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안에서부터 쌓인다

in #kr6 years ago

전문자격사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에 자격사가 있으면 그들의 삶은 직장인들의 삶과 확실히 달라 보인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성공하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대학시절 교내에 걸린 합격 플래카드를 보며, 이 직업 무엇이고 저 직업은 무엇인지 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전문자격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인데 직업으로 다가오게 된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교내에 세무사니, 회계사니 합격했다는 선배들의 이름을 보며 저 직업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플래카드까지 거나 싶었다. 물론 대학마다 사정이 달라 거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겠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합격자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합격에 대한 영광은 학부에서든 단위 대학에서든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동경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시절, 그리고 그 기억이 희미할 때 즈음에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중소기업으로 직장이 변경되고, 중소기업에서도 퇴사를 하고 무엇을 하며 살까 고민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기억의 저편에 남겨져 있던 전문자격사에 대한 조각이었다.

한 번 도전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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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는 직업을 선택하기보다 그래도 경영학을 배웠으니 경영학 분야로 전문자격사가 되자고 웹서핑을 하던 것이 어쩌면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검색해보니 자격증은 보이지 않았고 모두 경영컨설턴트가 되라는 정보뿐이었다. 경영컨설턴트가 되기에는 학력이 부족하고, 그리고 이미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섰고. 무엇보다 웹서핑을 하다가 광고글에 현혹이 되어 다른 자격사가 눈에 들어왔으니,

바로 그것이 내가 지금 선택한, 7년째 길을 걷고 있는 경영지도사라는 자격이었다. 미래에 유망한 자격증이고 몇 년만 일하면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광고글에. 그 글이 참인지는 당연히 믿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검색을 꽤 긴 시간 동안 수행했는데 협회 홈페이지에는 정보가 없었고 그나마 D포털 카페에 현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었다.

카페 활동을 하면서 정보의 조각을 퍼즐을 맞추듯이 맞추어 보니, 어느새 나는 경영지도사가 되어야겠다는 이름 모를 끌림에 조금씩 전도되어 갔다. 화장지가 물을 서서히 빨아들이듯이 나도 그렇게 경영지도사라는 직업으로 서서히 물들어 갔다. 자격을 취득해야 되겠다고 확신이 들었을 때 일을 해야 한다는 경제적인 부담감과 자격을 단번에 취득할 수 없다는 부족한 자신감으로 인해 딱 한 번만 도전해보자고 나 스스로 다짐을 했었다.

시험을 준비한 것은 1월 중순경. 1차 시험이 불과 3개월 남은 시간이었고, 2차 시험도 1차 시험 이후 2개월만 남은 시간이었다. 2차 시험을 먼저 준비하는 다른 분들과 달리 나는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에 1차 시험에 올인했다. 운이 좋게 합격하고 2차 시험을 준비하고 또 2차 시험도 간신히 턱걸이로 합격했다.

6개월 만에 취득하여 쉬운 시험이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겠지만 3년을 준비하고 떨어진 분도 있고, 나처럼 몇 개월 만에 붙은 친구도 있었으니 시험은 정말 어느 정도의 준비와 운이 따라주는 것 같았다. 시험을 합격하고 합격의 기분을 만끽할 때 즈음에 실무연수를 받고 나는 바로 일터로 가야만 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부모님에게 기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수습이라도 받을 직장을 구하려 했지만 다가온 오퍼들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열정 페이들을 제공하는 곳들뿐이었다. 동기 경영지도사님이 창업을 먼저 하여 회사에 나를 비상근 경영지도사로 넣어주었는데 당면한 한 달 생활을 매번 해결하기 위해서, 낮에는 일을 하고 틈나는 시간마다 용역을 도왔었다.

1년 반 정도 다른 일을 했나, 제안서를 넣은 기업에서 꽤 큰 용역이 터지면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영지도사 생활. 비상근으로 2년 만에 상근 경영지도사가 되어서 나는 그렇게 경영지도사의 시장으로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시장에 진입하고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수습도 제대로 받지 못한 내가 어떤 용역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사수도 없고 혼자 하나씩 공부하고 배워가면서 부딪혀볼 뿐이었다. 어디 가서 아는 체를 하면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새파란 젊은 놈이 컨설팅한다고 덤비니 내쳐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내게 있어 경영지도사라는 전문자격은 허울이 좋은, 실속이 없는 자격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상근으로 일하기 시작한 초기만 하더라도 명확하지 않은 업권이니, 부족한 수익구조니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나의 실력이 그저 부족해서 이런 일을 겪는다고 생각했었다.

실적이 부진하고, 부진한 실적으로 인한 경영악화가 계속되고, 결국에 다니던 컨설팅 회사를 나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정도였다. 운 좋게 프로젝트를 수주받아서 한 달 한 달 생활은 겨우 버티긴 했지만 사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가가 마르지 않는다.

2015년 8월. 더 이상은 한 달 생활을 하지 못하겠다 생각이 들어 창업을 결심했다. 사업자를 내면서 정말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비상근으로도 일해보고, 상근으로도 일해보고. 사업자를 내서도 내가 자리잡지 못하면 더 이상은 우리 경영지도사라는 자격이 나를 못 먹여 살린다고. 그러니 포기를 하겠다고.

거짓말처럼 포기를 하려던 순간에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고 지내던 중소기업 대표님이 사업자를 냈다고 하니 축하한다며 작은 일감을 준 것으로 일이 시작되었다. 뭐라도 부딪혀야겠다 생각이 들어 이 분 저분 찾아뵈면서 인사를 드리니 잊지 않고 작은 일감이라도 주었다. 동료 경영지도사님들이 하청도 주셨고, 알게 모르게 명함을 돌리면서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 조금씩 조금씩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사장, 대표라는 직함을 달고 활동을 하니 어깨에 지워진 책임감은 더 높아졌지만 아직 너무 어리고 애송이인 전문자격 사지 만 그래도 직장 생활 경험과 시장에 진입해서 4년간을 일해왔으니 그 경험을 값을 쳐서 나를 믿어주는 분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일 중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있었다. 시스템을 수립해야 하는 컨설팅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용어들이 굉장히 친숙했는데 대기업을 다닐 때 내가 해왔던 업무와 유사했다. 알고 보니 같은 국제기구에서 하고 있는 업무라 용어가 일치했다.

취미가 특별한 것이 없어서 매일 저녁마다 뉴스를 읽거나 칼럼을 보거나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관심 있게 지켜본 사회적 기업에 대한 내용을 계속 읽고 있다 보니 사회적 기업에 대한 자문이나 컨설팅이 들어왔을 때 전혀 당황하지 않고 기업에 대해 이해하고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대표님이 온라인 쇼핑몰로 물건을 팔고 있다 보니 그 일을 조금씩 도와주면서 쇼핑몰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알게 된 쇼핑몰 업무가 소상공인 컨설팅을 발주하는 쇼핑몰 소호 운영자분들을 돕게 해주었다. 모임에서 알게 된 대표님이 꽃배달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친하게 지내면서 분야를 알게 되고 그 일을 알게 되니 그 후에 만나게 된 모든 화훼업 종사자 분들의 애로사항과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직접 창업을 해보니 창업자들의 고통을 알게 되었고, 내가 직접 세금을 얻어맞아보니 세금에 대한 애로사항도 느끼게 되었다. 가끔씩 저녁을 함께 먹는 중소기업 대표님이 사관학교 지원을 하겠다고 멘토링을 부탁했는데 그분을 멘토링하고 나니 정부지원사업에 대한 페이퍼가 쉽게 눈에 들어왔다.

R&D 평가를 직접 해보니 R&D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돈이 되지 않아도, 하루에 수백 킬로를 달려 경험만 하더라도 내가 발로 뛰고, 내가 직접 부딪혀보니 온 몸에 상처가 가득하지만 경험은 내 안에 나이테가 하나둘 생기듯, 그렇게 아로새겨졌다.

버릴 경험은 없다는 말을, 우리 선조들이 하던 말을 불신했는데 시장 진입 7년 차에 모든 경험이 버릴 것이 없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모든 활동이 우리 일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나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 정보가 있고, 그 시선이 닿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창업기업, 스타트업에 정보가 흘러간다. 그리고 그 소중한 정보들은 지식서비스화 되어서 값이 매겨지고 오늘도 나를 살게 한다.

작년 한 해 부진한 실적이 길어져 하루, 한 달을 예고할 수 없는 상황들이 연속되었다. 이전과 같이 절망하고 낙심하는 날이 하루도 없는 날이 없었다. 접고 싶었고, 더 이상 이 일에 대해서 기대하기를 원하지 않았었다. 목까지 차오른 위기는 내려갈 일이 없었고 목을 넘어 코 아래까지 차오는 위기감에 젖어있을 때 즈음 경험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경험, 돈 주고 살 수 없는 값진 경험. 그리고 아직은 더 할 수 있다는 내 안에 담긴 희망감.

또다시 포기할 위기에서 그 경험이 나를 한번 더 살렸다. 일이 들어오고 또 다음을 기약하게 되고, 내일을 바라보게 되고, 내년을 희망하게 되고. 그렇게 2018년이 되어 브런치에 글을 남기고, 팟캐스트도 운영하게 되었다.

버릴 경험은 없다. 경험을 버릴 수 없다.

경험은 안에서부터 쌓인다. 안에서부터 쌓인 경험이 나를 살려낸다.

올 한 해, 이 직업으로 한 번 더 비상해보자 생각하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비록 나와 다른 길을 가고 있겠지만, 어딘가에서 꿈을 향해서 부딪히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반드시 그 경험이 자기 자신을 살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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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살이 튀는 전쟁터 같은 사회에서 함께 화이팅 해봅시다!! 너무 감명깊게 잘 읽고 가요!
팔로하고 종종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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