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이야기가 있는 불교 이미지 #005 "부처님, 중생에게 절하다" - 김홍도, 부모은중경의 여래정례

in #kr7 years ago

이야기가 있는 불교 이미지 #005 "부처님, 중생에게 절하다" - 김홍도, 부모은중경의 여래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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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치

지존의 왕이 다른 나라 왕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을 국치國恥라 한다. 우리나라도 병자호란과 한일병탄이란 두 번의 국치를 해봤으니 그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알만하다. 하지만 그렇게 높은 왕이라 하더라도 바닥에 엎드린 자국의 백성에게 허리를 굽혀 손을 내미는 것을 수치라고 하지는 않는다.

왕이니 백성이니 하는 용어도 이젠 감이 안오는 옛날 이야기라 좀 그렇긴한데, 불교도 왕들과의 좋은인연, 안좋은 인연들이 많이 있어오면서 함께 그런 시대를 살아왔던지라 거기에 빗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처님도 스스로는 ‘의사의 왕’ ‘약사의 왕’에 자주 비유했으니 이젠 잊어버리고 적응했지만, 몇 년전 우리나라를 한참동안 떠들석했던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있던 즈음 유행했던 광고문구가 생각날 법도 하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물론 그것은 고단하고 아픈 삶을 사는 사람들의 스승이라는 비유다. 정작 당신이나 제자들의 몸이 아플 때 붓다는 항상 신뢰하던 지와까Jivaka란 의사에게 물어보고 치료를 부탁하고는 했으니까. 부처님에게 누군가의 몸을 낫게 해줄 능력은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을 낫게 해 주니 의왕이고 약왕이긴 했다.


종교의 지도자, 국가의 수장

그런 당신은 누군가에게 경례를 표할 필요가 없었다. 진리의 세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누구도 당신을 굴복시킨 이도 없으며 그걸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논리적인 붓다에게 번번히 설득 당했으니. 물론 당신의 아버지였던 정반왕Śuddodana이 임종했을 때 아들의 예를 표하여 관을 직접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상 당신 출신국의 나라를 복속하고 있던 큰 국가 코살라의 왕 프라세나짓Prasenajit에게도, 훗날 전 인도를 통일했던 마우리야 왕조의 전신으로 여겨지는 마가다 - 당시 인도의 16국 중 가장 강력했던 - 국의 왕 빔비사라Bimbisara도 친구같은 관계였을 뿐 고개를 숙여 왕의 대접을 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당시의 수도자들은 왕에게 복속되지 않는 독립적인 삶을 살았으므로 그렇긴 했겠지만, 오히려 그 왕들이 붓다에게 고개를 숙이는 장면은 다시 사회의 종교적 컨텍스트에선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도.

그러나 충·효·예라는 유교적 신분질서, 군신관계가 명확한 중국에 와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스님들은 왕에게 머리 숙이지않는 것이 관례. 심지어 왜 스님이 왕에게 고개숙이지 않는가에 관한 ⟪사문불경왕자론娑門不敬王者論⟫이란 책이 쓰여질 정도였다.
오늘날도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는 행위는 그 사람에게 내 자존심을 다 내어준다는 상징이다. 그러니 가장 소중한 내 자식이 흠씬 맞고 와서 속이 뒤집어져서 고소하려고 하다가도 상대방 부모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할 정도가 되면 왠만해선 합의해주는게 상식일 정도아닌가.

요새도 상대를 무릎꿇리고 나서 그 위에 올라서려는 미지왕들의 갑질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으니 거참.


'어머니의 마음'과 '부모은중경'

중국에서 부모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진.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란 책은 사실 중국사람들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중국에서 제작된 경전이지만, 그 내용은 고려시대 초기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일으키는 내용으로 채워진 말하자면 종교적 베스트셀러이다. 혹여 충효와 같은 명분을 내세운 왕실 기득권들의 정치적인 목적이 거기에 개입되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조차 오늘날에 와서야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니까.

고려시대부터 목판인쇄본과 금속활자로 본격적인 간행이 이루어져서 15세기에 이미 우리나라의 인쇄술은 말할 것도 없이 발달해 있었지만, 거기에 세종대왕에 의해 갓 만들어진 뜨끈뜨끈한 한글이란 글자는 이런 인쇄술을 더 돋보이게 했다. 금상첨화, 여기에 조선초기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했던 불화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목판본에 새겨진 것으로 요새로 말하자면 판화인데, 그 미세한 선들로 이루어진 디테일한 그림을 어떻게 그렇게 목판에 새길 수 있었나 싶다.

더구나 그 그림들은 우리가 오늘날 모셔놓고 공경하는 신앙의 대상이 라기 보다는 전부 글자로 새겨진 경전 내용에 대한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었 으니까 일종의 일러스트이다. 그럼 아마도 그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글 을 읽을 수 있던 사람들은 이해를 했을 것이고 글자를 모르는 이들에게 설명 해주면 듣는 사람들은 마치 빔 프로젝터에 비친 그림을 보듯 현장감 있게 이 해하지 않았을까. 그림을 넣는다는 것 자체는 아마도 보통사람들을 고려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어느날, 제자들과 길을 가던 부처님은 나무 밑에서 사람의 뼈를 발견한다. 부 처님은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그 뼈를 보다가 거기다 대고 절을 한다. 제자 들은 깜짝 놀라서 부처님에게 묻는다. “부처님,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죽은지 한참 되어 보이는 사람의 뼈에 절을 하시다니요?” “그게 아니다. 긴 생애의 반 복 속에서 우리는 인연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누구도 처음 만나는 게 아닌데, 저 뼈의 주인이 언젠가 한 번은 나에게 부모도 되었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래 서 내 그냥 지날 수 없으니 이렇게 예를 올리고 명복을 비는 것이다.”

⟪부모은중경⟫은 이렇게 시작된다. ⟪부모은중경⟫에 그려진 삽화의 가장 큰 주제는 부모은혜의 열 가지를 대표하는 노래에 맞춰 구성되어 있다.

“낳실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애쓰는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어버이날 부르는 이 익숙한 노래가사는 동국대학교 교수였던 양주동梁柱東 박사가 작사한 것인데 이 명문이 ⟪부모은중경⟫의 열 가지 은혜의 부분을 편집 한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초기의 ⟪부모은중경⟫목 판화에는 부처님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개를 숙이는 것도 절拜은 절이니까. 아 물론 일단 허리가 접혀야 절이다. 그래서 전에는 고개 숙이는 걸 반절半拜이라고 했는데 그 표현이 이상하다고 여겨서 요새는 '고개를 숙인다 저두底頭'라고 한다.

“거 부처님은 진짜 높은 양반이신데 주인없는 해골더미에 설마 무릎을 꿇으 시기야 했겠소? 여기는 절이라고 나와 있는데 목례 정도로 처리합시다.”

고려시대 혹은 조선 초기 판화를 만들던 이들은 아마도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엉성한 판화가 더 많은 선으로 정밀하게 표현될 무렵, 18세기. 우리가 조선시대 가장 성군 중의 한명으로 여기는 정조正祖대왕. 그의 명에 의해서 김홍도는 10개로 이루어진 부모은혜의 장면과 몇몇 개의 그림을 더 그려서 ⟪부모은중경⟫판본을 완성시켰다. ⟪부모은중경⟫은 조선시대에 인 기가 많아서 여러차례의 간행기록이 있지만 특히 판화로 만들어졌다. 동판으로, 또 석판으로도 만들어졌지만 정조 때는 42매의 목판으로, 그 양도 가장 많으며 그런만큼 한문판, 한글판, 그림까지 더해져서 이루어져 있다. 최근에는 불교경전문헌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옥책으로 새긴 고려시대 ⟪부모은중경⟫이 발견되어 떠들석 하기도 했다.


정조, 그리고 화성華城 용주사, 화성畵聖 김홍도

⟪부모은중경⟫과 가장 인연이 깊은 절, 화성 용주사龍珠寺는 정조대왕의 부모에 대한 그리움, 혹은 그 은혜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의 결과이다. 당시 근처의 갈양사란 절에서 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접한 정조는 크게 통곡했다고 전해오니 그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 사도思悼세자와 원망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어머니 혜경궁惠慶宮 홍씨를 떠올렸던 것일까. 아무튼 이 때문에 정조는 1790년 왕궁을 모델로 한 사원을 지었으니 바로 용주사이다. 당시 용주사의 불화를 감독했던 이가 이른바 화성畵聖, 김홍도金弘道이다.

용주사의 삼존불 불화를 직접그리기도했지만,사실 그가 불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 이 때가 시작일 것이다. 정조는 사원의 건물기둥에 쓰는 글, 주련柱聯을 조선시대 가장 박학했던 사람 중 한사람으로 오늘날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는 문호 이덕무李德懋(1741~1793)에게 짓게 했으며 김홍도에게 ⟪부모은중경⟫의 삽화를 그리게 했다. 그리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에서 화성으로 옮겼다. 그리고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잔치 를 맞아서 화성의 사도세자의 묘를 찾는 행차가 바로 몇 년전 문화재 반환문제로 떠들석 했던 ⟪조선왕실의궤⟫의 최고 명장면 중 하나이다.

부모은중경의 열개 판화는김홍도의작품이분명하지만, 도입부의 이 그림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이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그림이 관심을 받는 것은 바로 부처님이 서서 고개만 숙이던 장면이 오체투지, 절을 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한 중생 앞에 완전히 무릎꿇고 오체투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신과 성인과 왕에게도 고개숙이지 않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중생에게는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댈 수 있는게 부처님이란걸 김홍도는 알았기 때문일까. 그가용주사에남 겨둔 많은 불화들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그의 부모은 중경을 표현한 10여 장의 판화는 그 중에서도 백미가 아닐까 싶다.

김홍도는 만년에 연풍현감 - 오늘날 속리산이 있는 괴산(충북 음성, 보은, 문경등에 둘러쌓 인) 군수 쯤 되지 않을까 싶다 - 으로. 있으면서. 단양팔경을 수집할 무렵 문경 상암사上菴寺란 절에가서 그만 절분위기에 마음이 끌려 시주를 많이 했는데 50이다된 나이에 아들을 얻었으니그이름도 월급을 절에 보시하고 얻은 아들이라 연록延祿이라 지었다고 한다. 그때 인연으로 만년에는 불화를 제법 많이 남기게 되었다.

그 무렵 자신보다 35살이나 많은 담졸澹拙 강희언姜熙彦(1710~1784)과 그 벗이지만 동시에 김홍도(1745~1806)의 스승이자 선배였던 표암豹菴 강세황 姜世晃(1713~1791), 그리고 20년도 더 어린 후배 자하紫霞 신위 申緯(1769~1835)와 서로 절친해서 모여 놀았다니 서로 50년이넘는 세월을 넘어서 그 당시 벗으로 지낼 수 있는 이들이었던 것만으로도 그들의 관계는 분명 범 상치가않다.돌아가신스승을기리는문장중에그 들이 닷새를 술을 나누며 놀았던 추억에 대해 쓰고 있으니, 김홍도가 주변인들과의 어울림이란 지금 봐도 과히 격식을 뛰어넘는 삶을 살았던게아닐까. 그리고 그런 그가 그 파격적인 필치로 중생에게 오체투지 하는 부처님의 모습을 스스럼 없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남방의 불교국가에서는 스님들이 재가자와 함께 합장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스님이 재가자를 향해 합장을 하거나 고개를 약간만 숙여도 동남아시아의 불자들은 어쩔줄 몰라하는 것을 목격한다. 처음 볼 때는 그게 참 신기하기만 했다. 문화란 우열이 없고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나눌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들 대로의 분명하고 명확한 이유와 관습에 따라 지켜지는 것일테다.

더구나 한국출신의 불자인 우리가 깜냥으로 그 거대하고 유수한 문화를 지적질하는 건 좀 우습긴해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스님들은 일방적으로 예를 받지말고 재가자들과 합장 목례정도는 함께 나누시는 게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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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_불식 15/05(0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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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어 보았습니다!

방문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또 와주셨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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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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