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스맨 (X-Men, 2000), 엑스맨2 (X2: X-Men United, 2003) - 길을 찾는 사람들
- 회색의 경계
영화의 시작이 뜬금없습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장소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유태인 수용소. 20년 가까이 이어져오는 장엄한 엑스맨 사가의 여정은 홀로코스트의 처절한 현장에서 출발합니다.
유태인을 향한 나치의 학살은 돌연변이를 향한 세상의 차별로 이어집니다. 근사한 능력을 가진 초인이 악당을 벌하고 약자를 지키는, 기존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바탕으로 삼던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은 엑스맨에서 해체되죠. 영화는 원작 코믹스의 핵심적인 주제만을 유지한 채 현실 세계와 비슷한 질감의 이야기를 합니다.
- 차별에 맞서는 두 인물
거의 모든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주인공이 지닌 남다른 능력은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스스로의 힘에 책임을 느끼고 끝없이 고뇌하는 스파이더맨조차도 스파이더맨의 능력보다는 피터 파커의 무능력 때문에 괴로워했죠.
뮤턴트라고 불리는 엑스맨 속의 초인들은 완전히 반대의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남다른 능력은 바로 그 남‘다른’ 특성 때문에 이들을 일상의 삶으로부터 고립시킵니다. 엑스맨의 세계, 나아가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계는 다른 것과 틀린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합니다. 다수에 속한 사람은 익숙하게 손에 잡히는 것만이 옳다고 착각하기 십상입니다. 엑스맨의 이야기는 그런 현상에 대한 노골적인 은유입니다.
프로페서X가 지도하는 엑스맨과 매그니토가 이끄는 브라더후드는 다수를 향한 소수의 저항, 차별에 맞서는 두 가지의 방향을 선명하게 제시합니다. 지속적인 대화로 세상의 변화를 끌어내고자 하는 찰스 자비에와 강경한 태도로 뮤턴트의 인권을 수호하려는 에릭 랜서.
- 방황하는 소수
프로페서X와 매그니토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양쪽 극단에 서 있는 지표입니다. 두 사람은 뮤턴트 - 소외된 이들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차가운 현실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지는 못합니다. 영화의 내러티브를 조금만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이 보이죠. 엑스맨 사가는 길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방황하는 이들이 중심에 있습니다.
살이 닿는 것만으로 상대의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소녀 애나 마리와 수십 년 동안 기억을 잃은 채 살아온 남자 로건은 남다른 능력을 저주처럼 짊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주먹에서 갈퀴를 뽑아내 싸우는 로건에게 마리가 고통스럽지 않냐고 묻는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으로 읽힙니다. 로건은 항상 그렇다고 답하죠.
악마의 외향을 타고난 순간이동 능력자 커트 와그너의 경우는 소외의 정도가 더 심합니다. 이 남자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설정이 재미있습니다. 커트는 자유롭게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레이븐 다크홈을 부러워하죠. 그러나 레이븐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남다르게 생긴 본연의 모습을 고집합니다.
남과 다르다는 건 고통입니다. 남과 다른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역시 힘겨운 일이고요. 찰스의 엑스맨은 다수의 사람들, 세상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반면 에릭의 브라더후드는 소수의 사람들, 자신과의 대화를 더 중시합니다. 어느 쪽이든 딱 맞게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죠.
세상은 규격화된 조명을 사방으로 비추며 그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이들을 어둠으로 내모는 경향이 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환한 조명 아래 서 있는 게 가능한 이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누구나 주류에 속할 때가 있고 그렇지 못할 때가 있으니까요.
- 주류와 비주류
엑스맨2에는 묘한 시퀀스가 하나 있습니다. 주위의 온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로버트 바비 드레이크가 가족들에게 자신이 뮤턴트라는 사실을 밝히자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은 해봤니? 라는 질문을 받게 되는 장면이죠.
여기서 뮤턴트라는 특성을 동성애로 치환시켜 생각해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 시퀀스 전체가 가족과 대면한 바비의 커밍아웃이죠. 부모는 자식의 정체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주류의 흐름에 편하게 몸을 맡겨온 사람은 비주류 속에서 끊임없이 상처받아온 사람의 돌발 선언을 이해하지 못해요.
60년대를 장식한 원작 코믹스의 출발은 인종차별과 호모포비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정체불명의 대상에 대한 공포는 너무 쉽게 혐오로 바뀝니다.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무섭습니다. 무서운 것보다는 혐오스러운 것이 마음 편합니다.
나와 다르게 태어난 사람이라는 건 뒤집어 생각하면 내가 그 사람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게 됩니다.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가 보편적인 사회 현상이었던 것처럼, 다시 비주류의 주류화가 이루어질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어느날 갑자기 다수의 초능력자들을 이끌고 처들어온 바비가 여러분께 뮤턴트가 되려고 노력은 해보셨어요? 하고 물어보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 현실은 시궁창
엑스맨 사가의 논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서 편견으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의식으로 뻗어나갑니다. 엑스맨보다는 엑스맨2가 더 풍부한 영화고 엑스맨2보다는 엑스맨 퍼스트클래스가 더 입체적이죠. (중간에 뭔가 있었던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죠.)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장르가 별다른 고민없이 택하는 깔끔한 선과 악의 구도에 질리셨다면 엑스맨의 시궁창 속으로 발을 들여보시는 게 어떨까요. 뛰어난 지도자인 찰스와 에릭은 기꺼이 소수자들을 위해 길을 터 드릴 겁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당신의 자유고요.
- 찰스 자비에와 에릭 랜서는 각각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를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
- 휴 잭맨과 할리 베리는 엑스맨을 찍을 당시엔 거의 무명이었습니다. 이후 몸값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며 속편 출연이 불투명해졌지만, 배우들의 적절한 양보로 시리즈가 계속될 수 있었다고 하네요.
- 감독인 브라이언 싱어는 슈퍼맨 리턴즈를 찍기 위해 엑스맨3의 감독직을 사양했습니다.
4.5/5 엑스맨
3.5/5 엑스맨2
2017 02 08.
2018 01 03.
"더는 숨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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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단순히 코믹(?) 히어로 물에 비하면 .. 엑스맨은 항상 놓칠 수 없었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 .
엑스맨은 프리퀄 3부작도 잘 나온 편이라 팬의 입장에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만 로그라는 캐릭터의 활용이 좀 아쉽긴 해요.
엑스맨을 보면 드는 생각이,
서로 도와도 모자를 같은 입장의 엑스맨들이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과 그 반대로 똑같이 엑스맨을 바라보는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참 닮았습니다.
다수의 횡포에 억압받는 소수라고 해도 언제나 의견 일치는 보는 건 아니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입장은 항상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도 같습니다. 다수와 소수를 권력의 강약으로 치환시켜 보면 답답해지죠. 의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