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사회(Cahsless Society)에 관하여 (2)

in #kr6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JOHN입니다.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 관련 포스팅을 진행 중입니다. 오늘은 현금을 폐지할 수 있는 기술적/경제적 가능성과 그 효용성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려고 합니다.


CashlessSociety.jpg

2. 디지털 통화의 등장과 화폐의 종말

  • 분산화와 초연결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디지털 통화가 출현하고, 금융시스템이 새롭게 정립되면서 경제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디지털 통화가 보편적으로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현재 화폐가 사용되는 모든 영역(국가 간 무역뿐 아니라 국내에서의 거래 등)에 초연결성을 기반으로 한 거래 시스템이 반드시 구축되어야 한다. 이 초연결적 거래시스템은 블록체인 기반의 결제체계로 실현될 것이라 예상되고 있으며, 블록체인은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신기술로 간택된 바 있다. 일부 기술적 낙관론자들은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통화체계가 현금의 소멸을 시작으로 부분지급준비제도 중심의 은행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 말하고 있다. 물론 현재의 관점에서는 다소 과격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블록체인 기술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신용환경에 전반적인 변혁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 디지털 통화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현금폐지의 진행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현금 없는 사회가 가능한 기술적 조건과 현금을 폐지하는 데서 발생하는 비용과 편익들에 논의해본다.

[ 화폐의 종말 : 그 가능성과 편익-비용 분석 ]

  • 디지털 통화가 보편화되면 현금 또는 실물화폐는 필연적으로 폐지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다만 화폐 시스템의 변경이 사회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광범위하고도 크기 때문에, 실물화폐를 폐지함으로써 얻는 사회경제적인 혜택이 그 비용보다 현저히 크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 논의

  •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많은 국가들에서 현금 없는 사회로 이행하자는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특히 스웨덴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2030년까지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완료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그 기반 기술과 제도에 많은 투자를 한 결과 현금 결제비중과 통화량이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행 또한 동전 없는 사회로의 이행계획을 착수하는 단계에 들어가면서 현금 없는 사회 논의를 추진하고 있다. 비로소 화폐가 실물의 형태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다.
  • 사실 현금의 폐지는 현행 기술만으로도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고, 그 필요성 또한 다차원적인 이유로 입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자세히 논해보도록 하자.
  • 현금은 점차 그 중요도가 감소하고 있고, 금융기술이 현저히 발달함에 따라 현금을 대체할 수 있는 결제수단이 다양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현금의 이용비율은 13.6%로 신용카드(54.8%)가 현금의 약 네 배가량이었고, 체크 및 직불카드(16.2%)도 현금보다 이용률이 높았다. 여기에 계좌이체(15.2%)를 더하면 비현금 지급수단은 약 86% 수준으로 늘어나게 된다. 소비자 지출행태를 국가별로 비교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비현금 결제비율이 높은 수준인데, 2013년 Mastercard사가 33개국을 조사한 결과 비현금 결제비율은 약 70% 수준으로 10위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한국은행 지급결제보고서(2016)에 따르면, 이용자들이 개인정보 문제와 안전성 문제 등을 염려하긴 하지만 6개월 내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이 25.2%였고 이 수치는 전년 동기 대비 9.4%p 증가한 것으로 급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삼성카드가 자사 회원을 대상으로 ‘Samsung Pay’의 이용률 및 재이용률을 분석한 결과, 동 지급결제수단을 이용한 10명 중 9명은 계속해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금융 및 IT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자 지급결제수단은 간편성 및 신속성 등의 측면에서 현금의 효용성을 능가하고 있다.
  • 그러나 현금 없는 사회로 이행하는 데 있어, 분명히 염려해야 할 두 가지 큰 문제들이 있다. 한 가지는 기술배제 계층과 관련한 사안이다. 한국은행 지급결제보고서(2016)에서 모바일 결제 서비스 이용자를 연령대별로 구분해 조사한 결과, 20대와 30대에서 그 이용률이 각각 33.6%, 41.8%로 높았지만, 50대와 60대는 17.3%와 5.0%로 낮았다. 향후 지급결제 기술과 이동통신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현금을 폐지하고 디지털 통화로 대체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배제되는 계층이 있다는 것은 상당한 사회문제를 낳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관련 기업은 해당 제도를 적극적으로 발달시켜 나가되, 배제계층에게 상시적인 교육을 제공해주고, 배려의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다른 한 가지 문제는 다소 기술적인 문제인데, 현행 전자 지급결제수단(예를 들어 각 카드사의 결제 어플리케이션이나 삼성전자의 Samsung Pay, 신세계의 SSG Pay 등)이 개발사 생태계에 한정된 폐쇄적인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SSG Pay와 독점적 제휴를 맺은 가맹점에서는 Samsung Pay를 통한 결제가 불가한 것을 생각해보면 편하다. 이러한 기술적 폐쇄성은 네트워크 외부효과를 제약하게 될 것이고, 결국 결제 인프라의 선진화를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현금 없는 사회 논의가 가장 활발한 스웨덴에서는 인구의 절반 정도가 ‘Swish’라는 단일 금융거래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이 Swish는 스웨덴의 6개 주요 은행이 공동 개발한 산물이어서, 기술적 폐쇄성을 극소화하고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 외에도 적극적인 기술적 투자 덕분에 소액결제나 카드결제의 수수료가 상당히 경감되어 소매상들이 기꺼이 전자결제를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결제기술에 우호적인 환경은 2011년부터 4년 동안 스웨덴 화폐유통량을 약 20% 정도 줄이고 또 카드사용을 늘리게 했으며, 결과적으로는 국민들로 하여금 현금 폐지의 공포심을 거두게 하는 데 기여했다.
  • 정리해보면 이미 우리나라에서 비현금성 지급결제 수단이 사용되는 비중은 현금에 비해 더 크고도 커지고 있어, 지급결제기술의 수준은 언젠가 현금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할 것이라 예상 가능하다. 그렇지만 현재의 많은 국민들은 지급결제수단의 보안과 관련해 불안감을 갖고 있고, 새로운 지급결제수단에 친숙하지 못한 기술배제 계층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몇몇 대기업들이 산발적으로 개발한 결제기술들이 호환 및 병립되지 못하는 상황은 결제환경을 선진화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몇몇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기술혁신과 진보의 흐름을 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현금 없는 사회로의 진전은 결국 이뤄질 것이다. 변화를 막는 것보다는 변화 자체를 촉진하되,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 피해자의 고통을 완화해주고 또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온당한 조치가 될 것이다.

(2) 합법적 화폐수요 및 지하경제의 화폐수요

  • 지급결제 기술의 발달로 현금이 점차 대체되는 현상은 현금 없는 사회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정의 한 근거가 된다. 이 외에도 또 다른 중요한 경험적인 근거들도 있는데, 이것은 화폐를 직접 소지하는 현금 이용자의 화폐수요를 조사해봄으로써 밝힐 수 있다.
  • 먼저 아래 표의 2015년 기준 구매금액대별 지급수단 이용 비중을 살펴보자. 표에 따르면 소액일수록 현금의 이용비중이 높고, 구매금액이 커질수록 신용카드가 빈번히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중앙은행의 지급결제 이용행태 조사들을 보더라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7.PNG

한국은행(2016),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결과 및 시사점

  • 이와 같은 사실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현금의 수요는 다양한 지급결제 수단의 발달로 인해 줄어들고 있음에도, 소액 거래에 있어서는 여전히 그 수요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합법적인 경제활동에서 소비자의 현금 보유 규모는 전체 현금 유통량에 비해 5% 내외일 것으로 추정되며 소비자들이 현재 유통되는 현금 중 적은 양만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합법적인 경제활동에서 쓰이는 현금의 양이 전체 현금 유통량을 설명하는 정도가 미미하다면, 대규모 현금이 유통되고 있지 않거나 혹은 유통되더라도 비합법적인 경제활동에서 쓰이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현금의 비정상적인 유통은 늘 지하경제와 결부되어 있으며, 이 비중은 결코 미미하지 않다. 지하경제는 뇌물, 자금세탁, 장기밀매나 마약거래 등의 광범위한 악성범죄뿐만 아니라 세금 탈루 등의 목적을 갖고 고의적으로 현금을 사용하는 경제행위 등을 포괄한다. 이러한 지하경제의 움직임에는 반드시 현금이 결부되어 있다. 물론 현금과 같이 가치축장을 인정받는 것에는 금이나 다이아몬드 등의 원석들도 있지만 이들은 유동성 측면에서 열악하고 또 이를 현금화하는 데 몇 가지 애로사항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비합법적인 현금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지하경제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 지하경제 규모를 가늠하는 것은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추정에 상당히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하경제 추정연구의 권위자인 Friedrich Schneider는 노동시장과 금융시장 지표들, 그리고 조세율과 공공 서비스의 질적 지표 등을 갖고서 국가별 지하경제규모를 추정해 왔다. 그의 최근 연구(2016) 결과에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주요 국가들의 국내총생산 대비 지하경제 비중 추정치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결과 중 일부를 추출해 아래와 같이 표로 제시하였다.
    9.PNG

Mai Hassan and Friedrich Schneider, “Size and Development of the Shadow Economies of 157 Countries Worldwide: Updated and New Measures from 1999 to 2013”, IZA, 2016.

  •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각 국가의 GDP 대비 지하경제 규모는 대부분 양적으로 크지만, 국가별로 그 편차가 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을 제외하고 시장경제가 발달한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경제에서는 지하경제 비중이 낮은 반면, 인도나 러시아 등은 그 비중이 다소 높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 대비 32.1% 정도로 심각하게 높은 수준이라 상당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이 결과 발행된 화폐 중 상당한 부분이 환수되지 못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2016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은행은 37조 2,000억 원의 화폐를 신규 발행하였고 그 중 환수된 액수는 26조 5,771억 원으로 약 71% 정도였다. 또 신규 화폐발행액 중 약 62%가 5만원권이었으나, 동액권의 환수 비중은 약 50%에 불과했다.
  • 우리나라에서 지하경제가 이렇게 높은 비중을 보이는 것은 현금이 비단 부정부패나 범죄행위에 연루되는 것 외에도,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것 등의 일련의 사회문화적 요인도 들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고액권 지폐는 분명히 지하경제 규모를 키우는 데 일조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며, 이러한 연결고리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정리하자면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있어 현금수요는 기술발달에 힘입어 점차 감소하고 있지만, 금융소외계층이나 소액결제에 있어서는 그 수요가 존재한다. 둘째, 유통되는 현금은 정상적인 경제활동보다 지하경제로 흘러 들어가 사장되는 규모가 상당하다. 셋째,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은 엄청난 규모의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그 결과 경제 활력의 증진과 투명성 개선이라는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현금 없는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금융소외계층 등이 겪을 금융배제나 각종 계층의 저항 등 사회적 진통이 크다고 판단되면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점진적 이행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고액권 지폐를 먼저 없애는 것이 합당한 수순이 될 것이다. 발행된 현금의 과반 정도는 고액권 지폐가 차지하고 있고, 실제 고액권 지폐는 유통속도 측면에서도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액권 폐지는 지하경제를 위축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고, 지급결제기술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고액권 폐지가 무리 없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현금 폐지가 가져오는 또 다른 편익 : 통화정책과 마이너스 금리

  • 화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또 다른 경제현상은 통화정책과 금리운용에 관한 것이다.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급속히 전염됨에 따라 세계는 심각한 경기침체를 경험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재빠르게 인하했다. 그에 따라 미국과 유럽은 명목금리가 실효하한(Effective Lower Bound)에 다다랐고, 심지어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은 마이너스 수준으로 인하함으로써 미지의 영역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고 평가받았다. 통화정책과 마이너스 금리, 바로 이 지점이 현금과 관련되어 있다.
  • 왜 명목금리는 실효하한이 존재하며,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운용한다는 것이 그토록 충격적인 소식이 되었는가. 이는 현금이 사실상 ‘무기명의 제로금리의 채권’과 같기 때문이다. 현대의 중앙은행은 경기가 급속한 침체에 접어들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여 수요를 진작하려 하지만, 정책효과가 온전히 발현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금리를 지속적으로 내릴 수밖에 없고 결국 0%에 가까워지는 순간 흔히 ‘유동성 함정’에 빠진다고 한다. 명목금리가 양의 영역에 있을 때는 경제주체들이 화폐를 수요하기보다는 채권 등의 자산을 수요하지만, 금리가 실효하한인 0%에 다다르면 화폐와 채권 등이 서로 무차별해지는 순간인 유동성 함정이 나타난다. 이러한 마이너스 금리 상황에서는 경제주체들이 채권을 보유할 유인이 전혀 없고,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률을 나타내는 채권보다 무기명의 제로금리 채권인 화폐가 더 매력적인 상황이 된다. 그 결과 화폐수요가 공급되는 화폐를 모조리 흡수함으로써 통화정책이 무력해지게 된다. 이것이 중앙은행이 금리정책을 마이너스 수준으로 운용하겠다는 발표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이유다.
  •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선진국 재정상황은 위기상황에 무제한적인 대응을 할 수 있을 만큼 건전하지 않다. 게다가 물가 및 기대물가도 상당히 안정된 상황이기 때문에, 명목금리 수준이 낮은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는 마이너스 금리체계가 언젠가 새로운 정상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했다. Williams(2009)는 미국의 정책금리가 제로 수준에 다다른 상황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사용할 수 있었고, -4% 수준으로 금리정책을 운영했다면 4년 동안 미국 경제의 부양효과는 약 1.7조 달러에 이르렀을 것이라 추정한 바 있다. 그러나 금리정책이 무력해진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들은 저마다 봉착한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라 불리는 비정상적 통화정책을 수행했다. 명목금리가 제로금리 수준에 도달해 더 이상의 조작이 불가능하더라도 계속적인 통화 증발을 하면 기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고, 이에 따라 실질금리를 인하시킬 수 있으므로 경기진작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지만 양적완화를 통해 실제로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자산들을 매입하여 비대해진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결국 축소시켜야 하는데 이러한 출구전략의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는 아직도 불확실성이 큰 부분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양적완화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행과정에서 꺼진 거품들을 다시 부풀리는 역할을 했다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결국 경기가 회복기에 접어들면 양적완화 정책을 종료하고, 전통적인 금리정책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 이처럼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전통적인 통화정책에 대한 근본적 한계점이 큰 주목을 받았고, 이에 경제학자들은 통화정책을 개선할 수 있는 몇 가지 아이디어들을 내놓았다.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으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세 가지의 아이디어만을 살펴보도록 한다.
  • 첫 번째 아이디어는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조정하는 것과 결부된다. Krugman(2014)은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은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2%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 목표치를 높이는 경우 통화정책의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명목금리가 실질금리와 기대 인플레이션율의 합으로 결정된다는 사실, 그리고 인플레이션 목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장기적으로 통화당국의 인플레이션 목표치와 부합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만일 중앙은행이 목표로 하는 인플레이션율이 2%가 아니라 3% 혹은 4%로 상승한다면 자연적으로 명목금리의 수준을 1%P 혹은 2%P만큼 상승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이처럼 명목금리 수준이 높아진 사회에서는 중앙은행이 평상시에 금리를 더 많이 인하할 수 있는 여지(room)를 확충할 수 있다. 그런데 Krugman에 따르면 선진국의 인플레이션 목표치가 2%여야 하는 실증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고, 1990년대 대안정기(Great Moderation) 당시 중앙은행들 간에 일반적으로 합의된 결과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목표 수정은 통화정책만을 놓고 보면 바람직할 수 있지만, 체제변경(regime shift)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부작용들이 있다. 첫째, 민간의 행태가 인플레이션에 민감해짐으로써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신뢰와 관습이 나름대로 안정적인 사회에서 갑자기 인플레이션이 상대적으로 커진 사회가 되면, 사람들은 가격을 자주 바꾸거나 계약을 변경하면서 거래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더 중요할 수 있는 부작용은 통화당국의 신뢰성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2%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지키려고 애써 온 중앙은행이 갑자기 목표치를 변경하면, 민간의 경제주체들은 중앙은행이 언젠가 그 목표치를 또 변경할 수 있다고 기대할 합리적 유인이 존재한다. 이러한 민간의 불신은 통화정책의 효과를 제약할 것이 분명하다.
  • 두 번째 아이디어는 통화정책 체계를 변경하지 않더라도 세금 시스템과 같은 재정정책을 조정함으로써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논의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Feldstein(2002)의 제안인데, 이 제안의 핵심은 세금체계를 변경해 소비자의 지출을 촉진시킬 수 있고, 이러한 수요 진작으로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정부가 매분기 소득세율을 1%씩을 인하하고 총 세수를 중립적으로 만들기 위해 매분기 1%의 부가가치세를 인상시키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세율중립 정책이고, 생산자 가격에는 인플레이션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소비자가 직면하는 세후 가격에서는 분기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1%씩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경우 연간 4%씩의 소비자가격을 인상시키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가수준이 높아지기 전에 더 빨리 지출하려는 유인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기대인플레이션이 상승하여 명목금리 수준도 동일한 정도만큼 상승하므로, 통화당국의 입장에서는 정책 가용성이 제고되는 이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가 이론적으로는 흥미롭지만, 그것이 실천이라는 다른 차원에서는 무용한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정책당국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는 효율성과 같은 경제적 가치 외에도 다원적인 가치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율체계는 효율성뿐 아니라 형평성을 반영하기 마련이고, 누진적 특성이 있는 소득세 비중을 줄이고 소득수준에 중립적인 부가가치세 비중을 높이면 한 사회의 세율체계는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에게 유리한 구조로 재편성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이 아이디어를 실제 실행에 옮기는 데는 재분배에 관한 심각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 세 번째 아이디어는 현금에 일종의 수수료를 부과함으로써 수익률을 음의 값으로 만드는 것과 관련된다. 이 아이디어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는 독일의 20C 경제학자 Silvio Gesell의 Stamp Money이다. 그는 현금의 가치인정을 위해 현금에 주기적으로 세금을 부과해야 하며, 도장이 찍힌 현금에 세금을 부과하자고 주장했다. 이렇게 현금의 유용성을 인정받기 위해 세금을 부과하자는 아이디어는 근본적으로 현금의 수익률을 음으로 만들자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자연적으로 명목금리를 음의 수준으로 만든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Mankiw(2009)가 대학원생 제자의 아이디어를 소개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변형된 바 있다. Makiw는 발행된 지폐들에 고유의 일련번호가 있다는 데 착안하여, 중앙은행이 주기적으로 일련번호 숫자(가령 10자리 중 맨 끝자리 수)를 추첨하고 그 추첨된 숫자가 적힌 지폐를 무용한 것으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만일 일련번호의 자릿수가 10자리이고 발행된 지폐의 수가 일련번호 자리마다 균등하게 분포된다고 가정하면, 주기적으로 발행된 화폐의 10%는 사장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낼 것이다. 이는 화폐의 기회비용, 즉 명목금리가 정확히 –10%가 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된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은행에서 인출할 때 규모를 제한하자는 것이나, 인출 시 수수료를 부과하게 하자는 식으로 다양하게 각색되었는데 그 본질은 현금에 비용을 부과하자는 방식인 것이다. 사실 이러한 아이디어는 현금의 유동성 기능을 극히 제한한다는 점에서 효용보다 비용이 더 클 수 있다. 일련번호를 일일이 확인하게 만드는 데서 생기는 교환의 비효율성도 문제될 수 있다. 물론 전자식 식별장치 같은 것들을 도입하여 이를 확인하는 데 비용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가령 추첨된 일련번호가 지정되어 있는 화폐는 기존의 금융시스템 밖으로 유통될 수 있고, 사적으로 할인되어 교환되거나 유통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정책당국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 앞서 살펴본 통화정책 상 본질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있었지만, 제 방안들을 채택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들이나 비용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단계적으로 현금을 폐지하고 디지털 통화로 대체하자는 방식이 그나마 매력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금을 폐지할 때 통화정책이 제로금리라는 족쇄에서 풀려나게 된다는 사실은 현금 없는 사회에 관한 논의의 시작보다는 결과에 가까울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것은 일상적인 현상보다는 위기 상황에서 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은 언젠가 일어날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 대비하고자 당장 지금의 현금을 없애자는 주장에 설득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다차원적인 관점에서 현금을 폐지할 때 경제사회적으로 얻는 혜택들이 분명히 비용을 능가하고, 그 혜택 가운데 한 가지가 마이너스 금리라는 탄약을 얻게 되는 것이라 바라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이 어떻게 현행 통화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괜찮은 글이라 생각하시면 격려해주세요. 응원은 성장의 동력이니까요!
그리고 건전한 비판과 토론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Sort:  

안녕하세요 글잘 읽었습니다
오늘 계정 등록한 초보입니다
선팔하고갈께요 보시면 맞팔부탁드립니다 꾸벅

글 짱짱 길긔!

ㅋㅋㅋㅋㅋㅋㅋㅋ뜨끔..

특이한 이론이 참 많군요.

다시 읽어봐야 조금이라도 알 듯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같이 성장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

1일 1회 포스팅!
1일 1회 짱짱맨 태그 사용!
^^ 즐거운 스티밋의 시작!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3
JST 0.030
BTC 65128.68
ETH 3442.23
USDT 1.00
SBD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