 것처럼, 취업자 수 증감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는 고용지표도 아닙니다. 신규 취업자 수와 퇴직자 수는 경기에도 영향을 받지만, 인구구조 문제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많은 요인들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취업자 수 증감 자체가 그토록 감소한 주도적인 요인이 바로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정책적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당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는 해당 글을 읽고 근거를 요구했지만, 궁금한 부분은 나름대로 찾아보라는 답변을 하시더군요. 일일이 제 요청에 답변할 필요가 없다면서요.

3. 제발 진실을 보자

고용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가 무엇일까요? 바로 취업률과 고용률, 그리고 실업률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 지표에 대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겠습니다.

위 경제지표를 보면, 최근에 우리 고용시장이 특별히 심각해진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나라 경제는 기조적으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7월 고용악화가 왜 최저임금 등에 기인한 정책적 실패가 주도했다고 볼 수 없을까요? 이를 보기 위해서는 실업자와 취업자의 산업별 분포를 봐야만 합니다.

우선 다음의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취업자는 주로 공무원 수 증가, 복지 확대 및 4차 산업혁명 등에 따른 산업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은 제조업과 MRO 등의 사업시설관리, 그리고 교육서비스에서 특히 심각하죠. 그렇다면 과연 이 부문들이 얼마나 최저임금과 관련되어 있을까요? 저는 아주 미미하다고 봅니다.

이에 더해 최저임금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 자영업의 경우에도, 고용을 하고 있는 자영업은 최저임금 상승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고용이 더 늘었습니다.취업자가 감소한 것은 고용 없는 자영업자__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애초에 우리나라 자영업 구조는 그 비중이 너무나 비대하고, 경제의 효율성을 역행할 정도로 왜곡되어 있습니다. 고용 없는 자영업은 대부분 충분한 경쟁력이 없기에, 그들에게 비용인상을 야기하는 최저임금 인상이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매월 1인 고용당 최대 13만원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이상, 현재의 자영업의 감소가 최저임금 탓이라고 하는 논리는 부적절할 수 있습니다. 이는 KDI 연구에서도 보충되는 논거입니다. 개인적으로 고용 없는 자영업자의 쇠락은 현재의 경기여건이 지나치게 냉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실 저는 고용시장 문제는 그 명칭을 고용쇼크가 아니라, 제조업 쇼크라고 불러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우리 제조업 분야는 사양화되면서 구조조정에 직면한 산업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죠. 철강, 자동차, 조선 등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경제의 허리를 지탱했던 산업들에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연령별 실업자를 봐도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실업률은 40대, 30대, 50대에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그럼에도 60대 이상 실업자 수는 감소했습니다. 경기불황이 지속되고 있고, 특히 구조조정에 직면한 제조업이 많은 탓에 이런 유형의 실업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기간에 걸친 우리나라 취업률 추이를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 년동안 고만고만하게 경기가 안좋았을 뿐, 결코 지금이 특별한 위기상황이라고 말하는 건 좀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죠, 지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을 제시한 후 여론을 호도하는 거짓말쟁이가 문제일뿐.

4. 마치며
제가 보는 지금의 고용문제의 핵심은 결코 최저임금 문제가 본질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최저임금에 초점을 두라고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진실을 호도하거나, 다른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지금의 최저임금 인상 폭이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있고, 어느 정도는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 충격을 완화하려는 재정적 조치를 취하고 있고, 그것이 현재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봅니다(이 조치가 옳고 그르고에 관한 논의와는 무관합니다). '현재의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에 과도하게 부정적인 여파를 미치고 있다.'라는 주장을 입증하기에는 시간과 자료가 너무도 부족합니다.

주된 영향은 제조업 위기이고, 동시에 경기의 부진에 의해 내수가 개선되지 않는 게 더 문제입니다. 지난 수 년 동안의 저금리에 의해 시장에서 청산됐어야 할 한계기업이 이제야 조정되고 있는 것, 전 세계의 맥도날드 체인점을 다 합한 것보다 우리나라 치킨집의 수가 더 많다는 말이 나올만큼 비정상적으로 자영업 비중이 많은 것도 문제겠지요.

이번 정부 들어 SOC 투자를 대거 줄인 것, 그에 따라 토목건설투자가 감소한 것도 단기적으로 고용이 악화된 원인일 수 있겠죠. 그렇다고 최경환이 기재부 장관을 할 때처럼, 정부가 SOC 투자를 엄청나게 집행하여 GDP 증가분의 50% 수준을 집 짓는 걸로 가져가게 하는 건 경제에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합니다. 이것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니까요.

사실 구조조정을 촉진하면 단기적으로 고용을 악화시키는 등의 경제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반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구조조정 촉진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의회의 잘못도 있습니다. 경제전반의 효율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역할도 지대합니다. 모든 일의 잘못을 정부에게만 문책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은 행동입니다. 스티미언분들은 경제에 부단히 관심을 갖되, 잘못된 사실에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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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지고 있던 편견이 없어졌네요. 좋은글과 상세 설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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