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 맥스코인 캐던 노인

in #kr7 years ago (edited)

작품설명 :

3년전 쓴 작품입니다. 당시 라이트코인으로 대표되던 알트코인이 채굴 붐을 일으켰죠. 그러면서 등장한 맥스코인. 요즘 분들은 이름도 모르실텐데, 당시에는 맥스코인이 지금의 이더리움처럼 되는거 아니냐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죠. 당시 경제 전문가로 TV에서 유명하던 맥스카이저라는 사람이 대대적으로 홍보한 코인입니다. 그래서 많은 채굴자가 달라 붙었죠. 하지만 결국 개발은 말처럼 이루어지지 않았고 지갑마저 버그로 작동하지 않으며 거래소에서 퇴출되었죠. 물론 당사자들은 초기 프리마이닝한걸로 떼돈을 벌었습니다. 이후 잡코인이자 사기코인의 대명사가 되어서, 지금도 공식 홈페이지(maxcoin.co.uk)에 가면 코인 소개가 아닌, 사기 (scam) 폭로 내용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전 세계 잡거래소 3군데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놀랍게도 중국 거래소에서는 채산성만 따지면 이더보다 더! 단가를 쳐주고는 있지만 거래량도 없는데다 중국인이 아닌 이상 인출이 불가능하므로 별 의미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갑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음에도 아직도 캐는 사람이 있다는게 미스테리입니다.

당시 맥스코인이 망하면서 채산성 있는 코인이 더는 나오지 않았고, 모든 채굴은 ASIC으로 바뀔 것이라는 비관론 속에 채굴기 중고대란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코인계는 3년간의 암흑기를 거쳤죠. 하지만 이더리움을 비롯한 ANTI ASIC가 나오고 수 많은 코인들이 다양한 알고리즘을 발전시키면서 다시 채굴계의 봄이 왔습니다.

아래는 당시의 비관적인 심경에서 맥스카이저를 까는 심정으로 쓴 작품입니다. 재미로 읽어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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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달 전이다. 내가 갓 암호화폐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돼서 거래소에 내려가 살 때다. 비트코인 왔다 가는 길에, 라이트코인으로 가기 위해 비트코인토크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도기코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맥스코인을 캐서 파는 맥스 카이저 노인이 있었다. 코인을 한 벌 사가지고 가려고 캐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0.04 를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코인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캐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캐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캐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 옵션 넣고 저 옵션넣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별 옵션 안 넣어도 됐는데, 자꾸만 더 옵션질을 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캐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시세가 점점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캐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옵션을 넣을 만큼 넣어야 블럭을 캐지, 카드를 재촉한다고 블럭을 캐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옵션을 넣는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시세가 자꾸 떨어진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매도 타이밍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난이도가 오르고 늦어진다니까. 코인이란 제대로 캐야지, 옵션을 아무거나 넣으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캐던 것을 숫제 거래소 지갑에다 넣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똥값으로 폭락한 코인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이체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코인이다.

매도 타이밍을 놓치고 물려버린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채굴을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맥스 카이저 리포트만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사기꾼다워 보였다. 장삿속으로 번뜩이는 눈매와 고소해하는 입꼬리에 내 몸은 더욱 부들부들거렸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증폭(增幅)된 셈이다.

집에 와서 코인을 내놨더니 아내는 코인이 예쁘다고 야단이다. 비트코인이나 라이트 코인 따위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리젠 타이밍이 너무 길면 트랜젝션 시간도 길고 캐기도 힘이 들며, 너무 짧으면 하드 포킹이 나고 휴지가 되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풀 수 없었다. 0.04 에 구매한 코인은 0.00013 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관철했다. 참으로 미웠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코인은 경제가 흔들리면 오히려 시세가 오르고 경제가 회복되어도 그 위상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잡코인 시세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코인을 런칭할 때, 질 좋은 알고리즘을 잘 짜서 코딩한 뒤에 홍보를 잘 하여 지갑을 배포한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업데이트를 하고 공지를 한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번 한 뒤에 비로소 거래소에 상장한다. 이것을 펌핑이라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개발 홍보 없이 바로 캔다. 해쉬가 금방 붙는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시세 주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업데이트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채굴기(採堀機)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채굴기를 사면 보통 것은 얼마, 하이앤드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듀얼코어에 오버클럭한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오버클럭이란 클럭을 올린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오버를 했는지 다운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오버클럭을 할 일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크립토커런시를 만들어 냈다.

이 코인은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리가 없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호구 물린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딴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사기 쳐 먹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코인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몽둥이 찜질에 칼빵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보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탈하고 우울했다. 내 마음은 보복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맥스 카이저 리포트를 바라보았다.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된 암호화폐에 대한 찬사가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기사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코인을 캐다가 유연히 "00035 will be the price people talk about; like, "I bought BTC at .90 cents, dude.", "Goodbye, .00043" ".002"라고 지껄이던 모습을 상기했다. 나는 무심히 '시발색기(時發索基) 개색희(開塞犧)!' 조가둔새기(調家遁賽期)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ASIC으로 채굴이 거의 종료되어 가는 라이트코인을 캐고 있었다. 비트코인과 라이트 코인을 제외한 당시의 모든 잡코인은 망해서 사라졌다. 전에 비트코인 라이트코인을 GPU 돌려서 캐던 생각이 난다. 그래픽카드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쿨러 돌아가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발열로 카드가 죽었다느니 잡코인에 작전 붙었다느니 하는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년 전 맥스코인 캐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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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흥미로운 일화군요..

당사자들에게는 가슴 아픈 사건이었죠. ㅋㅋㅋ

ㅎㅎ 재밋게 읽었어요 ㅎㅎㅎㅎㅎ 업봇해드리고 가요 ㅎ

감사합니다. ㅎㅎㅎ

@gotoperson님의 소개들을 따라 왔습니다.
지식의 부족으로
알아 들을 수 없는..ㅎㅎ
하지만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D
적지만 100% 보트&팔로우 하고 갑니다.

와우.... 이런 경사가!!!
감사합니다. 님도 좋은 하루 되시길!

이런 일화가 사실입니까?ㅋㅋ대박

레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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