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한자 ‘태초’

in #kr6 years ago
    1. 20(금)
      太 初
      *클 태(大-4획, 6급)
      *처음 초(刀-7획, 5급)

‘태초에 우주는 하나의 점이었다고 한다’의 ‘태초’ 같은 표기법에는 읽기 정보만 있고, 의미 정보는 하나도 없다. 무슨 뜻인지에 대한 힌트가 들어 있는 ‘太初’를 분석해 보자.

太자는 문자학의 경전인 ≪說文解字≫(설문해자)에 수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漢代(한: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단 가운데 있는 점은 자형이 비슷한 大(대)자나 犬(견)자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크다’(big) ‘심하다’(extreme) ‘아주’(extremely) 등으로 쓰인다.

初자는 ‘옷 의’(衣)와 ‘칼 도’(刀), 둘 다가 의미요소로 쓰였다. 가위가 고안되기 전 아득한 옛날에, 옷을 만들 때는 먼저 칼로 가죽을 자르는 일부터 시작하였기에, ‘처음’(the beginning) ‘시작’(the start)같은 뜻을 그렇게 나타냈다.

太初는 ‘천지가 크게[太] 열린 맨 처음[初]’, ‘천지가 창조된 때’를 이른다. 겸해서, 착한 본성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명언을 소개해 본다.
“사람으로 태어난 시초의 본성은 본래 누구나 착했다.”
(人之初, 性本善 - ‘三字經’).

브레히트는 우리 인간이 “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라고 묻는다. 브레히트의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삶을 되돌아보면 정말 그 말이 옳구나 싶을 때가 있다.
인간의 감각 능력은 보편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은, 표정이나 몸짓 혹은 소리 같은 외적 징표를 통해 우리 마음에 유사한 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다른 사람의 고통을 똑같이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간접적인 상상과 짐작을 통해 그것을 비슷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고, 혹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고통 그 자체를 생생하고 강렬하게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동정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강하게든 약하게든 같이, 그리고 함께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동정심이고, 맹자와 데이비드 흄은 동정심을 도덕성의 참된 근거로 보기도 하였다.
즉, (맹자와 흄의 주장을 통해서 본다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서 본다면 브레히트의 말은 옳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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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之初 性本善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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