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이야기가 있는 불교 이미지 #010 "불교의 상징, 불교기 - Buddhist flag"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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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식으로 말하자면 ‘종교인’인들은 종교의 현장에 있으면서 종교와 상관없는 사람들보다 종교적인 삶을 사는 이들을 훨씬 많이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종교적인 삶을 살면서도 대부분은 탐욕과 증오를 일으키는 순간들을 확실하게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뼛속까지 종교적인 삶을 사는 ‘종교인’들 조차도 탐욕과 증오가 일어나는 순간을 스스로 수없이 마주한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자체는 내 자유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내 탐욕과 내 증오로부터 내 자신과 누군가가 고통받게 된다면 바로 그 때 부터는 이 탐욕과 증오는 문제가 된다. 이것들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고자 종교에 의지하는 것인데, 사실 종교는 방향만 제시할 뿐 그 이상일 수는 없다. 그러니까 종교가 깨끗한 세상과 거룩한 삶을 장려하기는 하지만, 종교 그룹에 참여 여부가 청정과 오염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어떤 특정한 것만이 올바르고 깨끗하다. 즉 ‘무조건 옳다’는 말은 결코 옳은 말이 아니다.


탈세속이 아니라 탈종교


그래서 종교는 ‘탈세속’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오늘날 다시 세상은 그 종교의 정해진 특정한 관념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탈종교’를 요청하는 것이다. 때문에 다양한 종교들이 받아들여지고, 각각 생각하는 진리에 따라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면 그만이다. 단,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는 각자에게는 옳은것인데 그것이 왜 옳은지에 대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서로 대화와 논쟁, 설득이 가능해야 한다.


우리는 이성이란 능력이 있다. 종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기에, 결코 ‘무조건적’ 이어서도, ‘잘못된 이유를 좇아서’도 안된 다. 이를 ‘맹신盲信’과 ‘미신迷信’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라. 맹신과 미신이 아닌 ‘올바른 믿음’은 종교의 입장에서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혹은 신부님이나 스님이 정해주고 그걸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 배움을 통해서, 생각을 통해서,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스님이나 신부님이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보다 이성에 있어서 더 깊은 사유와 지식이 필요하다.

서구사회에서는 19세기 이후로 ‘뉴에이지 New Age’이름을 단 문화, 예술이 사회전반적인 생각으로 유행했는데 이 흐름을 사실상 이끌었던 것이 1875년 만들어진 신지학회(神智學會, theosophy)란 단체였다.

대개 누구나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볼 때 자신이 가진 특정한 안경을 끼고 본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옳고 그름을 구분해 내고 그리고 그 의미를 찾는다. 그러니 의사 눈에는 환자만 보이고, 경찰 눈에는 범죄자만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이 대목에서 갑자기 궁금해진다. 스님 눈에는 ‘중생’만 보일까, ‘부처’만 보일까?


약간 다르다고 할까, 특별하다고 할까? 좋게 말해서 세련된 생각을 한다고 할까. 일부 사람들은 가격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모든 이들이 말하는 것들을 한번 모아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유행했던 것이 바로 ⟪지대넓얕⟫이란 프로젝트이다. 깊이가 중요한 우리 전통에 '얕은 지식'이라니. 여튼 하나의 주제에 대해 과학과 종교와 철학이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를 다 모아보고 그 판단은 각자가 해 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신지학회의 멤버들은 아마도 그 때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모든 삶의 믿음과 생각이 거의 동일한 세상에서 살던 서구에서 새로운 지식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은 엉뚱한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절대자가 아니라 우주를 움직이는 어떤 신비한 힘에 대해, 그리고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원리 등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그 절대자를 한 번 직접 만나보기로 한다. 그들이 발견했던 우주와 사물을 설명하는 과학적인 사고에 더하여 서구에서는 말하지 않는 동양의 자연이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삶과 방식, 그리고 동양의 종교와 철학은 그들에게 엄청난 신문물이자 지식이었다. 이를 통해 과학이란 지극히 이성적인 사유와 심령, 명상, 업 등 그들의 표현으로는 '신비스럽다'고 하는 동양의 이론들이 합쳐져서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새로운 예술분야, 새로운 종교, 철학, 동물보호, 채식주의, 환경생태보존, 심리학, 점성학 등 새로운 사회의 모든 것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그들에게 핵심적인 재료가 바로 인도의 철학과 티벳의 불교와 같은 것들이었다. 신지학회의 상당부분은 점차 신비종교화 된 부류도 있고,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특정한 기독교로 발전하기도 했으며, 또 불교가 갖는 취지와 많은 차이가 있기도 하다. 다만 이 흐름은 아마현대의 서구, 특히 미국사회에 불교를 전달하고, 기존의 서구의 사유와 불교가 서로 익숙해지는데 분명 상당한 역할을 했다. 19세기 이후 불교나 인도, 동양의 철학을 알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 신지학회를 통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리랑카가 영국으로부터 식민지배를 받았던 150여년간 영국의 많은 교회들이 식민정부의 지원으로 교육과 문화를 점령해 나갔다. 거기에 대응해서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스리랑카의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구나난다Gunananda란 스님은 ⟪크리스찬들의 징표 Christian Pragnapthi⟫란 잡지에 대응하여 ⟪두르랍디 위노다니⟫ (이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란 월간 불교잡지를 창간했고, 이 불교잡지의 영향력은 기독교의 대응잡지 ⟪수다르마 프라까라나야⟫를 다시 만들어지게 할 정도였다.

이후 기독교 정책에 따른 교육용 잡지들에 대항하여, 또 그것을 보고 배워서 스리랑카의 불교교단은 수많은 불교잡지들을 식민지 상황에서 만들었다. ⟪두르랍디 위노다니⟫를 쓴 구나난다 스님은 1864년 부터 1899년까지 4차례, 혹은 다섯 차례의 기독교와의 교리논쟁에들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파나두라 논쟁’이다.


그 논쟁이 벌어진 장소에 모인 청중이 무려 5천명 이상이었다. 아마도 이는 스리랑카를 넘어 근대불교사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일 것이다.우리나라는 침략자였던 일본과 동일한 불교였기때문에 종교적으로는 부딪힐 일이 드물었으나 스리랑카의 경우 식민정부는 기독교로, 스리랑카 민중들은 불교로 대표된다. 그만큼 불교가 가진 국가적인 영향 력이 컸기 때문에 민족이 기독교를 통해 압력을 받는 상황이었다.

이 논쟁은 ⟪세일론 타임즈The Ceylon Times⟫ 신문에도 실렸고, 현재 우리나라에도 그 내용이 번역되어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사건은 큰 반향을 불러왔는데 이 사건을 중심으로 몇몇 스리랑카 불교교단의 상황은 미국출신의 군인 대령이었고, 영국 식민정부의 총독부 관료이기도 했던 헨리 올콧 Henry Olcott(1832-1907)을 등장시킨다.


불교계의 기념비적인 절대적 후원자 올콧, 그가 바로 신지학회를 세운 공동 설립자이다. 올콧은 당시 인도의 철학에도 관심을 갖고 있기도 했었지만, 무엇보다 스리랑카의 이 사건들을 통해 불교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는 불교신지학회Buddhist Theosophy를 세웠고, YMBA(Young Man Buddhsit Association)운동을 시작했다. 식민정부와 스리랑카의 불교가 관련된 거의 모든 관계를 중재했고 변론했다. 그는 또한 부처님 오신날(성도일, 열반일)인 인도달력으로 2월 혹은 3월 에 해당하는 비샤카/웨삭Vesak을 공휴일로 제정하였다. 이 결정이 오늘날 UN이 지정하고 후원하는 '부처님 오신날'로 지정되어 전세계의 불교도들이 매년 5월에 동남아 지역에서 모여 행사를 치르게 된 시초가 된다. 그가 식민지 스리랑카의 불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법안과 불교단체, 잡지, 설립한 학교들은 다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이다.


결정적으로, 붓다에 대한 경의의 표시, 부처님 오신날을 기리기 위해, 그리고 세계인들이 불교도임을 알리기 위해 그는 표식을 만들었다. 붓다의 신체에서 여섯 가지 색깔을 취했다.
  • 머리카락에서 푸른색 (자비, 평화),
  • 피부에서 노란색 (중도, 공)
  • 피에서 붉은 색 (수행)
  • 흰색은 치아(청정, 해탈)
  • 옷에서 주황색(붓다의 가르침, 지혜)

를 따왔다. 선은 가로세로가 붙어 있 는데,

  • 가로선은 진리의 영원성
  • 세로선은 다양한 이들이 그 진리에 대해 가르침을 들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물론 이 해석은 나라의 전통마다 조금씩 변화, 발전되기도 했다. 이 문양이 바로 오늘날 불교도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상징인 불교기(佛敎旗, Buddhist flag)가 되었다.


19세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예술가들 중 신지학이란 유행을 타지 않았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최근 일본화된 그의 선사상에 대한 일부의 교리적인 비판도 있고 또한 일본의 군국주의를 향한 정당화 발언에 대한 비판도 받고 있지만 근대의 불교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의 하나인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1870-1966)도 신지학회의 대표적 지지자였다. 현대미술의 추상화의 유명한 몬드리안Mondrian, 칸딘스키Kandinsky등도 그들의 작품에 그의 영향력이 강하게 들어있다고 평가받는다.

신지학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을것이고, 또. 불교도의 입장에서 볼 때 신지학회의 교리나 교단이 가진 의미는 별로 크지 않기도 하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보게 되는 저 불교기는 신지학회와 그 창시자인 동시에, 스리랑카 불교교단의 최대 후원자였던 올콧 대령, 식민지 자신의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싸웠던 구나난다 스님, 그리고 19세기 전세계를 대상으로 했던 열강들의 식민지 사업, 그 이후 신지학회를 중심으로 한 불교와 서구의 본격적인 만남 등 수많은 배경과 연결되어서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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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_ 불식 (0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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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식에 대해 알게 되어서 기쁘네요. 불교기의 의미가 이런 의미였다니..!! 제가 운무있는 사진들을 골라봤는데 맘에 드실지 몰라서 스팀챗이라도 알려주신다면 의견을 묻고 싶네요~

@kimsunggil님 감사드립니다. 지금 스팀챗을 쓰지 않고 있는데 한 번 시도해보겠습니다

스팀챗 안쓰시면 제 글에 댓글 달아주세요~~

넵 가입했는데도 뭐가 잘 안되네용~ 갈게용~

우리나라에서는 볼수가 없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많이 볼수 있지만 그것도 눈여겨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되지요.
IMG_5940.JPG
라오스 비엔티엔의 VAT MIXAY에서 찍은 불기입니다.

현장을 보니 좋습니다. 귀한 사진 감사드립니다.^^

불교기가 있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만날 아무생각없이 만자만 생각했는데 ^^;;
보팅 & 팔로우 하고, 앞으로 종종 댓글 달겠습니다 :)

@sleepcat님 감사드립니다. 저도 팔로 했습니다. 자주 뵐게요^^

불교기라는 것도 있군요.
오늘 처음 알았네요^^

@sailingtohappy님~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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