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연히 기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in #kr6 years ago (edited)

2018년 3월. 이틀 전부터 레드벨벳이라는 아이돌 멤버인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어봤다고 언급했다가 일부 팬들에게 지탄(?)을 받았다.

행태의 기이함을 차치하고라도 나는 이 문제가 기사화해서 하루종일 소셜미디어와 포털을 뒤덮던 어제를 돌아봤다. 나는 이미 이 상황을 그 전에 알고 있었지만 첨언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2017년 2월 20일에 글로 남겼던 게 떠올랐다.


 

대구 지하철과 인근 고등학교 굴다리에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낙서가 여럿 그려져 논란이었다. 여러 사진제보들을 찾아보니 보기 역할 지경이다. '잘 죽었다'는 메시지가 주를 이뤘고 그와중에 남자성기를 그린 듯한 낙서도 눈에 띈다.

현재 대구 수성 경찰서에서는 폐쇄회로(CCTV)를 확보해 범인을 추적 중이다. 공공기물 훼손죄가 일단 적용된 상태로 알려져있다. 간밤에 SNS를 통해 논란이 되자 시민들이 직접 나서 해당 낙서들을 지웠다. 날이 밝고 구청 직원들도 낙서 제거 작업에 합류한 상태다.

낙서가 워낙 많은지라 다 지우는 데 시간이 걸리는 듯하고 장소가 여러 곳이라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여론은 들끓었고 어떻게 인면을 하고 이런 생각을, 직접 손으로 적어 공공장소에 전시할 수 있느냐는 분노가 일었다.

나는 당연히 이에 관한 기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당 사진 제보를 받는 페이스북의 한 페이지에 달린 댓글이 눈에 들었다. '어쩌면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을 SNS로 공유하며 공론화한 이유가 무엇이냐. 단원고 학생들, 유가족들,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이 이 일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이 제보를 끊임없이 올리는 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사진 제보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구청에도 제보가 들어가 모욕적인 낙서를 제거하는 작업이 동시에 이뤄졌다. 시민들이 나서서 낙서 작성자를 비판하고 있는 분위기다. 문제 공론화는 문제 해결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조 : 선량한 피해자가 되라는 명령

(참조 : 명복을 빌지 마라)

그런데도 저 댓글이 목청 어디쯤 걸린 듯 넘어가지 않았다. 만약 내가 제보자였다면 나는 구청에만 신고해야 했던 걸까, 내가 페이지 운영자였다면 신고만 하고 오히려 사진 노출은 피해야 했을까. 내가 기자라면 이 사건이 다 해결된 후에 기사화를 고민해야 할까.

분명 이 사건은 이미 여러 언론에서 무수히 많은 기사를 낳고 있다. 기사마다 사진에 있는 욕설이나 모욕적인 언사를 그대로 노출하며 여론과 함께 지탄의 날을 세운다.

이 지점에서 어쩌면 낙서를 휘갈긴 자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까. 겨우 대구의 한 지역에 갈겨댄 자신의 모욕이 인터넷을 타고 '타깃'에게 분명 전달됐으리라 확신하면서.

오히려 해당 사진을 온라인에 노출시켜서 피해자들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가중했다는 지적. 그 사진을 기사화해야 한다고 믿은 내 관성은 문제에 대한 분노와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는 기회, 당연히 만천하에 분노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편리함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어차피 내게 들어온 사진 제보는 없기에 단신으로 쓸 생각은 사라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금 멈춰 생각하게 된다. 

-2017년 2월 20일 글


현상을 보이는대로 전하는 것과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사이의 차이에서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다. 무언가를 글로 기록해 기억되도록 애쓴다는 게 뭘까, 무엇을 그리 해야 하는가, 나는 왜 이다지도 애써야 하는가. 내 관성과 타성은 늘 내 마음을 춥게 만든다. 나에게도 강단이라는 게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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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가슴이 먹먹한 글입니다. 세월호 관련 기사에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기사 그리고 미디어에는 늘 너무 큰 책임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쉼표 하나 쉬이 찍지 못하는 게 기사를 쓰는 사람들의 심정 아닐까 합니다. 깊은 생각이 담긴 글 잘 보았습니다.

댓글을 이제사 봤네요ㅠ 책임이 너무 커 책임을 넘겨버리고 있진 않은지 안타까울 때도 많아요 세상은 늘 쉬이 단정할 수 없는 일 투성이기에... 하루하루 화이팅해봐야죠! 감사합니다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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