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석서균 | (주)젠제노 대표 - 심지(心志) 굳게 국산 심지(芯地)를 지키다

in #kr6 years ago










석서균 | (주)젠제노 대표


| 심지(心志) 굳게 국산 심지(芯地)를 지키다 |





약방에 가면 감초가 빠지지 않듯 의류의 외형을 살리는데 반드시 필요한 심지(芯地)는 의류생산에 있어 감초나 다름없다. 심지는 겉감 소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며, 의류의 전체 또는 어느 한 부분의 보강이나 형태 보존을 위해 사용된다.
국내 봉제산업이 비교적 활황이던 80~90년대, 심지업체들도 덩달아 성장을 거듭했다. 1986년 기준, 국내 심지업체를 보면 모심지와 접착심지 업체가 50여 곳, 부직포 심지 업체가 100여 곳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다. 물론 이 가운데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내공업형태 생산이었다. 당시 한국바이린, 동선, 동림섬유, 삼일실업 등이 부직포심지를, 일신산업, 동일심지, 대한방직, 코오롱상사, 삼원산업 등이 직물심지를 생산했다.
내수시장은 물론 봉제품 수출 증가로 각 심지업체들은 심지생산을 풀가동했고 생산시설을 확충했다. 더불어 심지의 품질수준을 끌어올리는 노력도 지속해 당시 전체 심지 수요량의 95%가 국내산이었을만큼 시장 장악력도 대단했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 내로라하던 다수 심지업체들이 생산을 접었거나 사업 아이템을 전환해버렸다. 내수봉제산업의 공동화로 심지 수요가 대폭 줄어들었으며 해외진출 봉제기업들은 가격경쟁력을 이유로 중국산으로 눈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척박한 땅에서도 정성을 기울이면 꽃은 핀다는 뚝심으로 과거 심지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전력을 쏟아붓고 있는 이가 있다. 의류용 심지, 안감, 마카지 제조 공급사인 (주)젠제노(Gengeno)의 석서균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과거 심지의 개념은 대량생산과 봉제작업의 용이성에만 중점을 두었다면 지금은 제품 생산의 효율성은 물론 제품 실루엣을 잡아주는, 새로운 패션 디자인을 창출하는 필수 부자재”라며 심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석서균 대표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경충대로변에 위치한 본사 공장을 찾았다.

공장 건물 앞 너른 마당에는 출고를 기다리는 제품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건장한 직원들이 수출용컨테이너에 물건을 적재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에게 다가가 사무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바쁜 와중에도 앞장서 안내를 마다치 않는다. 분주한 모습에서 현장의 역동성이 느껴지고, 직원의 작은 친절에서 회사 분위기가 읽혀졌다. 짙은 눈썹에 깊은 눈매가 인상적인 석서균 대표와 수인사를 나눴다. 초면임에도 불구, 익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스스럼없어 하는 그에게서 오랜 세월 봉제업계 언저리를 맴돌며 심지 세일즈에 몰두해온 내공이 느껴졌다.

“먼 곳까지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에 “국내에서 이처럼 왕성하게 돌아가는 심지 생산현장을 볼 수 있게 해주어 제가 오히려 감사를 전해야죠”
석 대표는 맞은 편에서 새로 개발한 안감을 이리저리 펼쳐 보이는 정석춘 전무를 기자에게 소개했다.
“정 전무님은 심지업계의 산증인입니다. 40년 넘게 심지업계에 종사해오며 심지 연구 개발에 몰두해오신 분이죠. 1988년에는 국내 최초로 DTY(Draw Textured Yarn) 심지 가공,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4년 전 우리 회사에 합류해 제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석서균 대표는 우선 현장부터 안내하겠다며 앞장섰다.
제직기와 싱글, 더블용 접착코팅기가 분주히 가동되는 생산현장은 그야말로 활기가 넘쳐난다. 국내 봉제산업이 활황이던 때로 시간을 거슬러 온 느낌이다. 봉제 매체에 종사하는 기자의 시각에서도 이처럼 국내에서 심지가 생산되어 내수시장에 소비되고 또 수출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갑기 그지없다. 모든 생산설비를 갖추고 원스톱생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몇몇 심지제조사들은 베트남, 대만, 중국 등지에서 나일론 폴리사를 들여와 직접 제직한다. ‘젠제노’는 국내 유수 섬유기업이 생산하는 실을 공급받아 짜기도 했으나 갑질이 심해 10년 전부터 인도 등지에서 실을 다이렉트로 수입해 직접 제직하고 있다.

수입 실이 도착하면 상태를 파악한 후 남양주와 대구 소재 협력공장에 OEM으로 제직을 의뢰한다. 제직된 원단을 이곳으로 실어와 코팅 공정을 거치게된다.
“코팅 공정은 각사마다 노하우가 있어요. 숙녀복에 강한 데가 있고 신사복에 강한 데가 있는데 지금은 거의 대중화 되었다고 봐야죠. 어떤 약품을 쓰느냐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즉, 약품이 Kg에 10,000원부터 20,000원까지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걸 써주느냐에 따라서 하이퀄리티로 가고 노말한 제품으로 가기도 하죠. 코팅을 하면서 건조와 냉각시키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코팅공정이 끝나면 엄격한 품질관리 기준에 따라 로트 테스트를 진행해 제품의 합격여부를 판정한다. 여기서 정품 또는 하품, 불량품으로 구분되며 정품은 곧 포장 과정을 거쳐 출고된다.
“다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원사를 구매해서 티셔츠, 재킷, 블라우스 등 의류 종류에 맞게끔 제직을 합니다. 대개 발주처에서 알아서 오더합니다. 혼용률이 몇 %라는 등 개발된 원단의 성질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대개 새로 나온 원단의 스와치를 1~2야드 잘라 주면 우리 회사 기술팀이 직접 테스트를 한 다음 레포트를 작성해 발주사에 제공하죠. 발주처에서는 레포트를 보고 거기에 맞춰 오더를 하게되는 구조입니다. 우리는 발주처가 요구하는 다양한 주문에 대응키 위해 물류창고에 재고를 종류별로 150만~200만 야드는 늘 쌓아두고 있습니다.

그대신 이처럼 재고가 평균 2~30억 되다보니까 자금 압박을 받기도 하나 고객요구에 즉각대응키 위해서는 감수해야하는 부분이지요. 옛날에는 딜리버리가 15일 이상 비교적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늘 전화 오면 내일은 나가야 하기에 항상 스탁을 갖추고 대기해야 합니다.”
심지생산 현장을 빠져나와 바로 옆 별도 공간에 마련된 마카지 가공실도 둘러봤다.
“마카지를 시작한지 4년차입니다. 아직은 심지와 안감에서 벌어 마카지에 투자하고 있다고 봐야죠. 마카지로 사업 영역을 넓히게 된 계기는 해외봉제공장에서 심지 보낼 때 마카지도 같이 실어 주길 원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어려움도 있었지만 기왕 결심을 굳힌 터라 제대로 한번 뛰어 볼 생각입니다.”

석 대표의 안내로 생산현장을 한바퀴 돌아 사무실 위층에 갖춰진 기숙사도 둘러봤다. “전체 직원 중 8명이 외국인 근로자입니다. 먼 이국 땅에 일하러 온 분들이죠. 일과를 마치고 최대한 편한 휴식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내에 별도 기숙시설을 마련했습니다. 물론 내국인도 출퇴근 거리가 멀어, 원하면 기숙사를 이용할 수가 있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석서균 대표와 마주 앉았다. 1천평의 작업 공간을 둘러보는 동안 와이셔츠는 땀에 젖어 척척했다. 사무실내 에어컨이 가동 중이나 미지근하다.

“물론 현장에도 냉방기가 갖춰져 있지만 생산설비가 뿜어내는 열기 속에서 힘을 써야 하는 일이라 무척 덥습니다. 그걸 알기에 사무실에 앉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근무할 순 없어서~ 또한 직원들은 파우더 날리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사장은 손님 접대한다는 핑계로 횟집에 앉아 점심 먹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죠. 이럴땐 회를 포장해 보내야 합니다.”라는 석 대표의 말에서 직원들을 위한 속깊은 배려가 느껴진다.
그의 업계 입문은 남다르다. 고교 졸업반 때 취업을 목표로 6개월 코스 직업훈련과정을 거쳐 포항에 있는 삼포중공업에 입사했다. 배치받은 부서에서 열심히 일했다. 기사와 반장인 부서조직체계에서 기술직으로 최고 승진이 반장이었다.

당시 반장은 대개 아버지 또래인 40대 후반이었다. 그 위가 기사인데 갓 공대를 나와 안전모를 쓴 기사가 아버지 또래 반장에게 지시하는 것을 보고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쌍용정유에 근무하다가 결혼을 했다. 빠듯한 월급을 쪼개가며 생활할 때라 당시 ‘신성통상’에 의류부자재를 납품하며 비교적 여유로워 보였던 친구가 부러웠다. 어느날 그 친구가 “이런 것(심지)을 너가 생산한다면 내가 팔아 주겠다”고 했다. 그는 친구의 제안을 덥썩 물었다.

퇴직금 받아 1981년, ‘경원통상’이란 이름으로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겁없이 간판을 내걸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시작한 게 아니다. 소단위 납품으로 작게 시작했다. 심지를 취급하면서 숄더패드 납품도 겸했다. 당시 낙성대, 봉천동 일대에 숄더패드 공장이 많았다. 얼마 지나 샘플 정도 만들 수 있는 설비를 갖춰 일부는 직접 만들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일신산업을 비롯 여러 심지 회사로부터 물건을 받아 직접 납품을 했다. 그러다가 심지를 공급받던 ‘란토르코리아’의 딜러가 됐다. 그러나 봉제공장을 상대로 열심히 영업했지만 출고를 제때 해주지 않아 그때마다 사정사정해야 하는 을의 입장인지라 고객사와의 신뢰가 걱정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생산에 올인하기로 결심을 굳힌 이유이다.

“완전 시스템을 갖추게 된것은 2000년 쯤이었습니다. 당시 첫 고객사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주)진이라는 수출 봉제업체였죠. JC페니 등 굵직한 바이어에 실크 블라우스를 납품하던 회사였는데 대표가 출장길에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 그 회사 직원들이 새로 설립한 회사인 (주)금경과 연이 닿아 본격 오더를 받게 된 겁니다. 그후 진도모피, 세계물산 등 수출봉제기업에 납품하게 되면서 안정되어 갔습니다. 수출 쪽 오더에 이어 남대문과 동대문시장쪽과도 연이 닿아 내수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심지를 공급하게 된 겁니다.”

국내 유명 심지 메이커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어떤 분이 심지개발에 전력을 쏟는 석서균 대표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 했다. 해당 회사의 심지 기술정보를 석 대표에게 대가없이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에 석 대표는 그의 마음만 받았다. 그 정도 기술정보라면 좀 더 쉽게 갈 수도 있었는데 석 대표는 마다했다.
“오로지 내 몸으로 익혀야 내 것으로 남습니다.”


  • 심지 경쟁력?
    “이 공장을 가동하는데 있어 인건비가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중국이나 베트남 보다 비싼 건 사실이나 그 정도는 다른데서 어떻게 절약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차이다. 100억 매출을 하는 어떤 회사는 40명 직원을 쓰는데 또 어떤 회사는 10명을 쓴다고 치자. 관리 능력에 따라 10명만으로도 40명 쓰는 회사보다 경쟁력이 뛰어날 수 있다. 효율성없이 여러 부서 만들어 방만하게 움직이기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게 해야 한다. 물건을 받고, 보내고, 출고하는 전 과정도 꼼꼼히 살피는 등 가급적 전 과정을 시스템화 시킬 필요가 있다. 다들 중국과 가격면에서 경쟁할 수 없다고들 하는데 지금 중국 회사와 붙어도 자신 있다. 나는 바이어가 제시하는 가격에 어지간하면 맞출 방법을 찾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원하는 품질의 제품을 원하는 시기에 맞춰 주겠다는 마인드로 임하다 보면 답이 보인다. 얼마 전 브라질에서 바이어가 이곳 공장을 방문한 적 있다. 때마침 나는 코팅실에서 작업복에 마스크 쓴채로 작업 중이었다. 보통 바이어 같았으면 사장의 몰골을 보고는 곧바로 돌아서서 갔을 것이다. 그 브라질 바이어는 달랐다. 내 모습을 보고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바이어 만날 때 좋은 차에 옷 잘 갖춰 입고 폼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여주기 위한 가식은 싫다. 그렇다고 일부러 열심인 척하는 것도 싫다. 다녀간 그 바이어로부터 한달만에 오더가 왔다. 회사를 믿을 수 있다며 선금까지 받고서 만들어 납품했던 기억이 새롭다. 경쟁력이 뭐 별 것인가?”

  • 수출 그리고 내수시장?
    “자체적으로 수출을 하다가 지금은 컨테이너 당, 야드 당 커미션 베이스로 중간 딜러를 통하는 형태다. 내수시장은 직접 거래하기도 하고 대리점을 통하기도 한다. 패션그룹형지, 세정, 슈페리어, 콜핑 등은 직접 거래하고 있다. 심지를 비롯 포켓용 안감까지 공급한다. 안감은 시장에서 구매해 공급하기도 하고 생산가능한 안감은 직접 생산해 공급한다. 10년 전부터 안감을, 4년 전에는 마카지를 더했다. 심지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쉽지않아 조금씩 사업 아이템을 추가한 것이다. 내수시장은 죽었다고들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 회사의 내수 수출 비중은 50:50이다. 내수시장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모두들 시장공략을 제대로 해 볼 생각은 않고 맨날 죽겠다는 소리만 한다. 고객들의 입맛에 맞게끔 내 스스로가 영업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 세계시장도 그렇지만 국내시장도 여전히 넓다고 본다.

  • 심지 접착 트러블?
    시장 제품을 만드는 소공장에서는 원단과 심지를 겹쳐 한 뼘 이상 쌓아 놓고서 아이롱으로 수십번씩 꾹꾹 눌러 접착하는 경우가 흔하다. 열 전달이 잘 안되면 전화해서 “저 집 심지는 괜찮은데 이 집 심지는 왜 이러냐”며 소리친다. 접착방식도 문제지만 접착 시 기본 매뉴얼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예로, 우리가 요구하는 압력은 3킬로이고 접착온도는 140도, 접착시간은 14초라고 할때 그대로 따르면 트러블이 안 생긴다. 그러나 현장은 그게 아니다. 14초를 기다리지 않는다. 작업물을 올려 놓고 우리가 요구하는 140도에서 14초를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눌렀다 빼버린다. 짜장면을 배달시켜도 일정 시간이 필요하듯 이것도 원단 소재에 따라 파우더가 녹으려면 매뉴얼대로 정해진 시간은 지켜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을 보면 좀 하드해져 태가 나지 않는다. 현장에서 그렇게 설명해도 잘 지키지 않는다. 일단 수량을 많이 빼는데 급급해서이다. 원단의 특성에 맞는 심지 선택과 작업 매뉴얼 준수 그리고 검증된 접착기기 사용이 중요하다.

  • 해외 파트너사?
    중국 상해서 한시간 반 거리에 심지공장이 많이 모여 있는 치둥(Qidong)에 우리 협력회사가 있다. 우리와 같은 아이템이 모두 생산된다. 해외공장에 납품할 때 그곳에서 보내는 게 유리할 경우 이용한다. 우리 직원이 상주해서 업무를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해외진출해 있는 한국 봉제공장들과의 거래에 불편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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