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도착하고서 4일

in #kr7 years ago (edited)

한국에 도착하고 4일이 지났다. 아직도 시차적응이 되지 않는다. 한국 낮시간은 프라하에서 한창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다. 가뜩이나 내가 올빼미족이라서 밤 늦게 잠 자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심하다. 평소에 프라하 시간으로 새벽 2~3시에 잤으니 한국으로 따지면 오전 10시 11시에 자는 셈이다. 그말은 즉슨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야 할 때 졸려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종일 머리가 띵하고 말 수가 줄어들었다. 시차를 다시 되돌려 놓고자 낮에는 최대한 안자고 버틴다. 그래서 밤 9시쯤 잠들고 새벽에 깨는 생활이 벌써 4일째다. 조금씩 신체리듬이 돌아오고 있음을 느끼지만 내 생활을 찾으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교환학생 5개월 동안 쌓인 생활의 증거가 수면 패턴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쨌건, 일단 한국에 오니 여러모로 좋다. 가장 좋은 점은 화장실과 잘 터지는 휴대폰이다. 유럽에서는 화장실 사용이 참 마땅하지 않다. 화장실이 유료라는 점도 불편하지만 무엇보다도 화장실이 잘 없다. 화장실은 심리적인 문제와 연관된다. 급할 때 주변에서 쉽게 화장실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안심이 된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급해도 적당한 지하철 역사나 그럴듯한 공공건물로 뛰어 들어가면 어렵지 않게 화장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항상 긴장이 되었다. 정작 화장실 때문에 크게 곤혹을 치른적은 없었다만, 언제 어디서 갑자기 복통이 찾아올 지 모르는 불안감이 엄습하곤 했다.

휴대폰도 마찬가지이다. 약속을 하여 친구와 연락을 하거나 특정한 곳을 찾아갈 때 휴대폰의 역할은 상당하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이것이 툭하면 신호가 나가버리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특히나 타국의 생소한 골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적잖이 당황스럽다. 실내나 지하철, 또는 폐쇄된 장소에서는 기대도 안한다. 당연히 신호가 안잡힐 것을 각오하고 들어가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지하철에서도 LTE가 문제없이 잘 터지니 놀라울 따름이다. 갑자기 데이터가 잡히지 않아서 휴대폰을 하늘 위로 쳐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장소를 찾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를 필요도 없다.

소매치기 걱정도 없다. 소매치기를 당한 적이 한 번도 없긴 하지만, 주변에서 워낙 그런 사례들을 많이 들어서 항상 긴장하고 다녔다. 외투 주머니에는 일절 소지품을 넣지 않았고, 지갑이나 휴대폰 같은 중요 물품들은 손이 쉽게 닿는 곳보다 가방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돌아오는 마지막날 까지도 내 짐을 바리바리 들고선 쉽사리 어디 가질 못했다. 잠깐 정신 팔린 사이 가방 하나가 사라지는 낭패감을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들이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약 20년 간의 경험에 빗대어 보면 말이다. 카페에 가방을 두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외투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고 북적이는 대중교통을 타도, 혹여나 내 가방의 지퍼가 열려 있었더라도 내 물건이 사라지는 경우는 없었다.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대부분이 '심리적 안정감'과 직결된다. 내가 편하게 있던 곳, 원래 생활하던 방식으로 돌아왔음을 느낀다. 위에서 언급한 불편함들도 이제 충분히 적응되었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공부나 일, 돈 모든 것을 제쳐두고 삶의 기반이 되는 일상에서 안심을 찾는다는 것은 대단한 반가움이다. 무의식적으로 행하던 행동들에 더 이상 긴장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뼛 속부터 한국인'인가보다. 외국에서 일하며 노마딕한 삶을 살겠다는 나의 다짐이 스쳐 지나가지만, 자조 섞인 비난은 잠시 거둬들이고자 한다. 오랜만에 느끼는 생활에 대한 반가움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돌아온 시기도 설날이고 가족들 품에서 일주일가량 재충전 하는 행복감에 스스로 초 치고 싶진 않다. 좋은 순간은 좋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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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집에 돌아오니 모든게 제자리를 찾는 기분일것 같아요~ 포근하고 안정감있고 ㅎㅎ
전 시차 적응이 안될때는 엄청난 독주를 먹고 쓰러져 잔답니다 ㅎㅎ 하루만에 시차적응 완료에요 ㅋ

전 좀 시차적응이 오래걸리네요...ㅠ
밤에는 술 낮에는 커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ㅋㅋ

좋은 순간은 좋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고자 한다.

언제 또 떠나게 될지 모르니 현재를 충실히 누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네네 ㅎㅎ 당분간은 미래 걱정 잠시 접어두고 이 순간을 즐기려고 합니다 :)

귀국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일주일간 재충전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ㅎㅎ
한국음식 마음껏 먹고 재충전 해야겠습니다 :)

월컴백!!
한창 시차적응 중이시겠군요
유럽 여행 아주 오래 전에 갔지만 화장실이 유료인 게 저도 묘한 압박감이 들었습니다
화장실에 그렇게 자주 가는 타입이 아닌데도 신경 쓰이더라고요 ㅎㅎ

딱 그 느낌이요!!
괜히 50센트짜리 동전 항상 소지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요 ㅎㅎ
묘하게 찜찜하죠...ㅜ

저 화장실에 자주 가는 타입 진짜 아닌데 유럽에서 한두번 화장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나서부터는 화장실있는 장소에서는 무조건 화장실을 이용하는 화장실 강박증이 생겼어요.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니깐 화장실이 있는 장소에서 알아서 이뇨작용을 촉진시켰나봐요~ ^^

이뇨작용 촉진 ㅋㅋ 생각해보면 지하철 화장실도 우리나라가 더 관리 잘 되는 것 같은데 왜 돈을 받는건지 궁금해져요 ㅎㅎ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1유로 쓰고 이용하던 그 더러운 화장실... 끔찍합니다. 작은 볼일이라서 다행이었지요.

이래서 신토불이라고 하나 봅니다. ㅎㅎ

그러게요 ㅋㅋㅋ
유럽에서도 빵 먹고도 잘 지내긴 했는데,
뜨뜻한 국물만한 게 없더라구요..!

봉주흐!!!시간이 가면 나아질 겁니다
교환학생 5개월 힘들었지만 살아가는 데 큰 영양분이 되길 빌어요
시간이 약이지만 그 약은 인간이 만들었지요 근데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와 아테나 여신이 만들었지요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교환학생 생활이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재미있었습니다. :)

오 근 1주일만에 스티밋에 들어와서 그 동안의 일을 못 봤는데 @c1h 님 한국에 돌아오셨군요. 시원섭섭하시겠어요.

그래도 일단 한국에 오신걸 환영합니다!ㅋㅋㅋ

감사합니다!
시원섭섭하기도 하지만 푸근한 미세먼지 냄새(?) 맡으니 또 한국에 왔다는게 실감나네요 ㅋㅋㅋㅋ
아직까진 좋습니다!

여행가면 좋긴한데 ~ 역시 그래도 익숙한 한국이 편하긴해요 ~ ㅎㅎ

네네 집에 왔다는 게 제일 좋죠ㅎㅎ

Welcome back!! :D

Thank you! home sweet h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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