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18 (수)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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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18 (수)

■ 예레미야 16:1-13

[ 지금의 행복이 행복이 아닐 수 있다 ]

하나님없는 인생은 무익합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잔칫집에서 함께 앉아 즐거워하며 미시는 일도, 장례 참여하여 슬퍼하며 우는 것까지도 무익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때에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돕는 배필을 주셨을만큼 독처하는 것은 좋지 못한 일입니다. 그로인해 더욱더 큰 시험이나 음행에 물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결혼을 통한 자녀의 번성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번성과 축복의 상징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자녀가 없을 오히려 저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아내 라헬은 죽음을 각오하고 자녀를 갖기를 소원했으며(창30:1), 한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성전에서 아이를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삼상1:6-8).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결혼하지 말고 자녀를 두지 말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끊기고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1). 즉, 유다에 대한 심판이 시작되고 모든 사람들이 칼과 창에 죽임을 당하고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게 되며, 바벨론으로 끌려가 기약없는 노예생활을 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결혼과 출산은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하지 말고 자녀를 두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결혼의 무익함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땅에서 생명은 더 큰 고통 속에 방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심판에 대한 확고한 의미를 표명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고 아이를 낳는 것"은 풍성함과 평안의 시기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종말을 앞 둔 시점에서 유다에게 닥쳐 올 독한 병과 칼과 기근의 고통 속에서, 매장을 못하여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들이 뜯어 먹는 상황은 어떤 소망도 없는 상태임을 증거합니다(3-4). 성경에서 새로운 생명의 출생은 '국면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사라에게 핍박받던 여종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며(창16:11),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이 끊겼던 사라가 이삭을 낳음으로 그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창17:21). 또한, 브닌나에게 서러움을 당하던 한나가 사무엘을 낳음으로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삼상2:1). 그러므로 결혼하지 말며 자녀를 낳지 말도록 한 것은 유다가 고통 중에 아무리 부르짖어도 그 심판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국면전환의 은혜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또한, 초상집에 들어가지 말고 애곡하지 말라고 하십니다(5). 장례의 때에 함께 슬퍼하며 애곡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초상집에 들어가 애곡하지 말도록 한 것은, 그러한 선지자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 때에 모든 집이 초상집이 되어 저마다 다른 집의 초상으로 인해 슬퍼할 겨를이 없을 것을 증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민족이 칼에 죽임을 당하고 기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개인의 죽음이 결코 모든 이들의 슬픔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상황에 대하여 "큰 자이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에서 죽으리니 그들이 매장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겠고 자기 몸을 베거나 머리털을 미는 자도 없을 것이며, 그 죽은 자로 말미암아 슬허나는 자와 떡을 떼며 위로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상사를 위하여 위로의 잔을 그들에게 마시게 할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6-7). 즉, 죽을 자를 슬퍼하며 장사지낼 자가 곧 죽을 자이며 이미 죽은 자가 된 상황을 말씀하신 것으로서, 아무도 죽음을 애도하며 매장할 사람이 없게 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버린 까닭이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유다에게 긍휼과 사랑을 베풀지 않겠다고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5).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백성들의 죄악에도 긍휼과 사랑을 베푸셔서 그들이 부르짖을 때마다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인자와 사랑을 제하심으로서 유다가 누리고 즐거워하던 모든 것들이 곧 고통의 재료이며 죽음의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초상집에서 슬퍼하는 행위를 말씀하시며 "자기 몸을 베는 것"을 언급하신 것은 주목할만한 것입니다(6). 초상집에서 자기 몸을 베는 행위는 이교도의 관습에서 온 것으로서 슬픔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겠다는 의미이면서도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러한 행위를 언급하셨다는 것은 유다백성들의 생활 속에 이러한 이교도적인 관습들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때에는 모두가 "자기 자신의 슬픔"만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위로해 주거나 그들의 기력을 돕기 위해 떡을 떼거나 위로 잔을 마시게 할 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잔칫집에 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8). 대표적인 잔치는 결혼잔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와같이 특별한 일상에서의 즐거움이나 장례와 같은 애사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심으로서, 철저히 고독한 생활을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모습은 마치 자신들의 쾌락에 취해 먹고 마시며 즐기던 시간에, 심지어 장례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위로를 얻기 보다는 이교도적인 관습으로 스스로의 슬픔을 달래려던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한 고독 가운데 계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쾌락과 음행이 하나의 문화나 시대의 개성처럼 생각되는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의 삶은 늘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혼은 새출발이며 새희망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은 유다는 그러한 것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죄악이 가득하면서도 "이 모든 큰 재앙을 선포하심은 어찌 됨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냐"고 묻는 유다에 대한 재앙을 이미 작정하셨습니다(10). 그리고 이 재앙의 원인에 대하여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11). 하나님께서는 조상들의 삶과 현재 유다백성의 삶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후손들이 조상들로 부터 행해온 악습들을 마치 가풍이나 전통처럼 여기며 행해왔기 때문이며, 오히려 그 조상들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12).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유다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3). 다른 신들을 좇았던 그들을 다른 신들의 나라로 옮기셔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며 살게 하심으로서, 다른 신들을 좇은 결과가 무엇인지를 그들 스스로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곧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버려두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롬1:21-28). 죄악 중에 행하면서도 아무런 고통도 없이 오히려 날마다 즐겁고 행복한 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사랑하시는 까닭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 까닭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내 죄를 돌아보지 못하면, 지금의 행복은 결코 행복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지금의 풍요 속에서 즐거움과 기쁨에 취해 정작 내가 해결해야 할 죄악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죄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깨닫게 하시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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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이지만 읽는데 힘드네요^^
부디 칸 좀 띄어주세요.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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