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죽을 권리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하사다 스가코 저)』

in #kr6 years ago (edited)

2018년 3월 6일 국내 발매된 21세기북스의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하사다 스가코 저)』는 존엄사와 안락사를 다루고 있다. 나와 남편은 아직 20대 후반, 3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카페에 앉아서, 드라이브를 하다가, 침대에 누워서, 밥을 먹다가 등등 예기치 못한 순간에 (주로 그럴 타이밍이 아닐 때를 말한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늘 어떻게 죽고 싶은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묻혔으면 좋겠는지, 내 마지막은 어땠으면 좋겠는지 등에 관해 현실적인 얘기를 한다. 무병장수하다 죽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때 갑작스럽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라 가장 가까운 사람과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대화에서 늘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 '존엄사'와 '안락사'였기에 나는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제목인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 자체가 내 생각과 굉장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안락사는 존엄사와는 다르다. 존엄사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소극적인 행위라면 안락사는 치사량의 약물을 본인의 선택에 의해 처방받고 본인이 집행하는 것이다. 유럽 등지의 몇 나라와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허용하고 있지만, 아직 안락사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허용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처음에 이 책을 받았을 때 아흔 두 살의 저자 나이를 보고, 나이가 들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하사다 스가코는 생사관 자체가 남다름을 알 수 있다. (특히, 본인의 남편이 암에 걸렸는데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은 조금 충격이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 내가 죽는 이유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

21세기북스의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하사다 스가코 저)』 의 목차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은 당사자이자 가해자라고 밝히며 자신의 생사관이 성립된 배경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 후 후반부부터 본인의 마지막 모습과 현재 본인의 삶을 서술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안락사를 시행해야 하는 나름의 논리적인 근거들을 가지고 나오는데 몇 개는 정말 괜찮은 생각이다. 이 책은 가벼운 주제를 다루지 않지만 가볍게 읽힌다. 아무래도 종활'일기'라는 특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죽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은 정녕 자유로운가? 하는 의문이 든다. 최소한 인간답게 살 권리는 보장하면서 왜 인간답게 죽을 권리는 자유롭게 보장해주지 않는가? 나는 어릴 때부터 늙어가는 내 모습이 보기 싫었으며, 또 늙어서 병든 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내가 급작스럽게 사고로 생을 마감해 누군가 내 유품을 정리하지 않는 이상,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꽁꽁 감춰 둔 일기나 삶의 흔적들을 나의 허락 없이 들춰보게 하고 싶지 않다.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산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어차피 사람은 종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바, 그 과정이라도 아름답게 가지고 가고 싶다는 얘기다. 이별은 슬프겠지만, 나 자신이 내가 아닌 채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것과 온전한 나인 채 이별하는 것은 다른 상황이지 않는가.

21세기북스의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하사다 스가코 저)』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안락사를 서술해놓은 부분 중 의사나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팀이 자살 희망자를 구조하는 역할을 맡았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은 심히 공감했다. 오히려 안락사의 입법으로 인해 정신적 궁지에 몰린 사람, 자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마련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허가해야 할 사람이라면 죽게 해주고, 살려야 할 사람은 다시 살 수 있게 돕는다. 단순히 죽는 일만 돕는 게 아니라 살아가도록 돕기도 한다. 이것이 정녕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아닌가 싶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게, 인간답게 죽을 수 있게 해준다면 안락사의 바람직한 작용이 아닐까?

그리고 p.232에 나타난 내용 중 '일본은 장수를 자랑하는 나라가 되었는데 이에 걸맞은 준비는 해온 걸까?'하는 문장이 있다. 이는 비단 일본만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국민연금이 문제가 되는 이유도 이것인데, 계속해서 아이를 낳고 성장할 생각만 했지 그 외의 상황은 손놓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철학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고 현실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는 의문문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목전에 두고서 '큰일 났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며 함께 가져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록쯤 되는 구간에서 독자의 편지에 대한 저자의 응답을 보면 나이 든 사람에게 안락사를 국한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나는 '죽을 수 없는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결정할 권리는 나이를 막론하고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방도를 세웠다면 삶의 일부인 죽음 역시 나의 선택에 의해 이뤄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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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blossomgahee님의 글을 읽다가 가희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져서 7일의 흑백사진 챌린지 다음 도전자로 지명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바톤 받아주세요!

죽는 걸 선택한다는 건 여러부분에서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도 평소에 관심있던 주제인데 책을 읽어볼 생각은 못 했네요. 시간나면 읽어봐야겠습니다!

관심있으셨던 분이라면 가볍게 읽어보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 심오하게 쓰인 글은 아니라 남의 일기를 엿본다(?)는 생각으로 보시면서 본인의 견해를 구성해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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