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이야기가 있는 불교 이미지 #008 "육도와 아귀 이야기" - 산배는 욕심을, 바늘목은 성질을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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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 중 남쪽 증장천과 아귀 (오른쪽)

일러스트-김미혜 최미란 "돌로 지은 절 석굴암" 중

우리에게는 불교를 통해 알려졌고 그만큼 불교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인도의 세계관인 6도는 인도의 종교를 통칭하는 ‘힌두교Hindu’의 유산이다.


부처님도 6도에 관한 이야기를 꽤나 자주 하셨지만 이는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에 가까웠던 것으로, 여기에 대한 불교의 기본적인 입장은 ‘유심삼계唯心三界’ 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것은 ‘다만 마음 속에 삼계가 있다’니까 우리의 마음씀씀이에 따라 삼계를 왔다갔다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삼계의 길잡이 혹은 스승’이란 표현인 ‘삼계도사導師’란 ‘마음으로 삼계를 왔다갔다 하는 모든 중생들의 스승’쯤으로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인도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삼계라는 세계관을 부처님은 굳이 옳다 틀렸다 할 필요도 없고, 가만히 보니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그렇게 다양한 차원을 오락가락 하는게 제법 잘 만들어진 구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우리 가 잘 생각해보면 원래 부처님은 새로 만드 는 것 보다는 재활용과 벤치마킹의 천재적 전문가로,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서

“이거 잘 만들었지? 특허받을까?”

이런 스타 일이 아니었다. 왠만하면 대체로 그냥 있던 것 쓰고, 그게. 좀 안맞다 싶으면 조금 고쳐서

“어때? 요렇게 바꾸니까 더 낫지?”

이런 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불경을 보면 나오는 용어들도 대체로 힌두교에서 이미 쓰던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 뜻은 당신 스타일대로 많이 고쳤다.


karma(業)란 말은 '제식행위'란 의미였는데 붓다는 이를 '윤리적 행위'란 뜻으로 바꿔버렸다. 미드 같은데 간혹 나오는 걸 보면 알겠지만 영어를 쓰는 서양사람들도 이제 까르마란 말은 대체할 만한 다른 용어가 없어서 그냥 사용한다. 그건 인도인들의 공로가 아니라 부처님의 업적인 셈이다. 물론, 그들이 쓸 때는 매우 힌두교적인 의미로 쓴다는 점이다.

arya(聖)는 또 어떤가. 원래 높은 타고난 혈통과 계급을 의미했지만 올바른 행위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붙이는 타이틀로 바꿔 버렸다. 물론 정히 성질에 맞지 않으면, 그러니까 도저히 고쳐서 쓰기는 어려운 말, 이를테면 ‘신들에게 온전히 헌신’ 한다는 용어 ‘bhakti박애’같은 말은 아예 다른 용어로 대체해 버린다. 그게 ‘모든 살아 있는 이들과 나누란 의미의 metta-karuna 자비’이다.


아무튼 그 과정을 통해 지금은 불교의 세계 관으로 여겨지는 삼계 중에서도 욕계 - 욕망에 기반한 세계 - 는. 세부적으로는 6개의 세상으로 다시 나누어진다. 그게. 우리 가 잘 아는 ‘인간세상人間’, ‘아귀다툼의 세상餓鬼’, ‘짐승 같은 인간畜生’, ‘지옥같은 삶地獄’, ‘아수라장 같은 세상Asura’, ‘천당天上’ 등등이다. '왜 -'같은'이라고 번역했냐면, 불교에서는 이 세계를 유심삼계라고 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속에서 주관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라고 보기 때문에 사실은 6개 모두 사람한테 해당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위에 죽 나열한 세상들이 낯설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제법 잘 살아온 인생이다. 의도적으로 인간과 세상이란 말을 썼는데 앞서 이야기 한것 처럼 불교는 저 6개의 세상을 우리의 심리상태에 비유한다. 때때로 그렇지 않은가? 본능에 너무 충실해서 감정에 휘둘릴 때는 동물같이 행동하고, 어떤 일로든 마음이 너무 아플 때는 지옥같은 고통이 엄습하지않던가. 또. 때로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낼. 때는 마치 아수라같이 변신을 하기도 하고...

대개 불교를 배우려고 입문하는 사람들은 저런 6개의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 바깥 어딘가에 진짜 있는가를 궁금해 한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궁금해야 하는 것은, 현실속에서 존재 하지도 않는 저 각각의 세상에서 존재하고 활동하는 우리의 아바타들, '화신'에 대한 것이 다. 다시 말하면 저런 세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세계에 대해 설명한게 아니다. 우리가 쓰는 마음의 모습을 나누어 보니까 저렇게 여섯 개 정도로 나누어지더라는 것이다.


이제 그림 이야기를 해보자. 큰절의 눈이 튀어나올것 같은 사천왕. 그들을 잘 살피면 발 아래에 하나 혹은 둘의 작은 무엇인가를 밟고 있는 걸 볼 수있다. 원래 둘이라야 하는데 하나만 있는 경우도 많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발 밑에 깔려 있는 이들은 사천왕의 8부신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사천왕은 동서남북 사방의 하늘신이다. 욕계의 천상은 역시6개로 나눠져 있는데 그 중 첫번째 천상이 바로 그들의 나라, 사천왕천이다. 그래서 절의 입구에 '천왕문'이 있는 것도 욕계 첫번째 하늘나라의 관문을 건축에 도입한 것이다.

그 중 남쪽의 증장천왕이 밟고 있는 한명이 바로 아귀다. 배가고픈 귀신이어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아귀다툼'이란 말이 있으니까 금새 떠오르겠지만 욕심의 상징이다. 아마 물고기 중에 아귀란 물고기에 대해서나 타짜란 영화에 등장하는 화투 신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게다. 그들의 이름이 이 아귀에서 간 것임이 틀리지 않는다면 대체로 비슷한 이미지를 맞춘 것이다.

아귀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 모든 것을 혼자서 다 가지려다가 받게되는 과보인데 여전히 그 습관 때문에 산만한 큰 배를 타고 태어난다. 하지만 목구멍은 바늘정도의 굵기 밖에 안되기 때문에 당최 배를 채울 수가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음식을 갈구하는데, 당황스럽게도 건더기는 일단 그 좁은 목으로 들어간다 해도 욕심 때문에 목에서 불꽃을 내며 타버린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때문에 오직 물만 마실 수 있는데, 그것도 보통 물은 안되고 어떤 욕심도 없이 보시받은 공양물을, 그. 어떤 욕심도 없이 고요한 마음으로 먹은 다음 그 그릇을 씻고 난 헹굼물만 마실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들이 사는 절에 가면 ‘아귀발우’란 자리가 있어서 스님들의 그릇 씻은 물을 거기에 모아서 버린다. 그 때문인지 발우공양이 이루어지면 감독하는 스님은 혹여 건더기가 있는지 유심히 살핀다. 건더 기가 하나라도 있으면 아귀의 목에서 불로 타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


물론 전설이지만 우란분절, 백중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해 본다. 목련스님은 부처님 아래서 부처님에게 가장 신뢰받는 제자가 되었지만 목련스님과 그의 어머니 사이에선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머니는 희생제 지내는 것을 좋아하여 너무 많은피를 보고 죽는 바람에 지옥에 가게 되는데 목련스님은 사실 초자연력의 소유자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삼계를 두루 살펴보니 아버지는 천상에서 만날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죽은 다음 어디로 갔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부처님에게 물어보니 부처님은 목련스님의 어머니는 지은 죄가 너무 무거워서 무간無間지옥 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때문에 목련스님의 레이더로는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무간지옥은 죄를 지으면 위에서 떨어질 뿐, 문이 존재하지 않아서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을 뿐더러 벽과 벽사이에 조금의 틈도 없고, 또한 다른 지옥은 고통이 쉬어가면서 주어지는데 무간 지옥은 휴식시간이 전혀 없어서 연이어서 고통을 준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상상은 참 잔혹한데,이 때 이걸 직접 느껴야 했던 아들, 목련스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목련은 부처님께 어머니의 제도를 부탁했으나 부처님도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그 때 대안으로 부처님은 당신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가 없지만 사람들의 입과 마음은 참으로 큰 힘을 가졌으니 스님들이 안거를 마치고 나오는 날 모두 모여서 재를 지내면 그들의 힘으로 어머니를 구할 수 있을거라고 했다. 그 때 스님의 수는 100명. 그래서 우란분절은 100승재란 의미로 ‘백중百衆’이라고 한다는 유래가 되었다.


우란분이란 인도말 Ullamabana로 거꾸로 매달린 고통받는 것을 구해낸다는 의미이다. 많은 스님들에게 공양 올리고 대중이 음식을 나누면서 중생을 위해 기원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재齋이 다.

고려시대부터 이미 백중재가 우리 전통문화로 내려오다보니 백중절은 우리에게 추수와 맞물려서 많은 곡식들이 나오는 계절로 ‘100가지百種의 음식’ 이란 의미도 있으며 농한기의 농부들의 갈라진 ‘발 뒤꿈치 사이에 흙이 빠져나가고 좀 희어진다는 白踵’ 등 다양한 ‘백중(종)’의 어휘들이 생겨났다.


목련스님의 어머니는 많은 스님들의 힘으로 무간지옥에서는 벗어났지만 한번에 가벼워 질 수는 없어서 다음으로 일반지옥 으로 옮겼다가 다시 아귀로 태어났다. 그리고도 다시 강아지로 태어났다가 겨우 고통에서 벗어났다니 전설로 여기고 넘기면 그만이겠지만, 이 이야기가 마음에 걸리는 이들은 산 목숨을 함부로 해칠 일은 아니다.


목련스님의 어머니는 분명 희생제를 지내면서 좀 더 많은 복과 수명을 기대했을 것이다. 다른 많은 생명들을 잡아서 내가 좀 더 잘 살려고 했으니 잘 살려는 마음은 문제될 게 없으나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좀 더 나은 삶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생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독단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만 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열심히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때때로 좀 쉬기도하고,쓰기도하고,쌓아온것에약 간의 여유라도 있다면 옆을 돌아보고 베풀기도 하고 그래야 숨이 트이고, 피가 돈다. 살아있다는 것은 들어온 것이 반드시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들어왔는데 안나가고 계속 쌓이고 있으면 떠날때 남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회한과 후회만이 아닐까.

불교에서 인생을 정의하는 말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있다.

“들어왔던 숨 안나가면 죽는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나도 모르게 아귀가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가진 것을 자신을 위해 쓰는 것 조차 아깝게 여겨지면 아귀증세를 의심해 볼 수있다. 인생을 살기 위해서 재물이 필요한 것인데, 재물을 모으려고 인생을 희생하면 아귀가 된다.


이익과 이윤을 추구하며 사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불교에서 그것을 탐욕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방법에 따라 이익을 위해 공생해야 할 것들을 해치고, 가진 것을 쓰지 않고 쌓아둔다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 아귀가 되어 증장천왕의 발에 밟힐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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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_불식 15'9월호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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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아자아자 화이팅!!좋은밤 되세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________^
아귀다툼이 없어야 겠네요.^ㅅ^

@woolgom님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저 그리고 @woolgom님 혹시 현재 실비로 작업하고 계시는지요? 아니면 그냥 포스팅만 하고 계신지요? @woolgom님 캐릭터와 필치가 저희 매거진에서 딱 원하는 스타일이고... 잘 어울리는데... 저희들도 자본이 전혀 없어서 ^^ 여쭤보는게 실례가 아닐지 모르겠어요 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백중이라고 많이 들어 봤었는데 뭘까 궁금했었습니다. 여러가지 얘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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