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해우소를 생각하며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회암사지에 다녀왔다.
회암사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왕실의 후원을 받아 많은 불사가 이루어진 최대의 사찰로서 크게 번영하던 곳이다. 특이하게도 일반적인 사찰건축과는 달리 궁궐건축의 건물구조나 방식이 나타나고, 왕실과 불교문화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가사적 제128호로 지정되고, 최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회암사지박물관이 국립민속박물관과 공동기획으로 전시하고 있는 ‘대가람의 뒷간’전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오랜 기간 터만 남아 있던 회암사지에서 지난 2005년 거대한 석실이 발굴되었는데 이것이 전통 뒷간의 지하구조이며, 현재까지 알려진 국내 사찰 뒷간 가운데 최대 규모임이 밝혀졌다.
이번 전시는 거대 사찰의 뒷간을 복원하고 다른 사찰과 비교해봄으로써 당시 상황을 상상해보고, 이울러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근심을 내려놓다(해우)’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전시물을 돌아보면서 나의 생각은 오늘날의 사찰 화장실로 이어졌다. 사찰이 대부분 산중에 위치해 있다 보니 관광지와 연결되어 있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모처럼 찾은 산사에서 이용하는 화장실은 깨끗하고 편리하며 냄새가 없어야 된다는 이유로 많은 사찰들이 수세식 화장실을 선호하고 있다. 사찰 화장실을 수세식화 하는 불사는 정부에서도 국고를 지원해 돕고 있다.
그런데 산중에서의 수세식 화장실이라는 것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사회가 전반적으로 서구화 되고 사찰을 찾는 내방객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전통 해우소를 고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많은 물자원을 사용하고 (한 번에 12 리터의 물을 사용), 결국 대규모 수질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수세식 화장실의 일방적인 확대도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모처럼 푸른 숲과 맑은 계곡을 찾아 온 사람들이 사찰에서 배출된 화장실 정화수가 계곡물을 오염시키지는 않는지, 또 사찰이나 인근 시설에서 물을 마음 놓고 먹어도 되는지 의심스러운 눈길을 던지고 있지나 않은지?
기술발전과 더불어 고려해 볼만한 대안들이 여럿 나오고 있다. 수세식이지만 사용하는 물의 양을 줄기기 위해 재이용수를 사용하는 중수도식, 분뇨를 미생물에 의해 자연발효 시켜 퇴비로 전환시키는 방식, 또 아예 정화조 없이 변기 내에서 자연분해시키는 다양한 형태의 바이오 드럼(Bio-Drum)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경제개념이 접목될 수도 있다. 즉, 과거에 비해 수요가 준 퇴비를 생산하는 대신 메탄가스나 전기 등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게다가 에너지로부터 얻는 수익은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환원하여 사찰이나 인근 상가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야말로 ‘먹고-배설하고-생산하고-다시 먹는’ 전통해우소의 생명순환시스템을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만하다.
혹자는 이런 방식을 ‘똥본위 화폐 경제’라 부르기도 한다.
위고가 말했다던가? “인간의 역사는 곧 화장실의 역사이다.”
빌 게이츠는 화장실 문제는 공중위생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에도 매우 중요한 사항이라는 신념을 갖고, 물을 사용하지 않는 화장실 개발을 위해 2012년부터 지금까지 수 백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도 피할 수 없는 ‘근심을 내려놓는 문제’를 현대적으로 해결하되, 소비적이고 환경 파괴적인 방식이 아닌 자원순환적이고 상생하는 새로운 방식을 사찰생활권에 도입하는 것을 고민할 때이다.
이상일
동국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서울대 석사, 스탠포드대 토목환경공학 박사. 동국대 생태환경연구소장. 동국대 전략기획본부장, 교무처장 역임. 수자원 환경공학이 주요 연구분야이며 위성을 통해 물환경관리, 기후변화 적응기술, 수자원 환경 시스템 최적화 등을 주로 연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