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생활백서 -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말 "할 만큼 했으니 갑니다"

in #kr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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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앞둔 예비 은퇴자는 향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자주 빠진다. 그런데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과연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물음도 중요하다.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전했더니 살기도 어려운데 벌써 죽음을 생각하냐고 묻는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불교에 ‘돈오점수’란 말도 있듯이 먼저 죽음을 생각하고 점진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죽음을 성찰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 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은 호스피스 계의 대모라 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쓴 『죽음과 죽어감』이다. 내친김에 국립암센터에서 실시하는 호스피스 고위과정에 등록했다. 국립암센터의 호스피스 과정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자원봉사형 교육이 아니라 의료인, 즉 의사와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전문과정이다. 분당과 일산을 오가며 의료인들과 함께 호스피스 완화치료에 대해 배웠다.

생을 돌아보면 학교 과정을 포함해 지금까지 받은 교육 중 제일 잘 받았다고 생각한다. 호스피스 과정을 통해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흔히 나이가 들어야 죽는 줄 알지만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 죽는 사례도 많았다. 하물며 어린아이가 소아암에 걸려 일찍 세상을 뜨기도 한다. 여러 죽음을 목격하며 이전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가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죽는 순간의 마음이 내세 결정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은 일반인과 달랐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높은 지위에 올랐으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집을 크게 늘렸으면 하는 것이 아니고 생을 살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미루었던 작은 소망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가고 싶었던 소망, 도시에서 벗어나 양지바른 곳에서 살고 싶던 소망 등 작은 것이었다. 은퇴 후 맞이하게 되는 인생 2막은 이렇게 미루던 일을 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경험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죽는 순간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그의 내세가 결정된다고 한다. 설령 그렇지는 않더라도 죽는 순간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에게 귀중한 시간이다. 한 가족에게는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지만, 또 어느 가족에게는 악몽이 될 수도 있다.

지인에게 들은 사례다. 평소 교단에서 존경을 받던 어느 목사가 임종을 맞이해 거의 동물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그는 살기 위해 어떤 치료라도 원했고 그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주위 사람들을 원망했다. 그러나 애쓴 보람도 없이 그는 얼마 후 죽었다. 가족들에게는 그의 임종 과정이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행복하다. 감사하게 살다 간다"


다른 사례도 있다. 평생을 의료인으로 살았던 고 노경병 박사가 좋은 예다. 환자 수술을 하다 C형간염에 걸렸다. 의사인 아들이 간 이식을 권했지만 오래 사는 게 중요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이때부터 그는 죽음 준비를 시작했다. 죽는 건 나니까 그 방식은 내가 정하겠다는 오랜 신념에 따라서다.

노 박사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 등 어떠한 생명 연장치료를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지인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며 일일이 전화를 했다. 아끼던 물건이나 재산은 교회·학교에 기부했다. 임종 열흘 전 마지막 입원 때 고통받고 싶지 않다며 재차 연명 치료 중단을 못 박았다. 아들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갠 상태로 79세의 나이로 편안하게 운명했다. “나는 행복하다. 감사하게 살다 간다”라는 말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노 박사를 한국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마무리 사례로 꼽는다.

아인슈타인도 그러한 죽음을 택한 사람이다. 이스라엘 건국 기념을 축하하는 연설문을 작성하던 중에 복부대동맥류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수술을 거부하고 생을 정리했다. 이때 그가 남긴 말은 이렇다. “내가 원하는 때 가고 싶다.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품위 있게 죽고 싶다.” 그의 나이 76세였다.

한국 죽음의 질은 세계 하위 수준이다. 그동안 먹고 살기 위해 성장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은 등한시한 탓이다. 이달부터 연명 의료결정법이 시행된다. 우리도 늦었지만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법이 너무 엄격해 의료현장에서 우려하고 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될 것으로 믿는다.

이제는 인생을 마감할 때 가족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고 갈 것인가, 아니면 슬픈 기억을 남겨주고 갈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 호스피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사람은 살아온 대로 죽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잘 살아온 사람은 잘 죽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음도 그렇다는 것이다. 대체로 생애 동안 의미 있는 일을 추구했던 사람의 죽음이 편안했다. 인생 2막을 설계하는 사람이 귀담아들을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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