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날아 올라 벌처럼 쏘자-22편

in #kr5 years ago

연습이 끝난후 나는 곧장 아지트로 향했다.땅꼬마는 여전히 담배를 입에
꼬나 물고서 탐욕스럽게 돈을 세고 있었다. 비 인기남은 어딜 또 놀러나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내가 룸안으로 들어선걸 눈치챈 땅꼬마는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져버리곤 벌떡일어나 나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나오셨습니까 보쓰."

"별일 없지?"

"네 보쓰,가게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땅꼬마가 입에 담배를 물려주었다.나는 퉤,하고 다시 뱉어냈다.땅꼬마는
고개를 한번 숙이고 자세를 낮춰 앉았다. 삼락은 실내를 쭉 한번 훑어보
았다.온갖 애로틱한 그림과 실내 장식이 성적인 욕망을 충돌질하며 정액
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고 있었다.전엔 당연하게 여기고 익숙하게 맞
던 환경이 이젠 매우 낯설기만 했다.부적응이 짜증으로 밀려왔다.다른때
같았으면 의자나 유리컵으로 땅꼬마의 대갈통을 후려칠만한 상황이었지
만 그는 이제 예전의 삼락이 아니었다.

"잠깐 나가 있어봐."

(나는 완전히 달라지진 않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사나운 맹수의
발톱같은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목에 방울을 단 사자처럼 약자들이 피
할 기회를 주었고 뭔가 행동하기에 앞서 행여나 주위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한번 더 생각하는 신중함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야구의 발생학
적 측면을 보자면 분명 놀이 삼아서 시작된 게임임에는 틀림이 없다.그
러나 삼락에겐 아니 삼락의 인생에 있어서 보자면 야구는 현상학적으로
보나 인류학적으로보나 한 인간의 재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탈선한 기차처럼 낭떠러지를 향해 폭주
하던 나는 서서히 제 궤도에 들어서고 있다.가게를 어떻게 해야하지.엄
청난 수익을 내품에 실어나르던 돈줄을 포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
니다.또다시 지옥같은 가난을 맛보고 싶지가 않다. 무엇보다 가난이 안
겨다주는 고단함이 나에게서 야구를 송두리째 빼앗아 갈 것만 같은 두
려움이 앞선다.이제 어쩌지?
나는 야구를 통해 참된 인간이 가지는 진리로 나아가려하고 있지만 그
진리가 돈만큼 값어치가 나가는 건지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진리
는 어리고 세상 경험이 없는 나에겐 아직 미지의 세계나 다름이 없다.
아 어쩌지.)

탐욕과 이성이 똑같은 무게로 삼락의 양어깨를 가운데 두고 짓눌러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높은 압력과 침식작용으로 갈등하고 있었다. 생각
의 부피는 시냇물처럼 긴 꼬리를 만들며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달
려 넓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그 물길을 따라 삼락의 마음도 시간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하자욱 들어와."

그러고보니 땅꼬마의 진짜 이름을 처음 불러보는것 같았다.미안했다.그
러나 내색하진 않았다. 우린 친구니까. 그도 내맘 잘 알테니까.

"네 보쓰 꾸벅."

나는 내몫으로 할당된 금액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5만원짜리 지폐
로 크게 한묶음으로해서 5백만원이었다.

"하 자욱. 너 딴일 알아봐. "

"왜? 보쓰."

땅꼬마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차마 가게 접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그냥 문을 열고 나와 버렸다. 2루 수비를 보고 있는 철진이 살고
있는 아랫동네를 향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철진의 집은 내가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궁핍했다.시발 못사는 집구석
에서 애새끼들은 왜이렇게 까질러대는지 첫째인 철진이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더 있었다. 어미는 바람이나서 애저녁에 나가버렸고 아비는 뱃
사람이었는데 작년에 돌풍을 만나 고깃배가 좌초되어 시체도 못 찾았
다는 소문이 있었다.늙은 할머니가 국가 보조금으로 애들을 키우고 있
는 상황이었다.그러니 집구석 꼬라지가 오죽하겠는가.)

제일 큰 놈인 철진은 쌀값이라도 벌어보려고 끊임없이 먹어대는 어린
동생들의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학교가 파한 다음엔 알바를 뛰고 있
었다.그는 야구에서는 2루를 수비해야했고 생활에 있어서는 가족의 생
계를 수비해야만 했던것이다.그러다보니 야구연습에 자주 참여하지 못
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우리학교는 2루 수비를 번갈아가며 보고 있
었다. 유격수 못지않게 2루 수비는 아주 중요한 포지션이었다. 큰 게
임에서 유격수와 손발이 착착 맞아 병살타를 유도하려면 고정적으로
수비를 맡아주는 붙박이 2루수가 절실했다.

나는 근처 쌀가게로 갔다. 나도 한땐 아주 어렵게 한 가정을 이끌었던
사람이라 쌀값에 대해선 빠삭했다.20kg짜리 쌀 한가마니에 맛 좋은 상
품은 6만원,질이 좀 떨어지는 하품은 4만 5천원 정도했다.나는 가게앞
에 진열되어 있는 쌀을 일일이 씹어 보았다. 이렇게 직접 생쌀을 먹어
보고 가장 고소한 맛이 나는 쌀을 한주먹 움켜 쥐었다. 그리곤 쌀가게
아줌마한테 10년치를 바로 쑈부쳤다.

"철진네 쌀값. 10년치. 500."

주인아줌마는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가장 맛좋은 6만
원 짜리로다가 1만원 깎아서 5만원. 한달에 한가마니씩 일년이면 60만
원. 10년이면 600이었다.깔끔하게 일시불 현찰로 500에 쑈부치자는 나
의 제안을 주인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랴 까짓거. 근데 철진이 친구인가봐?"

"좋은 쌀로 안 보내면 내가 다시 와."

"걱정마라 일마야.여태 쌀 팔아가며 먹고 살고는 있어도 양심은 안 팔
았으니까"

쌀가게 주인이 장난치지 않을꺼란걸 삼락도 잘 알고 있었다.가게 여주
인 인상이 너무 좋아서 이가게로 왔다. 얼굴에 화장끼가 아닌 믿음이
묻어 있었다. 남몰래 어려운 사람 돕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무엇
보다 여기저기 대형마트가 들어서 있는데 쌀만 파는 쌀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동네사람들의 믿음과 신용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부디 철진이가 맛있는 쌀밥을 먹고 야구의 쌀인 믿음을 가지
나와 함께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삼락은 그런 줄
도 모르고 새벽같이 교실에 나와 바닥 청소를 했다. 포수한테 뒤늦게
연락을 받은 삼락은 다시 운동장으로 나가 돌을 골랐다.자신의 야구
모자를 벗어 혹시 슬라이딩을 할때 선수들이 다치기라도 할까봐 큰
돌을 골라 담아내었다. 포수도 함께 도와주었다.

팀동료들이 도착하자 삼락은 오늘의 수업내용을 지시했다. 투수가 내
야땅볼을 유도하면 내야의 수비수들이 병살타를 유도해내는 훈련이었
는데 야구에서 병살타를 유도한다는게 여간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제아무리 투수가 낮은 볼로 타자의 타구를 유인한다손 치더라도 타자
가 1루를 향해 질주하는 단몇초 동안의 짧은 시간안에 내야수들이 한
호흡으로 콤비네이션을 이루어 기민하게 움직인다는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프로야구에서 조차도 병살타 상황에서 실제로 병살을 만
들어내는 경우는 불과 10%에 불과했다. 몰랐지? 이 10%를 만들어내기
위해 선수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겨운 훈련을 반복해서 해야만
하는 것이다.더군다나 삼락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바로 훈련에 돌
입해 시스템을 만들어 놓아야만 한다.공치사나 하려고 철진을 도운건
아니지만 어느샌가 야구부원들 사이에 삼락의 선행소식이 퍼져서 분
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실력은 별로였지만 다들 뭔가 할 수 있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훈련 하나하나를 실전처럼 죽을 힘
을 다해서 성심껏 소화해 내고 있었다.

"철진이 아직인가?"

"아직.."

불펜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나온 삼락의 질문에 포수는 낙담한 표정
을 지었다.철진이 2루수로서 인정받는 이유는 기복없는 수비와 함께
성실한 모습 때문이었다. 숨쉴 시간만 생기면 어느샌가 운동장에 나
와 연습하며 짜투리 시간이라도 아껴쓰는 그를 보고 팀동료들은 짜
투리벌레라 불렀다. 그런 그를 보고 동료들도 덩달아 연습에 참여하
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렇게 그는 팀의 본보기이자 연습의 아이콘으
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웬일인지 시간이 지나도 철진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대기타던 외야수 한명이 대체해 들어왔다.

"자자 플레이..잠깐!"

어느샌가 나타난 철진이 2루수 자리로 들어갔다.그는 삼락을 향해 한
번 빙긋 웃었다.삼락을 무조건 믿고 따르겠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그
미소 주머니에 쌀과 함께 담겨져 있었다. 사람의 웃음이 햇살보다 더
빛난다고 말해야 할만큼 황홀했다.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런 행복을 느
낀다는건 야구를 하고 있기 때문일거란 생각이 드는 삼락이었다.

병살타를 유도해내기 위한 삼락의 정교한 투구가 시작되었다. 실전에
들어서면 절대 안 맞을 수는 없다. 맞는 대신 잘 맞으면 된다.땅볼을
유도해 더블플레이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병살 훈련이 시작되었는데
감독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차라리 잘됐지 뭐.괜히 또 와서 전혀 도움 안 되는 뻘짓거리 하느니
집에서 잠이나 주무시라 그래. 이익.슈욱..)

삼락은 힘차게 볼을 던졌다.볼은 전보다 더 휠씬 빠르고 정확하게 들
어갔다.퍽! 타자가 있는 힘껏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볼과는 엄청난 이
격이 나 있었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훈련으로써의 의미가 퇴색될
정도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포수 등뒤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에
서 연기가 뽀락뽀락 피어났다. 삼락은 느낌상 똘아이 감독의 특수효
과일거란 생각이 들었다.아니나 다를까 감독은 3명을 데리고 삼락 앞
에 나타났다.

"후우, 내가 이럴줄 알았다니까. 야 짱돌, 니가가서 한번 쳐봐라."

"예, 형님."

나무 뒤에서 나타난 감독이 체구가 당당한 짱돌이라는 사람을 타석에
들여보냈다.하여튼 엉뚱하긴.아무 소개도 없이 나타난 그는 프로들이
쓰는 질좋은 배트를 붕붕 휘두르며 자신감을 내보였다.고딩이 던지는
볼쯤이야,하는 표정이었다. 포수가 삼락에게 뛰어와 귓속말을 전했다.

"저사람 퓨처스리그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거포야.오호세라고 내
년에 프로리그에서 1지명으로 데려갈 사람이래."

"근데 여길 왜?"

포수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다시 속삭였다.

"우리 감독이 보기엔 저래보여도 야구쪽에선 마당발이야.왕년엔.."

"야! 경기 안 뛸껴?"

감독이 채근하기 시작했다. 맨날 빈둥거리던 감독도 삼락과 퓨쳐스리
그 최고의 유망주와의 한판승부는 몹시도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올 플레이.."

삼락은 일단 호세의 스윙메카니즘을 알아보기 위해 초구를 직구로 던
졌다.슈욱..팡!
거포라면 주로 직구 위주의 공을 쳐내어 장타나 홈런을 노리는게 일
반적인데 호세는 직구를 그냥 흘려보냈다.

(와 이거 뭐냐 지금. 포심이었던거 같긴한데..언더가 던지는 볼 속도
가 맞나. 뭐가 이런 볼이 다 있냐.)

호세는 감격할 시간조차도 없었다. 고삐리들 앞에서 개망신 당하지 않
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했다. 왼손 언더의 공을 처음 보았을 뿐만아
니라 속도가 워낙 빨라 볼의 구질을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삼락은 다시 포심그립을 잡고 포수를 향해 힘껏 볼을 던졌다.슝..

보통 타자가 배트를 휘둘러 볼을 맞추기까지는 0.15초가 소요된다. 이
짧은 시간 안에 타자는 온갖 기술을 이용해 투수의 볼을 공략하는 것
이다. 차세대 거포 오호세는 배트 스피드에 있어서 만큼은 국내 최고
였다. 그 어떤 빠르기를 가진 강속구라도 쳐낼 자신이 있었다.

(그래 나 오호세야. 어디 한번 붙어보자고 이 애송이 고딩녀석아!)

휙. 삼락의 포심 패스트볼은 엄청난 속도로 파고 들었다. 언더핸드 임
에도 불구하고 백스핀이 걸려서 들어오는 포심직구는 공기와의 마찰
때문에 진동하며 좌우로 흔들렸다. 그 바람에 볼이 두개 세개로 보일
정도였다.호세는 처음 감독의 입을 통해서 삼락의 얘길 들었을때 그져
허풍인 줄만 알았다. 하도 뻥을 쳐대는 바람에 지그시 한번 밟아주려
고 왔는데 실제로 경험해 보니 이건 감독의 말보다 더 엄청난 공이었
다. 밟아주려고 왔다가 쪽팔리게 고딩의 공에 밟혀죽을 판이었다.

삼락의 손을 떠난 공은 세개로 흩어져 호세를 향해 돌진했다. 호세는
침착하게 가운데 공을 노려 배트를 휘둘렀다.그가 휘두른 방망이는 햇
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였다. 부우웅.


불펜:구원투수가 경기에 나가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는 곳으로써
주로 야구에서 시합 중에 구원투수가 경기에 나가기 전에
경기장 한쪽에서 준비운동을 하는 곳.

콤비네이션: 협동플레이를 하는 수비수 사이에 서로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는가의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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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시는 분을 오랜만에 뵙네요... ^^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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