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64희대의 사기꾼

in #kr6 years ago

"계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단 보고서가 나왔답니다."
"뭐라고?"
과장의 말인즉슨 회사의 빚이 자산보다 많아 이젠 전혀 가망이 없다는 것이
었다. 말이 안 되는 내용이었다.동화건설이 가진 자산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국내외를 비롯해 세계각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공사, 그리고 건물과 땅을 합
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온다. 대충 계산해도 100조가 넘는 금액이었다.
반면 지금 동화건설이 가진 채무는 자회사중 하나인 뿌라임건설에 300억짜
리채무보증을 선것과 회사채 2000억원이 전부였다. 김과장 말대로 라면 빚
은 수백배 늘어나고 자산가치는 수백배 줄어들었단 말인데 세상천지에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말이다.에이 설마 그랬겠어? 진짜야 븅아.
"그 동안 삼월회계법인이 맡아 실사를 해왔고 바로 어제 법원에 보고서가 정
식 제출되었답니다!"
매정권마다 빌붙어먹기로 유명한 삼월회계법인. 그들이 뭔가 큰일을 꾸미고
있는게 분명했다.하청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소름끼치는 공포
에 의해 하청은 자제력을 잃었다.
"그게 말이 되? 씹쌔끼들이 임시실사를 갑자기 왜 하냐고?"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동화건설 자회사의 채무보증 건으로 채권단에서 먼저
테클을 걸어왔었다. 고작 300억 밖에 안되었지만 불량채권이라는 이유만으
로 법원중재를 요청한 채권단에의해 회계심사를 받았고 어느새 빚은 수천억
으로 늘어 있었다.법원이 어떻게해서 300억원의 빚을 수천억으로 부풀려놓
는 기적을 이뤄냈는지는 몰라도 그빚은 보증을 선 동화건설이 고스란히 떠
안게 되었다. 가뜩이나 경제사정이 안 좋은 터라 갑자기 생긴 부채는 회사의
재무상황을 악화시켰고 그 빚은 빛의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밀가
루에 이스트를 뿌린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부풀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
말 웃기는건 법원이 그걸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사채보다 훨씬 더 살인적인
채권단의 이자율을 인정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좆됐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밀가루는 반죽되고 이스트는 끊임없이 뿌려졌다. 상
황이 이쯤되자 하청은 손놓고 그냥 보고만 있을 수 만은 없었다.아버지가 평
생을 통해 일궈놓은 기업이 눈앞에서 통째로 날아갈 판이었다. 하청은 법원
의 중재를 통해 빚쟁이 채권단들과 미리 쑈부를 쳐 놓았었다.더 이상의 이자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원금과 이자를 동결하고 유예기간을 주면 남은빚
과 이자를 모두 갚겠다는 협약서 같은 것이었다. 결국 하정의 제안은 받아들
여졌고 상호협약은 이뤄졌다. 그게 바로 6개월전 일이었다.그런데 느닷없이
임시실사라니.. 빚을 모두 갚으라니..그것도 지금 당장.장난까?
임시실사를 해 본 결과 자산보다 빚이 월등히 많아 채권단이 즉시 채무 회수
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채권단은 전보다 더 큰 이자가 붙은 금액을 요구하고
나섰다.이정도면 칼들고 하는 강도짓이나 마찬가지였다.그런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애초에 채권단쪽에서는 이번 임시실사를 요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었다. 그럼 누군지 뻔하네.
"이번 임시실사는 채권단 애들이 한게 아니랍니다."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법원에서 임의적으로 실시한 것이랍니다."
죽었구나..이제 죽을 일만 남았구나 싶었다. 돈받을 빚쟁이들도 가만히 있는
데 법원이 나설이유가 전혀 없었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게 아니라면. 파산
법원은 빚을 수십배 수천배를 늘려준 것도 모자라 아예 회사를 뽀게어 누군
가의 아가리에 넣어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정권에 의해 아주 조직
적으로 동화건설이 타겟이 된 것일터,수차례의 회계조작과 채권추심에 의해
동화건설은 공중분해될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공군이니?
"아놔 이새끼들 정말."
어서 손을 쓰지 않으면 정말로 큰일터지지 싶었다.재계 10위권안에 드는 동
화건설그룹.만약 그룹이 해체된다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파급효과가 생길 것
이다.이정도 회사를 먹으려드는 놈들이 과연누굴까.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실세 중의 실세.입법과 사법,행정을 아우르는 최상위
계급. 현존하는 정치생태계의 최상위포식자. 대한민국 1인자의 위치에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잽싸게 레이다를 돌려 야당 정치인들과 의논을 해야했다. 현정권 실세들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바로 야당 정치인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정권이 바뀔때 마다 서로의 약점을 물어뜯어가며 여론을 등에 업고
상대를 쳐내어 이익을 얻는 존재들이다.마치 뱀 두마리가 서로의 꼬리를 물
고 뜯어 먹고 먹히는 역겨운 모양세를 만들고 있다.이런걸 두고 '뫼비우스의
띠'라나 뭐라나. 그냥 쓰레기야.
그래도 이것들, 월급은 제깍제깍 나온다. 상대방을 향한 무한 헐뜯기.국민을
향한 무한 착취..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임기 끝나면
수고하셨다고 연금까지 받아가신다. 죽을때까지.정말 족같네.
어쩌면 야당 정치인들에게서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청은 마음이급했다. 핸드폰 속의 주소록을 검색하고
있는 데 김 과장은 뭔가 더 할말이 남아 있는지 입을 씰룩거렸다.
"할말이 남았어?"
"더 큰 일이 있습니다."
"또 뭐가!"
"지난번 채권단 회의에서 가결되었던 채권연장 신청허가가 법원에 의해 오
늘 기각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그렇게 어제 오늘 사이에 판결이 착착 떨어지며 일사천리로 동화건설
죽이기에 힘들을 쓰시는지 하청은 기가 막혔다.사법부와 정치인들이 붙어먹
는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겠냐만은 막상 당하고 나니 분하고 억울했다. 억울
하면 출세해.
(진정 대한민국은 쓰레기인가?모두 다 불태워서 고작 난방용 에너지로밖에
쓸수 없는 구제불능의 쓰레기들 뿐인가..대한민국이란 나라는..헬조선은..)
허탈했다.외롭고 쓸쓸했다.법원에서는 뭐라고 죄명을 가져다 붙였는지 알고
싶었다.어떤 웃기지도 않는코미디로 사람을 배꼽잡고 웃다가 죽게 하려는지
알고 싶었다.모르는게 약일텐데.
"내가 어이가 없어서.법원에서 채권연장을 기각한 이유가 뭐라디?"
"경영정상화에는 힘 안쓰고 보물선만 따라다닌다고.."
하청은 체념하고 말았다. 말같은 소릴해야지.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를 갖다
붙이곤 지들 맘대로 판결 때리고 이게 말이 되는가.
"그게 뭐 어떻다고? 주식회사가 돈벌려고 하는게 잘못된건가? 그리고 정부
에서 정식 허가를 내준건데?"
"법원에서 괴씸죄를 물었답니다."
"개놈의 새끼들."
과장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젠 파산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파산이란 말에 하청의 고개가 말없이 숙여졌다. 늘어진 그의 어깨가 미세하
게 들썩이고 있었다.
잠시후 곽회계사가 하청의 전화를 받고있었다.목소리가 한껏 격앙되어진 하
청이 잡아먹을듯 곽에게 덤벼 들었다.늦었어.
"너 왜그랬어? 위에서 누가 시키디?"
곽의 눈엔 뻔한걸 가지고 물어오는 하청이 우스워보였다. 진정 몰라서 묻는
건 아닐테고 그냥 간보는 것같아 무시하기로 했다.쌩까냐.
"동화건설 껀은 규정대로 했을 뿐 난 전혀모르는 일이에요."
간결하고 사무적이고. 곽의 말투가 그랬다. 곽은 이미 양심의 지옥에서 벗어
나 있었다. 심대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반면 감정의 기어를 잃은 하
청은 생각의 지옥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높아져 이새끼야.기업회계가
무슨 애들 장난이야?너 초딩이냐? 새끼야 똑바로 말해.안 그러면 니네 아들
놈 잡아다가 심장을 떼어 먹어버릴테니까."
"맘대로 하십시오."
"너 이새끼 지금 니가 무슨짓을 하고 있는 줄이나 알아? 너 때문에 여러사람
죽는다고 이 병신새끼야!"
곽회계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에겐 심대표가 심어준 명분이 있었
다.바로 아들. 아들의 소중한 목숨을 살리고자하는 부모의 희생.그 숭고함이
몰핀처럼 상대의 고통에 대해 무디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실사단이 보고한 자료 검토 후에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뿐입니다."
"실사단 좋아하네. 나한테 온적도 없어 그새끼들. 너 정말 왜 이래?"
"쟤가 뭘 어쨌다고 자꾸 이러시는 겁니까?"
"우리 식구만 2만이야. 협력업체까지 합치면10만이 넘어."
"그런데요?"
"이 사람들 전부 길거리에 나앉게 할거냐?굶어죽게 할거냐고!"
"전화 이만 끊겠습니다."
"야 이새꺄!"
회계사는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그가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마치 약속이
라도 한듯 여러 대의 전화가 한꺼번에 울려댔다. 동화건설 임직원 및 협력업
체, 소액주주들에게서 걸려오는 항의 전화였다. 그는 느긋하고 매우 평온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일일이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동화건설의 빚이 자산보다 훨씬 많다는 내용을..
계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높다는 것을..
세상은 힘센자들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개같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을..
힘없으면 나가 뒈지라는 것을..
대한민국은 니들 생각보다 훨씬 더 좆같다는 것을..
하청은 자신이 가지고있는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여 동화그룹을 살리려 애썼
다.이리저리 전화기를 돌렸다.주로 야당국회의원들이었다.
"아들이 군대가니까 다음에 만나자고..
이번에 딸이 출산했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몰랐어? 나 미국으로 이민왔어.."
다들 한결 같이 피했다.
(정치자금 낼름낼름 받아 쳐먹을땐 허리가 부러져라 굽신거리던 놈들이 정
작 도움이 필요할땐 나 몰라라 하다니. 씨팔 어떻게 8살짜리 딸년이 애를 낳
냐고. 42살짜리 아들이 군대를 간다고? 니네 아빠는 또 죽냐?벌써 3 번째다
.대체 목숨이 몇개냐 씹새야.)


양부장판사 사무실에선 하청이 사무장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이번 임시
실사를 관장하고 있는 실직적 책임자인 양 성대 판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무장이 앞을 가로 막았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가세요 얼른."
직원들이 모두 나서서 하청을 저지하고 있었다.
"때려죽여도 오늘 양판사 만나야 한다니까!"
"때려죽여도 오늘 안 계시다니까!"
사무장이 완강하게 앞을 막아서자 하청이 버럭했다.
"안에 있는거 다 알고 왔다니까!"
"근데 이 사람이 정말. 판사님 지금 안 계시다니까.말이 안 통하는군.뭐해 어
서 끌어내지않고!"
직원들에 의해 끌려 나가는 하청이 양 판사의 방을 향해 애걸했다.
"동화건설 이대로 죽이시면 안 돼요. 제발 채권연장 좀 하게 해주세요! 정령
벌하시겠다면 제가 다 뒤집어 쓸게요. 파산은 절대 안된다구요!"
양판사가 앉아 있는 사무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답없는 절규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양판사님 차라리 저를 죽이세요. 날 죽이라구!"
직원들을 향해 성난 사무장이 강하게 질책했다.
"어서 끌어내!"
"양성대,야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은 개색꺄!"
육두문자가 양판사의 고귀한 품위를 더럽혔다.사무장이 가만있을리 없었다.
그는 하청의 따귀를 인정사정없이 후려갈겼다.철썩철썩.아야 파도 타냐?
"말조심해 새꺄.대한민국 부장판사님이셔."
"부장판사가 아니라 후장판사겠지.뒷구멍으로 돈이나 받아 쳐먹는 주제에."
사무장이 이번엔 하청의 얼굴을 주먹으로 몇차례 후려갈겼다.
"퍽..퍽.."
실신상태로 문밖까지 질질 끌려 나간 하청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자 문사
이로 좁은 빈틈이 보였다. 하청이 그 틈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통곡했다.
"동화건설은 청산가치보단 계속가치가 훨씬 높아. 넌 사기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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