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이야기가 있는 불교 이미지 #009 "천분의 부처님, 작은 부처님"-연가7년명 여래입상

in #kr7 years ago (edited)

「연가_칠년」이_새겨진_금동불입상_02.jpg


「연가_칠년」이_새겨진_금동불입상_01.jpg


금동 金銅 연가 延嘉 7년명 七年銘 여래입상 如來立像 | 국보 119호 | 국립중앙박물관

image_https://ko.wikipedia.org/wiki/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Screen Shot 2017-11-18 at 11.24.02 AM.png

“539년(연가7년, 기미년)에 고구려高麗國의 수도 평양樂良에 있는 절, 동사東寺에서 주지 경敬과 그 제자 승연僧演을 비롯한 여러 스님과 불자들 40인이 함께 현겁천불賢劫千佛을 조성하여 유포하기로 하였는데 그 가운데 스물 아홉번 째인 인현의불因現義佛로 비구 법영法穎이 공양합니다.”


임진왜란의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로 기억되는 도시, 경상남도 의령에서 1963년, 보기 드물게 작은 불상 한구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신라의 불상이 아닌 고구려의 불상이었다. 그리고 불상에 관한 명문銘文이 광배라고 불리는 불상의 아우라 뒷쪽에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신라시대의 불상이란 대개 통일신라 - 오늘날 남북국시대라고 부르는 - 때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삼국시대보다는 후대인데 이렇게 남북국시대의 불상은 많이 현존하지만 삼국시대불상은 그리 많지 않다. 6세기면 초중반이면 ⟪서유기⟫로 유명한 현 장玄奬법사가 인도로 떠나기도 전이며, 삼국 중에서도 한반도에서 불교가 가장 일찍 전해졌던 고구려의 경우 더욱 흔치 않다. 그러니까 어떤 양식이든간에 그냥 현존하는 불상 중에 가장 오래된 불상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또한 그 몸속에 넣는 것도 아닌 직접불상의 등에 새겨놓은 뚜렷한 명문이 그 옛날 불상이 만들어지던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으니 1500년 뒤의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저 감격스러울 뿐이다. 불상이란 불교도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금도 크게 다르겠는가만, 오랜 옛날 불상을 한 분 조성(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보다 분명 자원도 재정도 부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은 좀 더 간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돌을 쪼기도 하고 큰 바위를 깍기도 하며 나무를 조각하기도 하고 동을 녹여서 틀에 붓기도 하고 그리했을 것이다. 그렇게 조성된 불상들이 누군가의 예경과 기도를 받아주는 대상이 되었으며 그 모습을 통해 부처님을 닮 고자 하는 이들의 모델이 되었고, 시간이 많이 지난 오늘날엔 이 나라의 문화가 되고 보물이 되었다.


그 긴 세월을 견디려면 얼마나 많은 조건이 필요했으며 또 그 시간동안 겪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20cm가 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불상. 지금의 평양의 한 절에서 40여 명이 마음을 모아서 1000분의 불상을 만들고자 발원하고 작은 불상을 동으로 조성 했다니 만일 그 천불의 불상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지금 모두 어디에 흩어져 있을까.

보이는 것이 왜 중요하지 않겠는가. 가방 하나, 펜 하나, 제품 하나를 만드는데도 사람의 손길과 시간이 들어가면 그것에 이름이 붙고 명품이 되고 심지어 그 브랜드가 지니는 철학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불상을 만드는데 모양만 형식적으로 찍어낸다면 그래도 너무 가볍지 않은가.


오늘날 큰 불상들은 제법 많이 존재하지만 사실 중국왕실에서나 가능했지 전통적으로 그렇게 큰 불상을 만드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워서이기도 하겠지만 여튼 그 예가 그리 많지는 않다.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큰 불상을 제작하는데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경우가 많다. 불상佛像을 크게 조성하는 것과 불심佛心과는 큰 상관이 없었을테니 말이다.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바미얀Bamiyan에 있던 거대한 불상은 53미터나 되는 대단한 규모의 불상으로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연가 칠년명이 새겨진 고구려 불상과 거의 같은 시기에조성되었다. ⟪대당서역기⟫의 현장스님과 ⟪왕오천축국전⟫의 혜초慧超스님도 이불상을 직접 만났다고 알려져 있을만큼 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2001년 탈레반Taliban의 로켓탄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나라는 아주 작은 불상이나 탑 만드는 것을 잘했는데, 그것이 타고난 섬세함인지 자원이 부족때문에 생긴 유행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큰 건물을 지을 때 작은 미니어쳐를 제작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큰 탑을 만들면 그 탑모양의 미니어쳐를 많이 만들어서 탑속에 넣기도 하고 작은 불상들을 그 내부에 넣기도 했다. (우리 선조들은 미니어쳐 만드는데도 능숙했 다!)


쥐와 미륵불이 등장하는 전래동화가 있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다시 새겨보자.

땅을 파고 사는 엄마쥐 아빠쥐가 생각해 보니 딸쥐에게 믿음직스런 사위를 골라주고 싶었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사위에게 짝을 지어줘야 할 것 같아서 떠올려 보니 역시 가 장 강한 것은 태양이다. 아주 뜨겁고 이글거리니.

“햇님,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신 것 같으니 우리 딸의 신랑이 되어 주세요.”

그러나 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가 강하기는 하지만 구름이 가려버리면 난 힘을 못쓴다네”

그러니 구름한테 갔다.

“구름님이 햇님도 가로막을 정도로 강하니 우리딸을 데려가 주세요.”

하지만 구름은

“바람이 불면 난 원치 않아도 날아갈 수 밖에 없지.”

그러자 바람한테 가서 청혼을 한 다. 하지만 바람은

“내가 온갖 것을 다 불어버릴 수 있는데 산 중턱에 있는 미륵부처님 불상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꿈쩍도 안더라고. 미륵불이 나보다 더 세다네.”

그러자 다시 미륵불에게 간다.

“미륵부처님. 우리 딸의 신랑이 되어 주세요.”
(거참, 이렇게 부처님한테 청혼할 정도의 베포는 되어야 ... )

그러자 미륵부처님은 빙그레 웃으 며

“얼마든지 그래줄 수 있지.”
(그렇지. 쥐에게 청혼받아도 부처님은 당황 하지 않는다. 역시 부처님 ^^)

“그런데 말이야 나보다 더 센 녀 석들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바람에 끄떡 없어도 말이지, 내 발밑에 사는 쥐란 녀석들이 땅을 막 파대면 난 쓰러질 수 밖에 없어.”

그래서 결국 돌고돌아 쥐 중에서 신랑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맥락은 좀 다른데, 어떤가. 장중한 부처님 불상도 저 작은 쥐들에게 꼼짝을 못하니. 오늘날 쥐를 두려워 해야 할지 뭘 두려워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큰 불상을 새롭게 만드는게 대체 우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중국에서 대승불교의 꽃이라 불리는 선종이 생겨나면서 절은 달라진 것이 하나있다. 스님들의 공간이 아무것도 없이 텅빈 방만 하나 남았다는 것이다. 원래 동양의 미적 감각이란게 '여백의 아름다움'이라, 요새는 서구식으로 많이 바뀌었지만, 밥상도 차렸다가는 먹고 나면 치워버리고,이불도 펴서 자고 일어나면 치워버리고, 의자도 없고, 필요하면 병풍하나 치 고,이렇게 방을 텅 비워놓는 것이 원래 우리 스타일이었다.

그러니 거울 하나 걸어 놓으면 불상이 없어도 부처님 대신 텅 빈공간에 나 하나만 가서 그 공간을 채우면서 앉아있다가 일어나면 다시 그공간은텅 비어버린다. 지금도 큰 사찰에 가면 참선하는 스님들은 예불에 참가하지 않는다. 선원에서 따로 죽비소리와 함께 세 번 절을 하면 그게 전부다. 그 앞에는 선종의 대부, 달마스님 그림 하나가 걸려 있을 뿐.


물론 절에는 불상이 필요하다. 불상은 부처님 대신이니까. 그만큼 불상이 한 분 모셔질 때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기울여져서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많은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속 가장 큰 욕망을 대변(?)하는 무슨 ‘최대’, ‘최고’와 같 은수식어를 붙여서 거대한 불상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결코, 절대로, 네버, 에버 ‘불교적 스타일’이 아니다.

절을 크게 짓고 거대한 불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과연 불교의 올바른 의미를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전달하는 방식일까. 최근에 한국에서 큰 불상을 모시고 정계인사들까지 초청되어 와서 참배를 하고 인터뷰를 하니 어이 없게

“아프냐? 나도 아프다.”

란 철지난 유행어가 다시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한 뉴스방송 ‘앵커브리핑’에서 한국사회의 아픈 현실을 반영하는 맥락에서 이 초대형 불상을 소개했는데 앵커는 마지막에

“이 큰 불상을 보면서 경기도 용인에 있는 마을의 한 소박한 불상이 생각난다”

면서 마무리했다. 어떻게 보면 이 진부한 마무리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것은 과연 우리가 불교도란 신분 때문만일까.


종교적인 웅장함, 분위기, 엄숙함, 위엄, 다 필요하다. 그러나 만일 이 시대에 아직도 부처님을 우리 스스로의 마음이 아닌 종교적 성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추구한다면, 제대로 된 불자라고 하기도 어렵겠거 니와 나중에는 분리수거도 안되는 불상을 우리 손으로 직접 혹여라도 쓰레기로 만들게 된다면 불상이 비록 진짜 부처님은 아니라 하더라도 얼마나 오랫동안 마음에 짐으로 남겠는가.


오늘날 21세기에는 불상을 많이 만들필요도, 더구나 크게 만들 필요는 더더욱 없다. 등신불等身佛 이라고 했다. 흔히 그렇게 말하면 미이라를 떠올린다. 김동리金東里의 소설로 우리에게 유명해진 사실.


죽음을 초월 하고 몸이 썩지 않고 불상이 되었으니 대단하기는한데, 그 역시 불교에 어울리는 전통이 아니다. 등신불이란 사람 크기의 불상을 의미할 뿐이다. 형상과 삶의 영원성을 내려놓으라고 가르치는 불교가 설마 그런 가치를 중시하겠는가.

천년이 아니라 만년을 그게 맞는것인 줄 알고 해 왔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지금부터 바로잡으면 그만이다. 이미 우리에게는 많은 유명한 불상들이 존재하고 그 불상들의 역사가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적셔주고 있다. 그런 소중한 불상들에 관심을 갖고, 찾아가고, 보존하면 된다. 시공간적인 이유로 꼭 필요하면, 작은 불상을, 등신불을, 마음을 다해 조성하여 까다롭고, 어렵게 모시면 된다. 그리하여 다시 새로운 천년 뒤의 이 문화의 귀중한 보물이 되어주면좋고.

그게 아니면 차라리 얇고 잘 타는 종이에 그려서 한들한들 계시다가 불에 타면 가볍게 날아가셔도 또한 좋고 ... 분명 부처님은 그 편을 오히려 선호하실 것 이다.


방송의 앵커브리핑에서 이야기 한 불상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크지 않고 소박한 불상이다. 대불상을 보면서 그 불상이 떠올랐다던 앵커의 말처럼, ‘세계최대’의 대불상에 대해 들으면서 우리는 문득 40여명이 마음을 모아 조성했다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연가7 년명불상’을 떠올리게 된다.

소.png


source_불식 10호
Sort:  

Very nice✔✔✔👍I follow you .👉you Follow me👌

좋은 말씀에 공감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보여주기식 허례허식이 판을 치게 되었는지..ㅇㅅㅇ;;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나네요.

@woolgom님 감사합니다^^ 맞습니다.누구를 위한 불상인지, 누구를 위한 종교인지 말이죠. 씁쓸한 현실입니다. 불교문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면 조금씩 이런 폐습을 바꿀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팔공산 갓바위를 보면서 저때 길도 없었을텐데 짐승 많은 산에 올라 바위를 깍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불심도 대단하고 손재주도 뛰어난 선조들임은 확실한것 같습니다. 쥐 얘기가 나오니 떠 오르는 분이 있네요...

Coin Marketplace

STEEM 0.16
TRX 0.16
JST 0.030
BTC 58630.93
ETH 2517.93
USDT 1.00
SBD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