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불식, 더 나은세상 만들기 #004 "'혐오'를 혐오하세요"

in #kr7 years ago

이래저래 들려오는 소식들 가운데 최근엔 뭔가 뚜렷하게 '미움'이란 단어가 부각되고 있는 걸 자주 봅니다. 원래 '애증'이니, 불교식으로 말하면 '탐진'이니 하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우리네 본성이긴 한데, 유독 '혐嫌'이란 글자가 수식어로 너무도 자주 들리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嫌이슬람, 嫌유대, 嫌일본, 嫌사회, 嫌정치... .


'嫌'


우리만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 미움받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제 ‘혐한嫌韓’ 은 비록 일부만 쓰는 표현이지만 국제사회의 공식적인 용어(?)이고, 이제는 우리 사회내에서 ‘혐남男’, ‘혐녀女’까지.

누군가가 말한 '만인이 만인을 증오하는 사회'는 결코 좋고, 옳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혐이란 사실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죠. 익숙하지 않고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멀리하고싶어 하는 마음. 그게 바로 미움입니다. 그래서 미움도 실은 잘 모르는데서부터 시작하죠. 그게 탐진치 중 '치'입니다. 정확하게 모르니 그 미워하는데 집착하는 것이죠.


우리는 '공익'에 해가 된다는 명분으로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당당하게 혐오합니다. 하지만, 사실 대상이 있는 '혐오'자체가 하나의 '범죄행위'일 수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가 쓴 유명한 책이죠. 작가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참기 힘들만큼'의 '가벼운 존재감'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특별히 가볍고 무거운 존재는 없을겁니다.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주관적 존재감'만이 있을 뿐이죠. 왜냐하면 존재의 무게는 누구도 잴 수가 없습니다. '존재'란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기 때문이니까요.


우리에게 누군가를 혐오할 권리나 권한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공익에 해를 끼친다면, 그 행위에 대해서만 지적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행위와 그 행위의 주체자인 사람을 동일시 합니다. 이건 오류죠. 사람은 정해진 기능대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그건 본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젠, 혐오가 스스로에게도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그 혐오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내 부족함과 잘못을 상쇄시켜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니까 마음놓고 혐오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언컨데,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혐오를 다른사람에게도 행사합니다. '혐오'란 감정은 가끔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할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1927~2008)은 ⟪문명의 충돌⟫에서

“세상은 서양 기독교 문명, 중동 이슬람 문명, 동양 문명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이들이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종교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틀린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1935~2003)는 ⟪ 오리엔탈리즘⟫에서

“다른 서로가 싸우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헌팅턴의 말을 비판했습니다. 듣고보니 헌팅턴 보다 사이드의 말에 더 공감이 갑니다. 나와 다른 것들을 지독하게 미워하고 두려워해서 멀리 하기로 하면 대체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그것이 생존법칙이긴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적과 동지를 구분하며 살아왔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많은 정보와 지식을 배우는 것은 더이상 샌존 대상들에 대한 그런 두려움을 버리고, 서로 잡아먹지 않고 다치게 하지 않고도 함께 평화로운 방식으로도 살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요? 물론 자본의 논리에서 경쟁은 필수적 이지만서도 말입니다.

이제는 미워하는 감정의 골이 너무도 깊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누군가가 내집 앞에 무슨 테러를 가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달라이라마의 말대로 “다시 친구가 되는 길” 말고는 없습니다. '혐'이란 감정을 내려놓고요. 다툼은 다툼으로, 싸움은 싸움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툼과 싸움을 그만하려면 우리 모두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부터 과감히 내려놓아야 하지요. '혐오'로는 결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혐오해야 할 것은 오직 혐오뿐입니다.

어느 젊은 정치인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 그 자체가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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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식은 실천가능한, 좀 더 나은세상 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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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헌팅턴 말보다는 사이드의 말에 더 공감이 갑니다.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부터 출발하면 어떨까 합니다. 무턱대고 비난, 비판하기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알아보고자 하는것. 그것이 혐을 종식시키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가슴에 담아두고 갑니다.

@energizer000님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서로를 알려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맞아요~!!
미움이란 결국 모름에서 비롯된다는 걸 부쩍 자주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 <

아는만큼 황홀하고, 모르는만큼 신비롭다
제가 새기며 살고있는 좋은 말이에요♡

@manizu님 와주셨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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