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이]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세계평화’의 꿈은 현재진행형
[비트코인 백서 10주년 기념 릴레이 기고_#6] 이송이 메타디움 최고전략책임자
여섯 번째 글은 이송이 메타디움 최고전략책임자(CSO)가 보내온 글입니다. 이송이 CSO는 2013년 비트코인 송금 서비스 ’37코인스’를 공동 설립한 비트코인 얼리어답터이자, 현재 업계 최전선에서 블록체인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고 있는 플레이어입니다.
비트코인 백서가 나온 지 10년, 그중에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지난 7년을 내 삶의 여정에 빗대어 회고하고자 한다. 이상주의자가 어떻게 꿈꾸는 현실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블록체인과의 조우
2012년 겨울, 처음 비트코인에 대해 알게 됐다. 한창 들뜬 얼굴로 나에게 비트코인이니, 블록체인이니 떠들어 대던 친구를 나는 차가운 얼굴로 응대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2018년 가을, 나는 블록체인 업계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다.나는 사회복지를 공부한 철저한 문과생이다. 졸업 후 1년 동안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NGO에 취직했다. NGO에서 일하던 중 서아프리카 말리로 출장을 가게 됐다. 말리는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이 매년 각국의 교육 수준과 국민 소득, 평균 수명 등을 조사해 인간개발성취 정도를 평가해 내놓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에서 189개국 중 182위(2017년 기준)에 자리하고 있는 매우 열악한 나라다.
내가 말리를 찾았던 2013년, 사하라 사막과 이어지는 아름다운 도시 팀북투에서 내전이 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남쪽으로 내려와 살고 있었다. 나는 남쪽의 작은 도시에서 쓰레기로 지은 집에 살고 있는 난민들을 만났다. 내가 했던 일은 주로 취재가 가능한 가족들을 찾아 그들이 겪은 일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 만났던 난민 중 ‘파티마’가 내 주의를 사로잡았다.
파티마는 쓰레기로 지은 집, 모래로 다져진 바닥 위에 4명의 아이과 함께 살고 있었다. 파티마는 동네 사람들의 집에서 빨래나 청소를 해주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파티마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 혹시 남편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남편은 이웃 국가인 ‘코트디부아르’에서 일하며, 가끔 그곳에서 이 동네로 오는 사람들 편에 돈이 든 봉지를 들려 보낸다고 했다.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 송금을 비닐봉지로?!
파티마가 버는 돈만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충당하지 못했다. 남편이 비닐봉지에 넣어 보낸 돈이 무사히 전달되지 않으면,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학교 대신 일을 하러 나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아이들은 낮은 교육수준으로 계속해서 낮은 급여, 위험한 직종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파티마에게 중간에 돈이 사라지는 것이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하고도 절망스러웠다.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돈을 전달받을 기회조차 없어요.”
그렇다. 비닐봉지 해외 송금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그녀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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