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신화의 시작이 된 동화 이야기, '호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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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스트랄러입니다.
간만에 책을 한 권 다 읽었습니다. 사실 제게는 덕력으로 구매하고 아직 다 읽지 못한 책 컬렉션이 있어요. 이름하야 J.R.R 톨킨의 가운데땅 이야기 세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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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정가 18만 5천원의 엄청난 양장본 세트이지만, 도서정가제가 적용되기 전, 스팀의 뺨을 후려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할인가가 적용되던 시절에 구매한 도서인지라, 가격을 보고 눈이 뒤집어져서 "어머 이건 꼭 사야해!!"라는 생각에 충동구매를 하고 말았어요. 하지만 양장본의 두께를 견디지 못한 채, 제 책꽂이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같은 출판사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의 판본이 e-book으로 출시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할인 행사에 맞추어 또다시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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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이 할인행사를 만나면 같은 책을 두 번 사는 미친짓이 가능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잘 읽지 않다가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뜬금없이 책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선택한 책은, 근대 영문학에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환상 문학의 시작을 알린 톨킨의 작품인 '호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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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이렇게 생겼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 양장 책을 보여드리지만 실제 독서는 e-book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무거워서 책을 들고다니면서 읽지를 못하겠더라고요ㅠㅠ

신화의 시작은 '동화'였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가운데 땅(Middle Earth)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창조해 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한 세계관과 종족의 언어를 창조할 정도의 언어학적 능력을 가진 톨킨의 재능 덕분에, 환상문학으로써는 드물게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화의 시작은 톨킨이 어린 자녀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지은, 유럽의 여러 신화와 전설을 토대로 한 "동화"였습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소설 '호빗'의 문체와 내용은 소설보다는 동화에 가깝습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버지의 어투, 딱 그 문체입니다.

땅 속 어느 굴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 굴이라고는 하지만 지렁이가 우글거리고 지저분하고 더럽고 축축하고 냄새나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앉을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메마른 모래만 깔려 있는 건조한 굴도 아니었다. 그곳은 호빗의 굴이었고, 그것은 곧 안락함을 의미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후에 설명할 번역지침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말씀드리겠지만, 동화로 시작한 소설답게, 읽기 편하고 어렵지 않게 쓰여져 있습니다. 내용 또한 어둡고 장엄한 서사시와 어울리는 '반지의 제왕'보다는 많이 가볍고 익살스러우며 밝은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특히 블록버스터 영화로 개봉했던 "호빗 실사영화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에도 장엄하거나 웅장한 묘사보다는 주로 평화롭고 동화와 같은 서술을 합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안정적인 삶을 좋아하는, 작은 인간인 '호빗'의 성격에 딱 맞는 어투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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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영화 3편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다섯 군대 전투는 책에서는 몇 장 다루어지지도 않습니다. 블록버스터에 가까운 실사 영화와 달리, 원작인 소설은 동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오리지널 요소를 통해 억지로 늘려놓은 영화의 늘어지는 전개보다, 간결하고 동화같은 소설의 전개가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동화 같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뻔하지만, 매력적인 이야기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호빗은 평화를 사랑하고, 안락한 삶을 즐기는, 모험과는 거리가 있는 종족입니다. 유별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멋진 호빗굴에서 안락한 삶을 즐기던 '골목쟁이네 빌보(Bilbo Baggins)'에게 마법사 간달프의 술수(...)로 인해 난쟁이들을 집으로 들이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죠.
몰락한 난쟁이 왕국의 후예인 "참나무방패 소린(Thorin II Oakenshield)"과 그의 12명의 가신은 화룡 "스마우그"가 차지하고 있는 옛 난쟁이 왕국의 땅, 에레보르로 돌아가 용을 처치하고 보물을 되찾으려 합니다. 간달프의 조언에 따라 그들은 '좀도둑'으로 빌보를 데려가고 싶어했고, 그렇게 뜻밖의 여정은 시작됩니다.

여정은 쉽지 않습니다. 트롤에게 먹힐 뻔 하기도, 고블린들에게 공격받아 죽을 위기도 넘기고, 거미나 요정들에게 공격받기도 합니다. 식량이 떨어져 고생하기도 하고, 요정들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통 속에 숨어 강을 건너기도 하는 등, 힘든 여정은 계속됩니다. 갖은 고생 끝에 목적지인 높은 산 아래의 '너른골'에 사는 인간 '바르드'의 도움을 받아 스마우그를 물리치고 보물을 차지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황금에 눈이 멀어버린 소린은 모든 보물을 독차지하고자 했고, 이로 인한 갈등으로 인해 위에서 말씀드린 '다섯 군대 전투'가 발생하게 되죠. 결국 소린은 마지막에 용서를 구하며 목숨을 잃게 되고, 빌보는 아쉬움과 귀향의 기대감을 품은 채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책은 끝을 맺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빌보'이지만, 백미는 황금에 눈이 멀어버린 '소린'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운데 땅의 용은 모르고스(사악한 신적인 존재로, 반지의 제왕의 최종보스 사우론이 그의 수하입니다)가 창조한 사악한 마법적 존재로, 그의 영향을 받은 황금에 눈이 멀어버려 그는 변절하고 모든 것을 져버립니다. 자신의 은인과 사명을 버리고 동족만을 위해 다른 종족을 차별하며 독선적으로 행동하던 그는,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진정한 왕의 모습을 되찾고 용서를 구하며 죽음을 맞습니다. 그의 행동은, 물질만능주의에 쪄들어가 도리를 져버리고 필요 이상의 정치적 행위를 일삼으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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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금은보화를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이라면,,,, 눈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특한 번역

톨킨의 모든 이야기는, 설정상 톨킨이 지은 것이 아니라, 그가 입수한 가운데땅의 기록서들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는 재미를 위한 작가의 설정이며, 가운데 땅의 모든 이야기의 법적 저작권은 톨킨에게 있습니다(그리고 톨킨 재단은 저작권에 매우 민감합니다). 설정상 모든 책은, 옛날 우리 문명이 있기 전에 지구에 존재하던 '가운데 땅'의 역사를 기록한 프로도의 '레드 북'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므로, 영어는 소설의 원어가 아닙니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 출판할 때는 그 나라의 고유명사로 '현지화' 하여 번역할 것을 '번역지침'으로 정해놓았습니다.(번역지침까지 정해놓은 작가 톨킨의 능력에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출판사인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은 이러한 번역 지침에 충실하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고유명사를 현지화 하여 출판했습니다. Baggins를 '골목쟁이네'로, Oakenshield를 '참나무방패'로 번역한 것 처럼 말이죠. 이러한 번역지침은 영문학을 읽는다는 생각에서 바라보면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친근하고 익숙한 말들을 통해 원래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어감을 직관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어를 음차하는 것 보다는 이러한 번역 방식을 선호합니다. 과거 영화 '반지의 제왕'이 개봉했을 당시에는 이러한 번역지침을 지키지 않고 음차한 번역을 사용하였으나, '씨앗'사에서 판권을 가져온 이후에는 영화와 미디어믹스를 포함해 모든 번역이 이러한 현지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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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어색하던 블리자드 코리아의 '서리한'이 초월번역과 좋은 현지화의 예로 거론되는 만큼, 번역하는 언어의 느낌을 살리는 이러한 번역과 현지화는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가운데 땅 이야기를 처음 읽는다면

위에서 보여드렸듯이, 가운데 땅 이야기에는 엄청난 양의 저작물들이 있습니다. 대 서사시인 '반지의 제왕'과 신화적 플롯을 가지는 '후린의 아이들' 그 자체로 신화서, 아니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실마릴리온'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책이 존재하지만, 책의 두께와 어투 탓에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호빗'은 애초에 동화로 지어진 만큼, 읽는데 부담이 없고 직관적인 묘사로 '가운데 땅'에 관련된 책을 처음 읽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입문하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이번 완독을 계기로 여러번 시작했다 좌절해버린 '반지의 제왕' 원작 소설 완독에 다시 도전해봐야겠네요.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

는 말이 있습니다.
톨킨의 책들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하는 말이 있을까요.
다만 실제로 그가 일궈낸 모든 신화의 시작은,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썼던 한 권의 동화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스트랄러였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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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ㅠㅠ근래 본 포스팅 중에 젤 고퀄... 전 덕후가 세상을 바꿀 거라 믿습니당. 덕력 화이티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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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퀄...인가요??ㅎㅎ 많이 부족한 글에 칭찬 감사합니다!! 덕질은 사랑입니다!!ㅎㅎ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흥미진진하게 봤던게 새록새록 기억이 나네요
제가 알고 있는게 맞다면 엘프나 트롤 호빗 머 이런 종족들이 최초로 등장한게 이 분의 소설이 맞나요?
맞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대단한 상상력이네요 그리고 아스트랄러님의 덕후뿜뿜한 글도 잘 읽었써요
호빗책을 사진으로라도 실물본건 처음 입니다
저렇게 전화번호부 저리가라 두께라면ㅋㅋ저는 진즉에 안샀답니다 하하하
반지의 제왕도 어서 읽고 독후감(?)써주시길
기다릴께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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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원래 유럽의 전설이나 설화 등으로만 존재하던 요정(엘프), 난쟁이(드워프), 고블린, 오크, 트롤 등등 여러 종족과 괴물들을 집대성해서 현재 우리가 특정 종족 했을때 떠올리는 이미지를 창조한 사람이 톨킨이라고 해요!! 더군다나 이분은 그런 설정 뿐만이 아니라 그 종족의 언어까지 창조하신, 언어학적 재능까지 겸비하신 분이죠!! 덕밍아웃을 해버렸으니;;ㅎㅎ 이렇게 된이상 덕후컨셉으로 밀고 나가야겠네요!! 얼른 읽고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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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불타오르네(feat.BTS)

중간계로 여행을 떠나셨다 돌아오셨군요 ㅎㅎ 저도 영화를 통해 빌보와 함께 했었는데 책으로 보면 또 다른 경험일거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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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책은 또 다른 경험인 것 같아요ㅎㅎ영화와는 달리 새롭습니다