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로마노비치 치카틸로 ( Andrei Romanovich Chikatilo)

in #kr6 years ago


안드레이 로마노비치 치카틸로(러시아어: Андрей Романович Чикати́ло, 1936년 10월 16일 - 1994년 2월 14일)

이 괴물은 워낙 악명 높은 러시아의 연쇄살인마였다 (저 웃는 얼굴에서 악마가 보인다. ㅎㄷㄷ 나만 그런가..)

  1. 악마의 유년시절.

    치카틸로는 1936년 10월 16일 우크라이나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섯살때 그의 어머니는 치카틸로에게 7년 전 그의 형이 사라졌다 말했고 가족들은 그가 유괴되어 이웃에 먹혔다고 믿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그가 자주 그의 형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까를 상상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몇 년 후에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치카틸로의 아버지 로만은 군대에 징집되어 갔는데, 독일군에 잡히게 되어

전쟁이 끝난 후 그가 항복했다는 이유로 스탈린체제에 반역자로 낙인 찍힐 것이 두려워 돌아가지 않다가

치카틸로가 10살이 되던 해에 돌아갔다.

10살 밖에 되지 않던 치카틸로는 벌써 독실한 공산주의자가 되어 공공연하게 그의 아버지의 '배신'을 비판했다.

치카틸로는 어릴 때부터 친구와 노는 것보단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학구적인 아이였다.

그의 조용한 성격과 나약한 품행때문에 치카틸로는 친구가 없었고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다.

그는 극도의 근시안이었으나 안경으로 인해 아이들의 놀림이 훨씬 짖궂어지는 것이 싫어 안경을 쓰지 않을 정도였으며,

거의 20살이 될 때까지 야뇨증으로 인해 더더욱 소심해져갔다.

그런 그가 18세가 되어 대학에 응시했으나 떨어지고 몇번의 발기 실패로 그는 자신이 발기불능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점점 자위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언젠가 훗날 그는 군대에 있는 동안 그가 그의 구애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여자와의 성관계를 시도했으나,

여자의 거부로 그녀와 몸싸움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녀와 화해하기 위해 그는 그녀를 껴안고 나서

그는 그의 바지 안쪽에 사정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주의하게 그는 공포와 폭력이 성적행위자체보다 그를 더 흥분시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만 것이다.


그런 그가 1963년 여동생의 친구과 결혼에 골인하고 그는 곧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즈음 그의 약한 시력은 거의 실명상태였고 허약한 체질과 맞물려 빚어낸 그의 콤플렉스로 인한

강박관념은 곧 성기능에 장애까지 초래하여 정상적인 가정생활은 힘들었고 ,

군에서 제대한 후 대학에서 교사자격증을 딴 그는 광산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그를 마르고 흉하게 생겼다며 '거위'라고 놀려댔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교직에서 물러났다.)

  1. 악마의 첫 살인.

글쎄, 그의 인생이 안쓰럽다고 표현해도 될까?

불행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치카틸로는 대표적인 인물 중에 뽑히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아무튼 그런 불행들로 인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타고나기를 악하게 타고나 지속적으로 인내하며 살다가

그의 자아가 눈을 뜬 것인지 그것은 모를 일이지만

마흔 둘이 되던 해, 그는 그때까지 억누르고 있던 내면의 폭력성을 여과없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의 첫 살인은 아홉 살의 레나 자코트노바였다.

그 후 그는 밤마다 거리로 나가 지나가는 소녀들과 여성들을 꾀어 잔인하게 유린하고 살해했다.

(위 사진은 레나 자코트노바의 사진은 아니다. 그에게 희생된 사람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레나 자코트노바는 학교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고가이동활차를 이용하던 중 치카틸로를 만났다.

소녀는 그를 처음 본 것은 아니어서 소녀의 친구에게 '좋은 아저씨'에게서 '수입 츄잉껌'을 얻었다고 자랑하기도 했었다.

아마 그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9살 난 소녀가 치카틸로를 따라 '비밀의 집'으로 가게된 이유가 아닐까.

비밀의 집은 고가이동활차 주차장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통나무집이었다.

(치카틸로 소유의 집)

치카틸로는 자신을 '좋은 아저씨'라고 믿고 따라온 소녀의 옷을 벗겼다.

소리를 지르는 소녀를 마룻바닥에 밀치고 그의 팔뚝으로 목을 누르고 소녀의 몸 위에 올라탔다.

소녀의 눈이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자 그는 스카프로 소녀의 눈을 가린 채, 소녀를 강간하려했다.

근데, 치카틸로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성기능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었다.

발기가 되지않자 그는 소녀의 외음부를 그의 손가락으로 자극하며 이런 공격이 자신이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오르가즘을 가져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항상 억눌리고 놀림받고 소심한 그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눈으로 꿈틀대는 소녀의 부질없는 저항은

그의 악마성을 잠깨우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충분한 쾌락을 느낀 치카틸로는 일순 두려움이 생겼다. 소녀가 돌아가 그의 잔인하고 비열한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할 것이 두려워졌을 것이다. 그는, 그만큼 소심한 인간이었으니까.

그는 준비했던 칼을 꺼내 아직 자신의 아래에서 살려달라 애원하고 있는 소녀의 머리를 그윽하게 쓰다듬었고,

이내 소녀의 위장을 세번 찔렀다. 소녀는 즉사한 것인 양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소녀가 죽었다고 생각한 치카틸로는 소녀와 소녀의 소지품을 가지고 황급하게 통나무집을 떠났다.

하지만 이 소심한 남자는 두가지를 챙기지 못했다.

바로 바닥에 낭자한 소녀의 피와 그가 켠 불이었다.

치카틸로는 소녀를 얼어붙은 강의 얼음을 깨고 시체를 그곳에 버렸고 시체가 물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는 것을 관찰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치카틸로는 소녀가 여전히 살아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음 날, 소녀의 시체는 익사체로 떠오르게 되었고 경찰은 고가이동활차에서 그 둘을 목격한 여인의 증언을 토대로

크라브첸코를 체포하였다. 크라브첸코는 1970년 17세의 소녀를 강간하고 살인한 죄로 10년을 복역한 그 지방사람이었는데,

그는 여인의 증언에 걸맞는 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여인이 증언할 때 강조한 '안경'을 쓰지 않았음에도

경찰은 일단 크라브첸코를 용의선상에 올렸고 그를 심문했다.

그를 심문하는 동안에도 용의자의 스케치는 도시 전체에 뿌려졌고

그 지방 광업 학교의 교장은 그 스케치가 안드레이 치카틸로를 닮았다.는 증언으로

경찰은 치카틸로를 심문하기 위해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실로 그 통나무집에선 피가 낭자했고 그 통나무집은 치카틸로의 소유였다.)

그의 아내가 그날 저녁 내내 그와 함께 집에 있었다고 확신했기에 증거 불충분으로 그는 곧 풀려나게 되었다.


(당시 치카틸로의 몽타주1.)


(당시 치카틸로의 몽타주 2.)

  1. 피에 대한 갈망.

라리사는 치카틸로가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다른 소녀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17살인 원래의 나이보다 나이들어보이고 성경험도 있었으며, 젊은 군인과 데이트하는 것에 익숙했고,

식사와 음료수만 제공받는 성교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는 치카틸로에겐 상당히 물기 쉬운 범행대상이었의라.

치카틸로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주저없이 그를 따랐다.

첫번째 살인의 경험으로 그는 한층 더 발전되어있었으므로 그녀를 자신의 소유지인 통나무집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삼림지역 안에 있는 황량한 지역으로 데리고 갔으며 자신을 자제할 수 없게 되자 그녀의 옷을 잡아뜯기 시작했다.

라리사는 화가 났고 그를 막아내려 애썼지만 치카틸로는 라리사에게 주먹을 날리고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가 살기위한 발악으로 비명을 지르고 반항하자 치카틸로는 그녀의 입속에 쓰레기를 쳐 넣고 재빠르게 목을 졸라 죽였다.

그는 죽어버린 그녀의 젖꼭지 중 하나를 물어뜯고 시체 위에 사정했다.

그는 이 일에 대해서 나중에 경찰에게 진술하기를 "너무 행복해서 춤을 췄다"고 말했다.

모든 행위가 끝이 나고 그는 시체를 가지와 나뭇잎으로 덮고 옷가지를 숨겼다.

그리고 다음 날, 한 소녀의 시체가 비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그 후 치카틸로는 살인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

첫번째 살인이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를 주며 좌절과 혼돈을 그에게 주었다면,

두번째 살인은 그에게 또 다른 미지의 세계와 만족과 쾌락을 선물했다.

그는 한 버스정류장에서 13살의 류바라는 소녀를 따라가 강간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칼로 반복해서 소녀를 찔러 죽였다. 당시는 따뜻한 여름이었기 때문에 소녀의 시체는 2주 후 거의 해골이 되어 발견된다.

그 다음 해 동안 치카틸로는 여섯 번의 살인을 더 했다.

그는 가끔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잘라 가지고 돌아와 식구들에게 소고기라고 속여 요리를 하게 해서 먹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 피를 마시기도 했으며 시체를 훼손해 장기를 끄집어내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그는 반 미치광이였고, 충동적인 살인이 아닌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악마같은 살인마였다.

  1. 수사 그리고 감금

1983년 9월까지 희생자의 전체 숫자가 14명에 이르게 될 때까지 러시아 경찰은 '연쇄살인자'라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다.

이유인즉 연쇄살인이라는 것은 극히 서구적인 현상이고 러시아 문화에서는 불가능한 현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살인이 로스토브지역에 집중되는 것을 파악한 경찰은 '숲속의 나체 살인사건'으로 이미 소문이 파다한 사건을 위한 팀을 꾸렸다.

몇 주 후, 두 명의 경찰관이 버스 정거장을 순찰하다가 또 다시 늦은 오후에 치카틸로를 보았다.

치카틸로는 벌써 같은 경찰에게 늦은 시간 버스 정거장을 어슬렁 거리는 모습을 세번이나 목격된 바 있었고,

그 경찰관은 그를 의심하고 있던 차였다.

그들은 치카틸로의 곁에 앉아서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를 지켜보다 치카틸로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를 따랐고

몇 시간동안 치카틸로는 그 지역의 버스 정류장 주위만을 맴돌고 있었는데,

그는 다양한 연령층의 여자에게 접근하고 그녀들에게 집적거리며 계속해서 거절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치카틸로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여자들에게 집적거렸다.

그러던 중 치카틸로가 어느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 소녀와 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소녀가 술에 취했을 즈음 그는 소녀의 블라우스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녀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녀는 그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치카틸로가 홍조를 띤 채 뭔가를 말하자 소녀는 화가 난 듯 일어나

그에게 거칠게 욕설을 내 뱉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들은 곧 헤어졌다.

경찰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에게 다다가 그의 신분증을 요청했다.

반항할 것을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치카틸로는 그들이 자신을 오랜시간 미행한 것을 알았고 곧 체포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경찰이 자신의 가방을 보자고 했을 때는 적잖게 당황해했다.

그의 가방 안에는 밧줄과 바셀린 그리고 길쭉한 칼 한 세트가 있었다.

러시아의 시민은 정상적인 환경에서 경찰서에 73시간 이상 조사를 받을 수 없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치카틸로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경우였다. 그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서라도 그의 배경을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죄목은 '공공장소에서 여자들을 괴롭힌 죄'였다. 하지만 이 사소한 죄목은 그를 15일이나 감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치카틸로는 다시 한번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된다.

경찰은 정말 큰 실수를 하게 되는데 이 실수로 인해 치카틸로에게 죽어가는 여성은 더 많아졌다.

경찰은 그의 증거물로 빼앗은 치카틸로 체포 당시의 가방을 잃어버렸다.

심증은 확실하나, 충분한 증거가 없었다. 경찰은 치카틸로가 확실한 연쇄살인자라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그를 풀어줄 수 밖에 없었다.

  1. 억누를 수 없는 금지된 쾌락

경찰에서 풀려난 뒤 치카틸로는 가족들과 함께 신년을 축하하고 난후 새로운 일을 찾았다.

한 기관차 공장에 고용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실로 오랫동안 살인을 참았다. 약 1년간 살인을 참았으니 말이다.

1985년 8월 그의 살인은 다시 재시동이 걸렸다.

모스크바에서 일이 끝낸 후 그는 로스토브로 날아가 기차에서 알게 된 18세의 지능발달이 늦은 소녀에게

보드카를 마시자며 기차 레일 가까이에 있는 나무 아래로 이동했다.

그리고 곧, 그녀는 38번이나 칼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같은 날 그는 버스 정류장에서 잘 곳이 없는 한 여성을 만났고 매춘을 거래한 후 나무가 무성한 숲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 성교를 시도했으나 발기가 되지 않자 자신을 비웃는 그녀를 죽이고 그곳을 떠났고

그것이 1985년에 마지막 살인이었다.

치카틸로는 1986년 10월 16일 그의 50번째 생일을 기점으로 더욱 잔인해져갔다.

그는 여행에서 또 한명의 소년을 살인하는데 그 현장은 정말 처참했다고 한다.

1985년 12월까지 국민군까지 동원된 철저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 약삭빠르고 비열한 살인마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1988년 4월 그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13세의 소녀가 악마의 재림을 알리는 첫 희생자가 되었다.

그 다음 해에 그는 8번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

그 중 예외적인 사건이 있었데, 그의 딸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딸이 그녀의 남편과 이혼하고 난 후, 부모와 함께 살기 시작한 후에 아파트가 비어있을 때 일어났는데

16세의 소녀를 꾀어낸 치카틸로는 그녀를 죽이고 난 후 그가 집에서 시체를 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결국 부엌칼로 그녀의 목과 다리를 잘라냈다. 그리고 그 시체 조각을 이웃사람 소유의 썰매에 묶어서

시체의 나머지와 함께 거리에 버렸다.

그 후 치카틸로는 1990년 1월까지 아홉 건의 살인을 더 하게 되는데 이때 그가 보인 기호와는 어긋나는 양상을 보였다.

그것은 치카틸로의 살인이 소녀에서 소년으로 이동하였다는 것이다.

9건의 살인에서 단 2건을 제외하곤 7세에서 16세 사이의 소년이었다.

마지막 희생자로 알려진 시체는 11월 3일 철도역 위에서 발견되었다.





(그의 손에 희생된 수많은 희생자들)

  1. 체포.

마지막 시체가 발견되고 그 지역 안의 모든 기차와 버스가 24시간 감시되었는데 희생자에게 티켓을 판 사람을 찾았다.

한 안내원이 소년의 얼굴을 기억해냈고 그 소년은 키가 크고 단정한 남자와 같이 잇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는데

이때 그는 한가지를 더 덧붙였다. 단정한 남자는 바로 '안경'을 쓰고있었다.

사람들은 다시 그의 몽타주를 만들어 심문을 시작하였고 증인이 생겨났다.

그곳에서 얻은 심문을 토대로 결과를 유추해보면 그는 규칙적인 기차 여행자이며 어린아이들에게 추근대는

소아성애자의 성향을 가진 키카 크고 용모단정한 안경을 쓴 남자였다.

또 다시 조사망은 치카틸로를 향해있었다.

하지만 치카틸로는 자신의 살인 욕구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한번의 살인을 더 하게 되는데,

22세의 여인을 유혹하는데 성공한 그는 그녀를 칼로 찌르고 절단하여 그녀의 혀와 양쪽의 젖꼭지를 잘라내고

시체의 일부를 먹고난 후 시체를 가지와 잎으로 가리고 그곳을 떠났다.

그가 정거장으로 돌아왔을 때 플랫폼에 서있던 경관은 그의 얼굴에서 비오는 듯한 땀에 주목했다.

그에게 다가가자 그의 귓볼과 뺨에 피가 묻어있는 것이 보였고 그의 오른 손 중 한 손가락위에 붕대를 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곧 신분증을 요청했지만 그가 한 기관차 공장안에 엔지니어라는 사실때문에 그를 보내게 되었다.

11월 20일 치카틸로는 일을 하고 있었다. 희생자에게 물린 손가락 때문에 왼손으로 일해야 했고,

엑스레이를 찍기위해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부러진 손가락에 치료를 받고 퇴근한 후 한 소년에게 말을 걸었지만

한 여인이 소년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겁을 먹고 도망갔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소년들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고 추근거렸고

주변을 감시하던 경찰관 세명에게 연행당했다. 그는 체포되면서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전체적인 여행의 목적에 대한 언급도 하지않았다

(체포되는 치카틸로)


(그에게 희생된 희생자들)

  1. 사람이 아닌 괴물.

치카틸로가 체포된 날 그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가방안엔 처음 그가 약 6년 전 체포됐을 당시와 똑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칼과 밧줄 그리고 한통의 바셀린이 들어있었다.

그 다음 날부터 경찰은 그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강간과 살인에 관련된 질문을 거절하고 있어

경찰들을 적잖게 당황시켰다.

심문이 진행된지 일주일 후 치카틸로는 러시아 경찰장관에게 편지를 썼다. 다음은 편지내용의 일부이다.

"나는 내가 저지른 성적인 악행속에서 일종의 광기와 격정을 느꼈소. 왜냐하면 나는 유년기부터 내가 나 자신을

진짜 남자로 느끼지 못했고 완벽한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오."

그리고 다음 날 치카틸로는 그의 소아성애자인 부분을 인정했고 다른 러시아 검찰장관에게 보낸 다른 편지엔 이렇게 쓰고있다.

"나의 모순된 행동이 책임을 피할 시도로 오해되지 않아야할 것이오. 심지어 내가 체포된 이후에도 나는 그 위험하고

심각한 본성을 완전히 알지는 못했다고 주장할 수 있소. 나의 케이스는 완전히 나 혼자만의 독립적인 사건이오.

이것은 나를 이렇게 행동하게 한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오. 단지 내 안의 정신적이고 불안한 긴장감 때문이오.

나는 모든 범죄에 대한 고백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제발 그 연쇄살인의 세부적인 것들로 나를 구문하지 마시오.

내 영혼은 그런 것들을 견디지 못하오. 조사에서 어떤 것도 숨길 마음은 없소.

내가 했던 모든 행위들은 아직도 나를 모서리치게 만들고 있소. 나는 이제 나를 잡아준 것에 감사할 뿐이오."

치카틸로는 12월 5일가지 34에서 36명의 희생자들을 어떻게 유인하고 강간하고 잔인하게 살해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때때로 시체를 토막내 먹거나 그드르이 피를 마셨다고 고백했다.

그가 설명한 모든 희생자는 52명이었고 거의 어린아이들이었다.



(심문을 받고 자백을 하는 치카틸로)

그의 자백이 있고 한달 후, 치카틀로는 그가 살인했던 현장으로 이송되어 현장검증을 받았다. 모든 사건에서 그는 시체를 버린 장소뿐만 아니라 잘짜와 시간조차도 불가사의할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그는 자신의 공격방법을 인형을 이용해서 보여줬고,

형사들에게 어떻게 피를 뒤집어쓰지 않고 살해했는지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런식으로 여행을 하는 동안 치카틀로는 1984년 죽었던 20살의 라트비안 소녀를 기억해냈다.

결과적으로 그가 죽인 희생자는 53명이었다.

이 숫자는 기록된 바로는 가장 많은 수의 연쇄살인기록이다.

(현장검증1.)

(현장검증2.)

  1. 괴물의 최후

1992년 4월 14일 재판이 시작됨과 동시에 무장경찰에 둘러싸인 채 법정안으로 인되되고 나서 특별히 디자인된 우리안에 가둬졌다.

이런 추가 보호조치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판가 기소 목목을 소리내어 읽는 것으로 재판은 시작되었는데 이 과정만 이틀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재판관은 전체 재판 과정에서 언론의 보도를 허락하는 전례를 남겼는데 이는 러시아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라고 한다.

4월 16일 재판관은 치카틸로에게 발언권을 주었는데 그의 발언은 장황하고 광적인 독백이었으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광기를 과장하는 것으로 느끼게끔 했다고 하며,

재판이 진행될수록 치카틀로는 난폭해져 우리안에서 쥐들과 빛의 세기에 대해 큰소리로 불평했고

심지어는 자신의 옷을 벗어던지고 소리지르는 군중들에게 자신의 성기를 흔들어대며 소리치기도 했다.

"이 쓸모없는 것을 보시오. 내가 이것으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소?"

계속적인 치카틸로의 방해에도 재판은 계속되었고 7월 중순에야 재판은 끝이났다.

(치카틸로는 재판중 판사의 여비서가 판사를 유혹했기 대문에 면직될 것이라는 둥, 자신의 임신중이며

경찰관이 그의 배를 때려서 아기를 해치려고 했다는 말도 안되는 말로 탄원을 하기도 했다고..)

10월 14일 재판이 다시 열릴 때 방청석이 꽉 찰 정도였다고 한다. 치카틸로의 우리는 그 많은 군중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군중들의 야유에 치카틸로는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판사는 평결을 읽기 시작했으나 치카틸로는 끊없이 방해하고 끼어들어 결국 재판장에서 퇴장당했다.

(하지만 자신의 형량을 듣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고한다.)

1992년 10월 15일 안드레이 치카틸로는 52명의 살인에 대해서 유죄인 것이 인정되어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사형선고가 내려지자 치카틸로는 돌아서서 "협박이다! 나는 당신의 거짓말을 들을 생각이 없소!"라고 소리쳤고

강제로 끌려나갔다고 한다.

6개월 후 1994년 2월 14일 러시아의 한니발 렉터로 불리워진 안드레이 치카틸로는 사형을 당했다.

그가 저지른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벌로 그는 눈을 감았다.

그의 목에는 단 한 발의 총알만이 관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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