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이야기가 있는 불교이미지 #004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 사리뿌뜨라와 목갈라나

in #kr7 years ago (edited)
이야기가 있는 불교이미지 [004]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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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Sariputra | 석가모니Sakyamuni | 목련Moggalana

왓 타통 사원 Wat Tha Ton, 치앙마이, 태국


중국불교전통인 우리나라에서는 달마라는 분에 대해서는 한번쯤은 다 들어보았다. 소림사의 무승으로 유명 하고, 갈대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넜다거나, 신발한짝 들고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등의 그림의 소재로도 잘 알려져있으며 한 때는 하다못해 수맥차단설까지 유행하면서 그 족자가 품귀현상(?)이 일기도 했으니까.

뭐, 달마스님 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기는 좀 막혀도 싫은 표정을 짓진 않았을 것이다. 6세기에 살았던 당신이 21세기의 사람들에게 수맥차단이란 기능을 베풀어 주는 것도 나름 보시인 셈이니.

이 분이 28대에 걸쳐 부처님의 법맥을 이어왔다는데, 그렇다면 1대는 누구일까. 우리는 보통 가섭이라고 한문 식으로 부르는 까샤파Kaśapa란 스님이다. 이 분이 붓다의 열반 후에 500명의 제자들과 붓다의 설법을 모았던 것은 사실이니 붓다의 정통을 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행적을 살펴보건데 이렇게 말하는게 좀 불경스러울지는 몰라도 아마도 요새식으로 말하자면 상당히 꼰대스타일의 노인네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양반과 상대적인 이가 그 유명한 ‘여시아문’의 주인공인 아난다Ananda 스님인데 상당히 온건적인 인물이다.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은 카샤파와 아난다란 두 스님에 의해서 정리되고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아난다는 카샤파를 이어서 제2대 제자가 되는데 이 맥을 따라 주욱 내려가서 만나는 것이 28대 보리달마Bodhi Dharma스님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여기까지가 사실 대개 우리가 대체로 많이 아는 이야기고, 성인인 붓다 역시 좀 더 아끼는 제자가 있지 않았을까. 뭐 당연히 모든 제자를 사랑하셨겠지만. 좀 특별한 이들이 있었을까. 그렇다. 그게 바로 사리뿟따Sariputta와 목갈라나Moggalana이다. 두 사람은 원래 가까운 친구로서 부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나란히 부처님에게 출가했다. 부처님의 공식제자 1,250명 중 250명은 그 두사람의 제자였다.

그 때 두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만 만나보고는 단번에 부처님에게 가기로 하게되는 유명한 시가 보통 우리가 Ye Dhamma라고 부르는 유명한 문장이다.

諸法從緣起 如來是因說
彼法因緣盡 是大沙門說

"모든 것은 조건을 따라 일어난다"고
부처님은 '원인'에 대해 말씀하셨네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사라진다"고
큰 스승께서는 말씀하시네

우리나라에서는 사리뿟따는 ⟪반야심경⟫의 주인공으로 너무 흔하게 이름을 듣는 사람이다. 우리가 읽는 반야심경에서 그의 이름은 '사리자'라고 나오는 데, 이 사람의 어머니의 이름이 사리였기 때문에 사리의 아들이란 뜻에서 뿌뜨라putra가 붙은 것이다. 뿌뜨라는 산스끄리뜨로 '아들'이란 뜻이다. 그래서 한자로 그대로 쓰면 '사리불'이다. 중국 사람들이 사리란 고유명사를 번역할 수 없으니 ‘아들’만 번역해서 ‘사리자(子)’라고 썼다.

우리나라 예전 여성들 이름에 저 ‘자(子)’란 글자를 참 많이 썼으니 아들을 얻기 위해 쓴 것 인지 일본식 이름인 ‘꼬(子)’를 따온 것인지는 몰라도 매우 익숙한 셈이다. 목갈라나도 그의 어머니의 이름 목갈리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니, 역시 엄마의 이름으로 이름을 지은 것이다. 많은 문화권이 아버지의 성과 이름을 따르는데 2500년 전 당시의 인도는 엄마의 이름을 따는 것이 일반적이었나보다. 지금같이 가부장적 개념이 사라져버린 시대에도 여전히 아버지 성을 다르게 되어 있는 구조에서 조금은 눈여겨 볼 일이다.

서양 사람 중에 이름에 Mc(Mac)이 들어가는 이들은 글자를 대문자와 소문자를 섞어 쓴다. Mc이란 아들이란 뜻이니 대개 뒤에 오는 이름이 부모의 이름이다. 맥도널드란 이름은 아마 원래 아버지의 이름이 도널드였을 것이다.

Watson 같이 영어권에서는 아들이란 의미의 son을 뒤에 붙인다. 아버지 이름이 아마도 왓(Wat) 머시기였다보다. 또한 심지어 이름은 그대로 쓰고 뒤에 숫자로 주니어니, 몇세니 구분하기도 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의 이름을 자식에게 붙이는 것은 어쨌든 흔했던가 보다. 하긴 성이나 이름 자체가 아무한테나 주어지지 않는 시대도 있었으니 성과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마땅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리불은 붓다의 믿음이 깊었다. 누군가가 부처님에게 당신을 이을 제자는 누구인가 물어보니 붓다는 내가 하던 설법은 사리불이 이어서 할 것이라고 했다는데서도 알 수 있다. 또 붓다는 당신의 아들 라훌라의 스승으로 사리불을 택하기도 했다.


목갈라나는 살생을 지나치게 많이하여 지옥 깊은 곳에 들어간 당신의 어머니 를 구했다는 아마도 중국에서 만들어진 전설로 유명한데, 스님들이 모두 안거를 마치고 나오는 날이 7월 보름이었으며 그날 500명이나 되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베풀고 재를 지내서 겨우 어머니를 구출할 수 있었으며 그 공덕으로 함께 고통받던 많은 이들이 함께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이 오늘날 불교의 큰 행사인 '백중'이 되었다. 원래는 500명의 스님이 모여서 '오백승재'가 이후 '100승재'로 줄었고, 이말은 '100중'으로 바뀌었다. 왜 스님을 속어로 '중'이라고 하지 않는가. 원래는 대중이란 뜻으로 나쁜 말이 아니었지만.

어느날 목갈라나가 도적들의 습격으로 상당한 부상을 입고 친구인 사리뿟다를 찾아와서 이제 그만 생애를 마치게 되겠노라 말하자, 친구의 죽음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다며 고향으로 내려간 사리뿟다는 곧 병이들어 친구보다 먼저 죽었다. 사리불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가사와 유골이 부처님에게 전해지니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것이 사리불의 사리다. 그가 없는 나는 마치 가지가 하나도 없는마른 고목과같구나”

하며 탄식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와 함께붓다의 양 날개와도 같았던 목갈라나마저 부상으로 목숨을 마치게 되니 아마도 이 둘의 죽음은 거의 보름만에 일어난 일이다.

가장 아끼던 두. 제자를 잃은 붓다의 마음은 어땠을까. 제자들을 보며 붓다는

“사리뿟다와 목갈라나가 그대들 중에 없으니 마치 이곳이 텅빈 것 같구나. 내가그 두사람과 함께 길을 거닐때 나는 쓸쓸한 적이 없었다”

고 고백하셨다니까, 우리는 이 장면에서 그야말로 성인이면서도 한사람의 인간이었던 붓다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 그리고 붓다의 열반이 1-2년 후에 다가 왔다. 어쩌면 붓다의 병은 그들을 잃은 슬픔으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붓다가 그들을 기리며 두 사람의 사리탑을 세우라고 제자들에게 부탁했다고 하니 스승이 만들어 준 제자들의 사리탑이다. 19세기 초 붓다의 역사적 유적을 발굴한 사람 중 하나인 영국의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햄(A.Cunningham)이 이 두 사람의 사리를 발견했으니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영국의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으로 옮겨진 사리는 마하보디협회의 요청으로 1947년 인도로 이운되는 과정에서 각 불교국가들의 희망에 따라 스리랑카로, 인도 캘커타로, 다시 미얀마로, 네팔로 이운되었다가 인도로 돌아왔으며 일부는 다시 스리랑카와 미얀마에 봉안되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사리는 부처님의 그들을 향한 사랑만큼이나 불교도들의 대단한 관심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서 언급한 아난다카샤파의 두 사람이 항상 붓다의 대표적인 제자로 표현되기 때문 에 간혹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상이나 불화 옆에 두 분이 서 있는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승불교권인 우리나라에서 법신불의 화신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양쪽에는 지혜와 실천을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위치한다. 하지만 간혹 두 명의 스님이 부처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두분이 스님의 모습이라면 카샤파와 아난다 두 사람이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중국 전통에서 두분이 1~2대의 제자란 영향 때문이다. 인도의 직접 문화권인 동남아시아의 경우 부처님 옆에 딱 붙어 있는 두분의 스님은 그냥 찍어도 99% 사리뿟따라와 목갈라나이다.

치앙마이Chiang Mai의 Thang Ton사원에 있다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그리고 스승인 붓다와의 흔치 않은 이 밀착형(?) 부조는 친구이자 같은 스승의 제자였던 두 사람의 우애와 또한 인간적인 스승이었던 붓다와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이 부조를 조성한 작가는 아주 뛰어난 상상력으로 우리를 2500년 전 붓다의 시대로 돌려 놓는다.

Screen Shot 2017-09-21 at 9.07.55 AM.png


source_불식 15/04(0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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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설명에 남방불교와 중국식 불교의 차이를 어렴풋이 알게 되네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인간적인 면모도요...^^

@sailingtohappy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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