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1 (주일)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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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10. 1 (주일)

■ 예레미야 8:4-17

[ 평안을 구하면서도 ]

넘어지면 반사적으로 일어나려하고 떠나가면 돌아오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짐승들도 먹이를 찾아 떠났다가도 때가 되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옵니다(7).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의 자리만을 고집하고 일어서려고도 돌아오려고도 하지 않습니다(4-5). 이는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한계를 넘었음을 의미합니다. 부지런히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고 회개를 선포해도 그들이 듣지도 않았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거짓을 고집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자나 모르는 자나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거짓을 고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편안히 죄악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말씀을 수 없이 듣지만, 그것을 믿으려하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은 죄악을 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영원토록 평안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먼저 죄악을 떠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없기를 바라면서도 죄악에서 떠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산과 나무에서 우상을 섬기며 음행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역행하고도 돌아오지 않고, 돌아오라는 간절한 선지자의 호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전쟁터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군마처럼, 자기의 탐욕이 채찍질 하는 대로 거짓의 길을 고집했습니다(6). 그들은 새로운 결단을 하는 것보다 익숙하게 해오던 것을 원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기보다는 지금까지 해오던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했습니다. 때가되면 시계추처럼 왔다갔다만을 반복하는 종교생활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로 행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깨닫게 되며, 단순히 지식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하나님을 알아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충만하여도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을 고통 중에서 건지신 분은 지식에 충만한 선지자들이나 제사장들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들의 지식을 사모하며 육체의 것을 쫓아가는 자는 넘어지며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의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지혜가 깊고, 삶을 견고케 하는 말씀이 눈 앞에 있을지라도 왜곡하고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고통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삶이 될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지혜와 율법을 알고 또 율법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있는 말씀은 순종해야 할 명령이 아니라, 그들의 소유가 되어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대상이며, 특권을 유지하는 권력으로 전락했습니다(8). 아무리 깊은 지혜를 가졌다하여도, 아무리 탁월한 지식을 가졌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자신을 삼키는 사탄의 혀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쌓은 지식이나 스펙의 정도를 묻지 않으십니다. 오직 순종하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했던 시간과 영적인 관계의 깊이를 물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지도자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자기 욕심에 따라 살았습니다. 이는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도, 제사를 드리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라 자기 욕심을 따라 행한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10).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죄악으로 인한 징계와 심판을 경고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하며,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말만을 전하였습니다(11). 지도자들의 안일한 시대인식과 거짓 처방이 중병에 걸린 백성들을 혼수상태로 몰아 넣은 것입니다. 죄악으로 인해 고통받을 때에도 그들이 죄악에서 돌이키도록 하는 말씀보다는 왜곡된 메시지를 진통제와 마취제를 투여하듯 하며, 아무 일이 없을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지도자들의 행위를 가증한 것이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 가증하고 부끄러운 일을 행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습니다(12). 마치 자신만이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을 전하는 신령한 목자이듯, 거짓된 메시지와 기도로 백성들을 파탄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정당화 시키는데는 무엇보다도 능통한 자들이었습니다. 지도자의 타락은 백성들의 타락을 가져오며, 백성들의 타락은 시대의 타락을 불러옵니다. 이 시대에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지도자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눈물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진멸은 일시적인 징계가 아닙니다. 죄악의 뿌리가 완전히 뽑혀질 때까지의 지속적인 진노의 손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13). 즉, 율법의 말씀을 행하고 진정으로 언약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얻었던 모든 은혜가 사라지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그의 시에서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고 노래하였습니다(시37:9). 하나님을 향한 그의 찬송은 삶을 통해 얻어진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즉, 율법책에서 얻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체득한 후의 고백입니다. 언약을 파기한 자들이 얻을 결과는 당연히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에는 당연히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그 잎사귀는 항상 푸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을 거두어 가심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뿐만 아니라 의식주에 관계된 모든 일반적인 은총까지도 거두어 가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바벨론을 피해 달아난 견고한 성읍과 산과 바위틈은 죽음을 조금 지체시키는 일시적인 피난처가 되기는 하겠지만,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육체를 즐겁게 하고 탐욕을 채우기 위해 했던 모든 죄악들이 빠르고 치명적으로 목숨을 빼앗아갈 독이 될 것입니다(14).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오는 평안과 만족을 버리고, 풍요로부터 구했던 평안과 만족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겠지만(15), 이미 독사의 독을 마시고, 온 몸이 굳어져 소생할 수 없는 것처럼, 고통은 깊어지나 더 이상 돌이킬 수 있는 기회는 없습니다. 광야에서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시고, 구리 뱀으로 불 뱀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먼 옛날의 이야기로만 남아있게 될 뿐입니다. 내 삶이 황폐해지기 전에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돌이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고통 중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소리, 울며 호소하는 소리, 그것은 이미 때늦은 자의 후회와 탄식의 소리일뿐입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며 주신 지경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그곳에서 충만해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기도>
평안을 구하지만, 내 속에는 거룩함이 없고, 고통 중에 구원해주시기를 부르짖지만 내 행위에는 가증한 것들로 가득함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풍요에서 일시적인 평안을 구하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쁨을 얻고 의로운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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