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가난한 나의 고독에 대하여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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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고독이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태생이 고독하다거나 원래 혼자라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고독은 아닌것 같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가져야할 고독이라면 선뜻 이해가 가실런지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서 김연수는 값싼 고독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값싸게 즐길수 있는 고독이란 게 없어. 돈을 지불하지 않은 고독은 사회 부적응의 표시일 뿐이지. 심지어는 범죄의 징후이기도 하고. 예를 들어 선생들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서 지내는 학생에게서 자살이나 학교 폭력의 가능성을 잃고, 이웃들은 친구나 가족의 왕래가 없이 살아가는 1인가구의 세대주가 잠재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만 하잖아. 우리 시대의 고독이란 부유한 자들만이 누릴수 있는 럭셔리한 여유가 된 거야.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일이라면” 중

럭셔리한 여유라는 새로운 정의가 내려진 최첨단 고독이라는 녀석은 내가 꿈도 꿀수 없는 먼 나라 이야기인 듯합니다. 그 먼곳에서 주변 왕래 없이 조용히 지내는 나에게 위험하다라고 경고를 보냈습니다. 이제 그만 밖으로 나오렴. 나는 범죄자도 은둔자도 아니지만 내 고독에 지불할 경제적인 여유도 부족하고 귀찮기도 하고. 삶이란게 나에게 늘 그렇듯.

오늘은 가난한 나의 고독이 지독히도 애잔해지는 날입니다. 어디든 나가서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서 시끌벅적하게 한바탕 수다라도 꺼내 놓고 싶군요. 내 창자에 기름기 가득한 음식들로 채우고 맥주나 와인으로 목구멍의 기름기를 씻어내며 외부 세계의 에너지로 채우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음주량은 가계 주머니 사정과 반비례 한다고 우스갯 소리로 술을 줄여야 하나 했는데 오늘만은 예외사항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침에 해외에 거주하시는 몇몇 스티미안의 블로그를 찾아 가봤습니다. 설음식은 드셨는지 떡국은 드셨는지 궁금하더군요. 결론은 여전하시다는것.

그래서 나도 랩탑을 꺼내 놓고 마주 앉았습니다. 몇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글 한자 쓰기도 버겁기만 합니다. 고독은 창조적 자아로 발현되기도 한다던데 나한테는 그런 능력도 운도 따르지 않는가 봅니다. 가난한 나의 고독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고 밥도 먹고, 종일 잠만 자려는 강아지를 깨워 산책도 시키고, 진솔한 대화를 시도하며 시간을 흘려 보냈습니다. 이쯤에서 궁상 맞아보이는건 혼자만의 생각인가요?

어쩌면 내가 끌어 안고 살아가야 하는 내 생활의 고독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상실감을 느끼거나 대항해야 하는 대상으로서의 고독은 결코 아닙니다. 술잔을 채우기 위해 술잔을 비우는 고독이지요. 나의 의지이고 선택이자, 나의 필연 관계입니다. 나의 고독의 무게는 가볍고, 깊이는 얕고, 빛깔은 맑은, 그래서 언제든지 한방에 지구밖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정도로 적당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것이 내가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방편이자 생활의 지혜입니다. 고독과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관계랍니다.

오늘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에게 뜨끈한 떡국 한그릇 내밀며 큰소리로 웃어줄 것입니다. 우리 집은 제가 떠들지 않으면 상당히 조용하거든요. 고독의 성인가요? 어린 시절 설날의 추억과 친척들의 비화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봐야겠습니다. 그렇게 나의 가난한 고독에 발차기를 날리고 술잔을 비울 준비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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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텀블님!

ㅎㅎㅎ 소요님!

ㅎㅎㅎㅎ 저도 가난한 고독과 오래 자주 친구 하고 있습니다.ㅋㅋㅋㅋ
화이팅 입니다~!!>ㅁ<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렇게 반가울수가요 ㅎㅎㅎ 울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뭘 고민하고 생각하다가도 결국 가족들이 생각나는 건
다 똑같은가봅니다. 글 잘쓰시네요^^ 자주 올려주세요. 떡국 맛있게 드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족만한게 있나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팔로하고 잠시후에 놀러가볼게요!

좋은글이네요.
고독이 창작으로 이어진다는 건 어느 예술가들에게나 걸맞는 말인지, 저에게도 에빵님처럼 해당사항이 없었습니다. 고독으로 돈을 벌 순 없지만 고독을 이용하여 시간을 보내는게 고작이에요.
남은 설도 잘 보내세요!

피기펫님은 무얼 하고 지내시나 궁금했는데 오늘 고독 쫌 씹는다고 아직 방문을 못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ㅎ

외로움을 많이 타는날이셨군요. 남은시간동안은 돌아온 가족들과 좋은시간 보내세요.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 어떻게 지내셨나요? 잠시후에 확인 들어갑니다. ㅎㅎ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고독과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관계랍니다.

술 친구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오늘 떡국 못 드셨죠? 제가 한그릇 보내드리고 싶으나 음식 솜씨가 형편없어서 ㅋㅋㅋ 저랑 술친구 하시죠! 좀 잘 많이 드셔야할텐데요 ㅋㅋ

마음만으로도 벌써 배부르네요. 감사합니다 :) 주량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라 들었습니다만... 제가 어디 가면 항상 마지막에 남는 자였습니다. 아실까 모르겠네요. 모두의 귀갓길을 책임져야 하는 마지막 남은 자의 비애를...

라스트 맨 스탠딩인가요! 쫌멋진걸요! 우와하하하하핳!

헐.. 그 말 쓰려다 말았는데!

고독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고독한거죠^^
고독, 외로움은 사람들의 숙명입니다
뭘 해도 딱 뒤돌아보면 그녀석이 기다리고 있어요
경제력이 좋든 나쁘든. 권력이 있든 없든. 사랑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항상 우리 주변에 있는 녀석.
그냥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군요. 좀더 애정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글 읽고나니 강가 벤치에 앉아 편의점에서 파는 수입맥주 4캔 or 값싼 와인 한병 들고 가서 혼자 유유작작 마시고 싶어지네요~

한강 둔치에서 마시는 맥쥬~ 그녀석은 남다른 고독의 맛이죠! 즐기세요 ㅎㅎㅎ

ㅎㅎㅎ 네, 즐겨야죠~ 감사합니다. ^^

글쓰기 정말 어렵습니다 ㅠ 고독하더라도요. ㅠㅠ 가족이랑 즐거운 설날 보내세요~ 팔로우 하고 가겠습니다~

맞아요. 오늘 가족들이 등 떠밀어서 맥주 마시고 왔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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