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on-line)은 온(溫)-라인이다

in #kr6 years ago

/온-라인(on-line)은 온(溫)-라인이다

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하던 중이었습니다. 읽고서 대충 던져놓았던 책들입니다. 그렇게 쌓여있던 책들은 주기적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찾기가 힘들어집니다.

서가를 정리하는 일은 때론 큰 일이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간단하게 끝이 납니다. 이번엔 조금 큰 일이 되었습니다. 나름의 방식으로 책장을 정리하던 중 한 책에 꽂혀있던 편지를 보았습니다.

한 여인으로부터 받은 연서였습니다. 예쁜 편지지 위에 펜으로 곱게 적은 글들이 가득 풍성한 추억을 담고 있더군요. 기억 저 너머로부터 시간을 건너서 추억은 지금, 내 서재로 다가옵니다.

혹시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누군가로부터 그리움의 편지를 받는 그런 경험. 그 편지를 곱게 추억 속에 묻어 놓았다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그런 경험. 꼭꼭 숨겨 두었던 보물을 찾은 듯한 그런 경험.

요즘에야 종이에 편지를 쓰는 일이 거의 없지요. 저도 이메일보다는 종이편지를 선호하지만 막상 제가 쓰려니 이메일을 쓰게 되더군요. 그래도 이메일보다는 종이편지가 더 정감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이편지가 번거롭긴 하지만 막상 받을 때를 고려하면 감동이 더 클 것 같기 때문이죠.

어느 모임에서 편지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한 친구가 제게 말하더군요.

"종이편지가 더 감동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 하지만 난 그것도 하나의 편견이라 생각해. 온-라인(on-line)의 다른 말이 무엇인지 알아? 어느 책에선가 본 글인데 온-라인(on-line)의 다른 말이 바로 온(溫)-라인이라더군. 종이에 써서 보내느냐 이메일로 보내느냐가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 중요한 건 편지에 담는 내용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닐까?"

온-라인(on-line)의 다른 말이 바로 온(溫)-라인이라.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정작 중요한 건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내용을 담아서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지요.
신달자 시인의 《겨울 초대장》에 보면 이런 시가 있습니다.

"당신을 초대한다. 겨울 아침에.......
오늘은 눈이 내릴지 모른다. 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 당신을 위해서."

오늘 온(溫)-라인을 이용해서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보내보심은 어떨는지. 이메일로 그 누군가를 초대해보심은 어떨런지. 그렇게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보심은 어떨는지. 원태연이 《안녕》에서 전합니다.

이런 날이었다. 외출. 걸음. 차가움. 거리의 한산함. 길은 나에게로 다가오고 목적지에 도착하고서야 비로소 밖으로 나온 이유를 알았다. 겨울은 오히려 여름날보다 더 따뜻했다. 외투. 목도리. 벙어리장갑. 사람들의 온기. 모든 것이 차가움에 숨을 쉬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포근한 날이었다.[원태연, 《안녕》, 자음과모음, 2002, p.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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