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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100%) De Profundis (6)

in #kr5 years ago

[95] 마르쉬아스가 '그의 사지를 뜯겼을 때'-- 「그의 몸의 세포」, 단테의 가장 끔찍한 타키투스 구절--그에게는 더는 노래가 없다고 그리스인은 말했다. 아폴로는 승리했다. 리라는 갈대를 짓밟았다. 그러나 아마도 그리스인들이 잘못 알고 있었다. 나는 현대의 예술에서 마르쉬아스의 울음을 더 많이 듣는다. 이는 보들레르의 씁쓸함이며, 라마르틴의 달콤함과 애처로움이며, 베를렌의 신비주의다. 이는 쇼팽의 음악의 미뤄진 결단에 있다. 이는 번 존스의 여인을 사로잡는 불만에 있다. 분명하고 음조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달콤하고 감동적인 리라의 승리'와 '유명한 최후의 승리'를 이야기 하는 마태 애널드의 캘리클래스의 노래에도 그것이 적잖게 있다. 그의 가사를 잠식하고 있는 의심과 고통의 숨은 의미 속에서, 괴테나 워즈워스도 그를 도울 수 없으며, 비록 그가 차례로 따라가며, 「시르시스」 를 애도하거나 「스콜라 집시를 부르려 할 때, 이러한 연주의 압박을 위해 그가 잡아야 하는 건 갈대였다. 하지만 프리지아 파우누스가 침묵했든 아니든 나는 그럴 수 없다. 감옥의 벽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바람결에 흔들거리는 검은 가지의 잎과 꽃처럼 나는 표현해야 한다. 나의 예술과 세계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지만, 예술과 나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다. 적어도 나는 아무 것도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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