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얻고 싶으면 당신이 먼저 친구가 되세요
난 삼청동을 찾았다. 도로시 살롱의 이효연 개인전 <친구꽃(Friends Flowers)>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2층 전시장으로 들어서니 전시장의 가장 긴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30명의 초상화를 그린 것이다. 이효연은 그 초상화 시리즈를 ‘친구꽃5’(2018)로 명명했다. 친구꽃? 친구+꽃? 만약 당신이 이효연의 전작들을 모조리 조회한다면, 그녀에게 ‘친구’라는 단어는 의미심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효연은 10여년간 사람들을 ‘이방인’ 관점에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찰하여 그렸기 때문이다. 난 이효연의 신작 ‘친구꽃’ 시리즈로 한 걸음 더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약력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아야만 할 것 같아.
이효연은 홍대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미술학원을 7년간 운영하다 지쳐서 2004년에 그만둔다. 2005년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훌쩍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난다. 스웨덴의 왕립미술학교에서 2년 동안 수학한 후 귀국해 2008년 프라이어스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Urban Scape>를 개최한다.
이효연의 <어반 스케이프> 시리즈는 도시의 풍경을 마치 카메라에 포착하듯 화폭에 담은 것이다. 물론 그 도시의 풍경에는 사람도 등장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효연은 그 사람들을 뒷모습 혹은 옆모습으로 그려놓았다.
홀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어느 남자의 뒷모습, 도심에 흐르는 강변의 모퉁이에 앉아 무엇인가 열중하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 지루할 정도로 긴 건물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지하철 앞에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뒷모습 등.
이효연이 포착한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행인들이다. 그 행인들은 이효연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이고, 이효연은 그 행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방인이다. 따라서 이효연과 그들은 스쳐지나가는 관계일 뿐이다.
하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효연은 그 스쳐지나가는 행인에게 시선을 던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효연의 ‘도심 풍경’인 셈이다. 2009년 그녀는 닥터박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여행 노트(Travel Note)>에 유럽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모델로 그린 그림들을 전시한다.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그린 로마의 오후(Afternoon in Rome)를 풍경, 프라하의 밤(Night in Praha) 풍경을 걷는 사람들의 실루엣 모습, 마치 작품을 찾는 듯 보이는 관객의 뒷모습을 그린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풍경. 스톡홀름의 어느 터날 위 도로를 걷는 행인 등.
특히 그녀는 2006년 비오는 스톡홀름(Rainy Stockholm)의 풍경을 찍은 사진을 모델로 2009년에 그린 그림에 관해 다음과 같은 진술을 한다. “물 속을 날고 싶어서 오른쪽 날개를 왼손으로 여러 번 고쳐 그리고 있다.”
그렇다! 이효연의 ‘도심 풍경’은 도심 풍경을 찍은 사진을 그대로 화폭에 재현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여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도심 풍경’은 과거의 풍경도 현재의 풍경도 아닌 ‘회화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닌가?
이 점은 2010년 이효연이 갤러리 담 개인전 **Show window in Urbanscape 에 전시한 그림들에서 더 부각된다. 이효연의 ‘거리(Street)’(2010)는거리에 마네킹이 서있는 그림이다. 이를테면 이효연은 도시의 거리 한 복판에 사람 대신 마네킹을 조합해 놓았다고 말이다.
이효연의 ‘여름(Summer)’(2010)은 한 걸음 더 들어간다. 그것은 천장에 매달린 옷들 사이에 옷을 입은 마네킹을 삽입시킨 것이다. 따라서 그 그림은 관객에게 묘한 느낌을 준다. 전혀 다른 이미지와의 조합에 관해 그녀는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마치 어릴 적 인형놀이를 하듯 옷을 만들어주고, 집도 지어주고, 무엇이든 내 손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사진을 토대로 작업을 하는 건 예전 작업이나 이번 작업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좀더 자유로이 이미지 사이를 넘나들 수 있었다.”
2012년 이효연은 두루아트스페이스에서 개최한 개인전 <풍경, 그리고 쉼표>에 풍경마다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는 그림들을 전시한다. 무엇인가 바라보면서 카메라로 찍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People who hold a camera 2)을 보자.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보고 있는 그 무엇은 화면에 ‘부재’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화면 ‘밖’에 있기 때문이다. 오잉? 맨 앞쪽(오픈쪽)에 있는 두 사람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지 않다.
그렇다! 그들은 마치 카메라로 무엇인가를 찍는 시늉만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림을 현실세계와 문맥을 이루는 것으로 종종 착각한다. 하지만 그림은 현실세계로부터 독립한 그림의 세계를 그린 것이란 점이다.
그 점은 바닷가에 생뚱맞게 텅빈 테이블이 놓여져 있는 그림을 보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People looking at somewhere). 이효연은 텅빈 테이블이 놓여져 있는 바닷가에 서로 전혀 문맥을 이룰 수 없는 듯 보이는 행인들을 바다를 향해 그려놓았다.
따라서 그들은 한결같이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화면 맨 오른쪽 남자는 바다보다는 맨 왼쪽의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화면 맨 왼쪽의 여자는 마치 오른쪽에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기시감을 느꼈는지 고개를 약간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다.
아니다! 그녀는 그녀 바로 앞에 있는 남자의 손에 들린 가방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 그림 속의 각각의 사람들에 대해 ‘구라’를 쳐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더 이상 여러분들에게 스크롤 압박을 주지 않기 위해 결론으로 넘어가자.
이효연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도심에서 만난 행인들의 뒷모습을 주로 그렸다. 행인들의 뒷모습 시리즈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뒷모습 초상화’(2013~2014)에 대해 이효연은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을 그려온 나는 뒷모습 초상을 통해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 뒷모습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표정이 있고 꾸밈없이 적나라한 그 사람이 있다. 쓸쓸한 뒷모습을 가진 이들의 초상이 바로 오늘날 현대인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한다.”
그로부터 4년 후 이효연은 ‘앞모습 초상화’인 <친구꽃> 시리즈를 전시해 놓았다. 그 사이에 무슨 심정의 변화가 있었을까? 그녀는 인물의 뒷모습에서 앞모습으로만 바꾼 것이 아니라 ‘익명’의 인물에서 특정한 ‘친구’들을 모델로 삼았다.
난 단편적이나마 이효연의 구작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언급해 보았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훌쩍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녀는 이제 ‘친구’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 왜 내가 그녀에게 ‘친구’라는 단어가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는지 감 잡으셨죠?
이효연이 그린 30명의 ‘친구꿏’에는 도로시 살롱의 임은신 대표도 있고, 동료 작가가 있고, 해외 체류기간 중 만났던 외국 친구들도 있고, 그녀가 운영하는 팟캐스트의 동료 진행자들 그리고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유명 작가(화가, 소설가 등) 또한 그녀의 어머니도 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그림에서 정면으로 등장하는 초상화는 다름 아닌 그녀의 ‘엄마’였다. 이효연의 ‘엄마1’(2015)는 어린 시절의 엄마 사진을 보고 그린 초상화이다. 그렇다! 그녀의 ‘친구꽃’은 2016년 처음으로 시작했다.
작년 비컷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환상통(Phantom Pain) 에 전시된 이효연의 ‘친구꽃’(2016)이 그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이번 도로시 살롱 전시에 ‘친구꽃’을 제외한 ‘친구꽃 2, 3, 4, 5’만 전시했다.
이효연의 ‘초상화’는 특이하게도 모델의 윤곽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잉? 이효연의 ‘친구꽃5’를 측면에서 보니 캔버스 측면에도 채색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캔버스 측면에 채색된 컬러는 다름아닌 모델의 윤곽선으로 그린 색이다.
그 윤곽선에 관해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진 인화 때 볼 수 있는 포지티브와 네거티브를 다 보여 주기 위해 윤곽선을 더 밝게 그렸어요.” 그렇다면 ‘친구꽃’은 친구들의 포지티브와 네거티브를 다 보여주는 그림이 아닌가?
머시라? 왜 작가는 ‘친구’에 ‘꽃’을 접목시켰느냐고요? 그녀는 일단 “예쁜 것이 좋고 그 중에서도 꽃이 좋다”고 말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친구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을 접목시킨 셈이다. 그녀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친구 하나하나가 나에게 꽃이고 나는 그 꽃을 그리고 그들은 내게 와서 의미가 된다.”
문득 시인 김춘수의 <꽃>이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런데 이효연의 ‘친구꽃’ 모델들 중에 일면식도 없는 얼굴들도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들을 친구로 삼아 초상화를 그렸다. 그 점에 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답변을 한다.
“이번 작품에는 일면식도 없는 얼굴들이 등장한다. 그건 그들이 나에게 번져 스미었기 때문이고, 나는 언젠가 간절히 원하면 만나게 된다는 믿음을 믿어보려고 한다.”
도로시 살롱의 이효연 개인전 <친구꽃>은 4월 29일까지 전시된다. 강추한다!
@ 아래 사진들은 도로시 살롱에 전시된 전시광경 사진들 그리고 참고용으로 올린 작품이미지들이다.
이효연urbanscape 2캔버스에 유채_90.9×72.7cm. 2007
이효연_Venice biennale. 2009
이효연Street캔버스에 유채_72×91cm. 2010
이효연People who hold a camera 2리넨에 유채_130.3×162cm. 2012
이효연People looking at somewhere. 2012
이효연Portrait리넨에 유채53×45.5cm×12. 2013~2014
이효연엄마1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5×28cm. 2015
오늘도 호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