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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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14 (토)

■ 예레미야 14:1-12

[ 내가 구하는 것과 달라도 하나님의 응답이다 ]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유다와 예루살렘은 그 곳에서 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풍요를 누렸습니다. 무엇이든지 심으면 열매를 맺고 그 열매의 기쁨을 누리는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땅과 땅에서 나는 열매를 주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풍요로움에 취해 이제 그 땅이 주인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우상숭배와 음행에 젖어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땅의 주권자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찾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나그네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땅을 기업으로 삼으신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깨닫도록 하십니다. 백성들이 머무는 땅 가나안에서 그 은혜의 손길을 거두시기로 하십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주인으로 섬긴 유다에 대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그네가 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때에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싹을 틔우고 결실을 맺게 하시던 은혜의 손길을 거둔 가나안 땅에는 오랫 동안의 가뭄이 찾아듭니다(1). 성경은 가뭄이 저주처럼 기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주는 가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삶에서 은혜의 손길을 거두는 것입니다. 유다에는 이와같은 오랜 가뭄으로 인해 모두 탄원의 장소라 할 수 있는 성문에 모여 애통해하며 부르짖습니다(2). 세상에서의 어려움은 빈부귀천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내리신 가뭄이라는 재앙 앞에선 빈부귀천이 따로 없습니다. 귀인들이라 할지라도 물을 얻기 위해 사환들을 보내지만 우물이 말라 더 이상 물을 얻지 못하고 빈 그릇으로 돌아 올 뿐입니다(3). 푸르름을 자랑하던 풀밭도 말라서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버릴 수 밖에 없으며, 생명력이 강한 들 나귀들도 숨을 허떡이며 죽어갑니다(4-6). 자신들의 풍요를 자랑하며 그 풍요에 젖어서 하나님을 잊어 버리던 백성들이 은혜의 손길을 거두자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되자 성문 앞에 모여, 결국은 주권자 되신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됩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을 부끄러워하며 머리를 저마다 가리지만, 정작 가뭄의 원인이 하나님께서 은혜의 손길을 거두시고 징계의 칼을 드신 까닭이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다만, 조상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성문 앞에 모여 비를 달라고 울부짖을 뿐 자신들의 죄악에 대해 대대적인 회개로 결단도 없습니다. 새끼를 내버리고 거친 숨소리로 죽어가는 것은 암사슴과 들 나귀들이 아니라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이며, 갈라진 지면은 아무런 소망도 찾을 수 없는 그들의 상황입니다. 오늘 내가 삶 속에서 풍족하게 누리는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손길로 지으시고 베풀어 주신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황폐해지고 죽어가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7). '주의 이름'이란 하나님의 주권이며 약속입니다. 죄악으로 인해 유다와 예루살렘이 고통 받는 것은 당연하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셔서 주권적인 능력으로 구원해 달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유다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오히려 그들과 한 몸이 되어 마치 자신의 고통처럼 하나님께 긍휼과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예레미야의 이러한 간구는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고통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닥쳤는고"라며 탄식했습니다(13:22). 그러나 예레미냐 선지자는 타락과 죄악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당연하나 긍휼과 구원을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백성들은 고통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임을 깨닫지 못하나, 선지자인 예레미야는 고통이 그들의 죄악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로 인식하며 오직 유일한 구원자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주권자이시며 아버지 되신 하나님 앞에 하룻밤 유숙하는 나그네와 같이 하지 마시기를 간구합니다(8). 예레미야는 심판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소망이 되시고 구원자이심을 기억합니다. 아주 버리신 것 같지만 여전히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그 가운데 거하고 계심을 신뢰하며 확신합니다(9). 백성들과 같이 쾌락에 취해있는 자와 말씀에 깨어있는 자의 차이입니다. 백성들이 심판의 고통을 대하는 시선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까닭이며, 왜 이러한 고통을 주시는 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모든 고통이 심판의 결과이며, 이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신뢰하고 확신하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에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그네와 같으신 분이 아닙니다. 캄캄한 밤중에만 우리의 삶에 유숙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통을 당한 유다백성들이 성문 앞에 찾아가 부르짖는 것처럼, 고통이 찾아오면 그제서야 교회에 나와 부르짖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말고,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무시로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긍휼을 베풀며 구원해 달라는 예레미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그 응답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는 것입니다(10).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만 하나님의 응답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기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그 응답의 방향이 다를 뿐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가 원하는 대로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구원하시로 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음을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이 깨닫고 돌이킬 때까지 그 죄를 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사람의 생각과 항상 일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모든 것을 아시고 예정하시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 응답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비록 예레미야가 백성들이 고통 받는 것을 견디지 못해 하나님께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들을 용서하고 긍휼을 베푸는 것이 오히려 영원히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더 큰 죄악으로 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선지자의 간곡한 간구에도 하나님께서 심판의 뜻을 꺾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1). 그리고 그들이 금식하며 부르짖어도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받지 않을 뿐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2). 유다와 예루살렘은 이미 하나님의 충만한 복을 누렸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복을 자신들의 쾌락과 배부름만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예레미야에게는 고통 가운데 건져주시는 것이 그들을 위한 '복'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들에게 주는 복이 오히려 '독'이 될 것을 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을 위해 복을 구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의 기도를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확실한 응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하는 자마다 주실 것이라는 약속은 항상 유효합니다. 하지만 그 응답은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지만,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이라는 사실을 개달아야 합니다.

<나의 기도>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살피시는 하나님, 때때로 기도하며 내 마음과 다른 결과에 직면했을 때에,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을 말하며,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을 회개합니다. 항상 선하신 뜻에 따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내 마음의 소원과 다른 것을 주실지라도 깊으신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으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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